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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한겨레 프리즘] ‘고용쇼크’에 임하는 자세 / 황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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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황보연
정책금융팀장


며칠 전 코레일은 ‘체험형 인턴’ 1천명을 뽑는다는 채용 공고를 냈다. 이 가운데 사무영업직 900명은 11월부터 두달간 하루 4시간씩 일하며, 월 80만원가량을 받게 된다. 철도역 내 고객 안내를 맡거나 사무직 행정보조로 일하는 자리다. 공공기관의 체험형 인턴은 ‘채용형 인턴’과 달리, 정규직 채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근무기간과 근무시간이 짧으면 근로소득으로서의 의미도 크지 않아, 취업준비생들의 ‘스펙 쌓기’로 활용될 여지가 크다. 나머지 100명인 운전직 인턴의 처우는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다. 석달간 하루 8시간씩 일하며, 열차 운전 실무를 배우게 된다. 월급은 160만원 수준이며, 추후 정규직 채용 때 가점이 주어진다.

정부가 최근 공공기관을 동원해 긴급하게 마련 중인 ‘단기 일자리 대책’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단기 알바 수준의 일자리를 급조해 고용지표를 부풀리려 한다’는 보수 야당의 공세가 거센 탓이다. 청와대는 “일자리가 시급한 국민에게 가능한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하는 것은 정부의 의무”라고 반박했다. 과거 경제위기 수준으로 심각한 고용사정을 고려하면, 정부가 ‘일자리를 하나라도 더’ 만든다는 데 굳이 찬물을 끼얹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다만 청와대와 정부가 스스로 되뇌고 있는 것처럼 ‘엄중한 상황’일수록 그에 맞게 일자리 대책을 짜고 있는지는 냉정하게 따져볼 일이다.

우선 고용위기 국면에서 단기 일자리는 당장 실직자의 소득을 보전하는 구실을 해야 하는데, 실탄(예산)이 부실하다 보니 임기응변식 대책들이 급조되는 모양새다. 최근 기획재정부는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기타공공기관 등 360여곳에 공문을 보내 수요 조사를 하고 일자리 발굴을 요청했다. 공공기관 전체가 연내 5천명 안팎의 체험형 인턴을 추가로 뽑도록 한 것도 이런 대책의 일환이다. 하지만 재원 대책은 ‘불용’이 예상되거나 전용이 가능한 예산을 적극 활용하라는 게 전부다. 뒤늦게 일자리 추경을 다시 할 수도 없다 보니 고육지책으로 공공기관을 동원한 것이다. 고용시장의 ‘이상 한파’는 지난 2월부터 이어져왔지만, 올해 일자리 추경은 5월 국회를 통과한 청년·구조조정위기지역용 ‘미니 추경’(3조9천억원)이 전부였다. 정부가 지난달 ‘생활 에스오시’(SOC·사회간접자본)를 확충해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한 것도 모두 내년 예산에 반영될 내역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통상 정부가 경제위기 때 재정을 투입해 만드는 공공근로보다 처우가 나쁜 초단기 알바 일자리까지 섞여 나오는 형국이다. 이 때문에 과거 정부에서 ‘삽질(건설) 예산’으로 단기 일자리를 잔뜩 늘려온 자유한국당이 ‘양질의 일자리’를 외치는 아이러니한 상황마저 연출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의 경우, 국민임대주택 등 예비자 서류접수와 계약체결 업무보조를 위해 687명을 뽑겠다는 계획을 냈지만 근무기간은 1일에서 최장 2주에 불과했다는 것이다(민경욱 의원).

게다가 정부가 고용부진을 겪고 있는 계층이 어디인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최근 고용시장에선 업종별로는 제조업과 도소매·숙박음식점업, 종사상 지위로는 임시·일용직, 연령별로는 40~50대가 가장 큰 부침을 겪고 있다. 특히 제조업 취업자는 지난 4월부터 감소세가 본격화해, 9월까지 월평균 9만1천명씩 줄어왔다. 자동차 등 주력산업 부진의 여파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며, 그에 따른 타격을 생산성이 떨어지는 영세 제조업과 임시·일용직, 중장년층부터 입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정부가 추가 채용을 밝힌 체험형 인턴의 지원 요건은 만 34살 이하로 제한된다. 청년층은 그나마 고용사정이 다소 개선되고 있는 연령대다. 최근 고용위기를 겪고 있는 계층에 대한 일자리 대책은 한두달 내로 종료될 일자리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주력산업의 경쟁력을 단기간에 끌어올릴 수도, 장밋빛 청사진만 내걸린 신산업 분야에만 무작정 기대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대기업 구조조정이 발생하면 대규모 실업대책을 미리 수립하는 것처럼, 일자리가 위태로운 취약계층에 대한 재정의 역할을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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