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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영화 리뷰] `퍼스트맨`, 숨멎게 만드는 경이로운 달 착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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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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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극장에서 예기치 못한 걸작 한 편을 이제 막 보고 나왔을 때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다. 머리가 아주 멍해진 채로, 마치 온몸이 무장해제라도 당한 것처럼, 그 영화가 선사해준 감흥에 오롯이 젖어 드는 것. 해일 같이 몰아치는 이 예외적 충만감이 혹여나 사라질까 아쉬워 앞서 마주한 숏과 신과 시퀀스를 곱씹고 또 곱씹는 것. 그렇게 영화라는 세계에, 그 육박해오는 바다에 제 한 몸 기꺼이 투신하는 것.

또 다른 반응이란 이런 것이다. 지금 당장 노트북을 펼치든, 펜을 쥐든 앞서 본 영화에 대해 무엇이라도 끄적여 보고 싶어지는 것. 그 영화가 안긴 감흥의 부스러기나마 미약한 언어들로 붙들어 최대한 해명해 보려는 것. 그렇게 '나'와 '영화' 사이 끊임없는 대화를 시도하는 것. '위플래쉬' '라라랜드'의 감독 데이미언 셔젤의 '퍼스트맨'은 전자에 가까운 영화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에 탑승한 미국 우주 비행사, 한 번쯤 이름은 들어봤을 닐 암스트롱이 일련의 과정을 거쳐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하기까지를 다룬다. 혹자는 의문 하나가 싹틀 지도 모른다.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 아니냐고. 감추어진 실화도 아니고 교과서로 배워 모르는 이가 없는 이 실화를 왜 굳이 영화로 만들었냐고.

그러나 화면이 불을 밝히면 앞선 우려들은 서서히 불식된다. '퍼스트맨'은 마치 고전영화의 그것처럼 정공법으로 우직하게 서사를 밀어붙이고 있다. 시제가 뒤섞이지도, 플롯이 복잡하지도 않다. 그저 몇 년에 걸친 암스트롱의 전기를 시간 순으로 차근차근 보여준다.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은데, 그 비결의 상당 부분은 영상 이미지의 힘이다.

'퍼스트맨'의 화면 연출은 서른셋에 불과한 감독의 것이라곤 믿기지 않는 경지를 보여준다. 바라봄 그 자체로 숨이 턱턱 멎는 굉장한 숏들이 연쇄된다. 카메라는 셔젤의 전작들과 달리 라이언 고슬링(닐 암스트롱)의 안면으로 최대한 가까이 다가서는데(셔젤이 클로즈업과 익스트림 클로즈업에도 얼마나 능한 감독인지를 알 수 있다), 이것은 직접적인 권유와도 같다.

우리가 알지 못한 그의 속울음을,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응시하고 가만히 귀 기울이라는 것. 적요한 밤, 홀로 쓸쓸히 달을 응시하던 그가 정말로 달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을 때, 그러니까 이 영화 클라이맥스에 마침내 도달했을 때, 그 순간 펼쳐지는 이미지들은 경이롭다 못해 숭고하다. '퍼스트맨'은 영화가 서사 너머 이미지의 예술임을 입증해낸 보기 드문 경우다. 18일 개봉.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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