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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아스팔트 극우들, 가짜뉴스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변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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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왜 가짜뉴스예요? 팩트뉴스지.”

유튜버 안진호씨(가명)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17개월 동안 매일 자신의 유튜브에 동영상 하나씩을 올려온 안씨는 ‘우파 크리에이터’다. 19대 대선 부정선거설, 노회찬 전 의원 타살설 등도 그의 방송 소재 중 하나다. 안씨는 자기의 방송 내용은 가짜뉴스 확산이 아니라 ‘진실 알리기’라며 말을 이었다.

“사전투표 때 문재인 표가 아닌 게 문재인 표로 분류되는 걸 봤다는 사람이 많은데 선관위에서 제대로 조사도 안 했다. 노회찬 의원 건도 정확한 진실이 규명되기 전에 서둘러 마무리됐다. 여기에 대해서 합리적인 의심을 가지고 문제제기를 한 게 왜 가짜뉴스냐.”

극우파들이 즐겨보는 유튜브는 ‘가짜뉴스’의 대표적인 생산·유포처로 지목받는다. 우파 유튜브 생태계에서 앞서나가는 이들은 정규재·신혜식·황장수 등 우파 성향의 평론가, 활동가들이다. 유튜브 메인화면의 인기 탭에 오르는 동영상 중 정치 관련한 영상의 다수는 우파 유튜버들의 영상이다.

경향신문

우파 유튜버 민병일씨가 실외에서 생방송을 하고 있다. / 민병일의 시사포커스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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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활동하는 채널만 90개

우파 유튜버들의 활동은 새로운 우파 유튜버들을 탄생시키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하에서 팟캐스트 채널이 곳곳에서 생겨났던 상황의 우파 버전이다.

얼마나 많은 우파 시민들이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을까. 우파 시민들이 주로 활동하는 SNS나 유튜브 채널을 모아놓은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채널 주소를 수집했다. 10월 10일 기준으로 확인된 것만 90여개의 채널이 유튜브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상위권에는 종편 패널 등으로 활동해온 유명인사들의 방송이 차지하고 있다. 중위권부터는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이들의 1인 방송국이 나온다. 구독자 수가 적게는 1000명, 많게는 10만명에 육박하는 채널도 있다.

우파 1인 미디어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대부분 방송을 시작한 지 1년 남짓 된다는 것이다. 2017년 상반기에 첫 방송을 시작한 채널이 대부분이다. 몇 년 전부터 종교·취미 등 영상을 올리다가, 2017년 초부터 우파 방송으로 전환한 채널도 있다.

우파 유튜버들은 보통 하루에 영상 한 건 정도를 올린다. 문재인 정부 비판이나 자유한국당, 대한애국당에 대한 논평이 주된 내용이지만, 5·18 북한군 개입설, 문재인 금괴 200톤 보유설 등 대표적인 가짜뉴스 테마가 주제인 때도 있다. 방송화면 하단에는 ‘자발적 구독료’ 안내와 계좌번호가 자막으로 나온다.

우파 크리에이터들의 창작욕을 불태운 사람은 다름 아닌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지난해 1월 25일 박 전 대통령이 정규재TV에 단독 출연한 이후 많은 우파 시민들이 유튜브에 눈을 떴다. 우파 유튜버 김상우씨(가명)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김씨는 “정규재씨가 유명한 건 알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인터넷 방송을 하는 줄은 몰랐다. 정규재TV에 들어가면 오른쪽에 ‘관련 채널’로 다른 우파 방송 채널이 떠서 계속 돌려보게 됐다”고 말했다.

물론 박 전 대통령의 정규재TV 인터뷰 전부터 방송을 시작한 이들도 있다. 우파 크리에이터 허상희씨(가명)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2016년 12월 9일 페이스북에서 첫 방송을 했다. 이미 지인들을 대상으로 페이스북 생방송을 몇 차례 해본 바 있었기에 페이스북으로 시작한 것이다.

허씨는 방송을 하면서 우파 유튜브 채널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확정된 지난해 3월쯤 신의한수 등 우파 유튜브 방송을 알게 됐다. 페이스북보다는 유튜브가 영상을 보관하기도 좋다고 생각해서 지난해 4월부터는 유튜브로 방송을 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서 시작했기 때문인지 우파 유튜브 채널의 절대다수는 아스팔트 극우파 성향이다. 태극기 집회 등 아스팔트 우파들에게 중요한 사건이 벌어지는 날이면 여러 우파 방송에 ‘현장영상’이 올라온다.

허씨는 노회찬 전 의원이 사망하던 날, 노 전 의원이 살던 아파트단지를 방문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그는 자신의 행동은 가짜뉴스 유포와 무관하다고 말했다. 60대 중반인 허씨는 “그동안 살아온 경험으로 보아 ‘뭔가 있겠다’ 싶어서 현장 영상을 만든 것뿐이지 타살이 맞다는 식으로 말한 바가 없다. 있는 그대로 사건이 벌어진 현장의 상황을 보여주고 그걸 전해주면 보시는 분들이 어련히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파 유튜브들 그들만의 리그

우파 유튜브에서는 태극기 집회 현장에서 볼 수 있는 아스팔트 우파 특유의 비장함도 볼 수 있다. 구독자가 5만명이 넘는 ㄱ채널은 박 전 대통령 탄핵과정에 대해 “500년 전 중세시대에나 횡행했던 마녀사냥”으로 규정했다. ㄱ채널은 “거짓과 불의가 뒤덮고 있을 때 세상에 나설 수밖에 없던 수많은 민초들을 생각한다”고 적었다. 지난해 7월에 개설된 ㄴ채널도 채널 설명란에는 “주사파들이 대한민국 심장부를 장악해 나라를 통째로 북에 넘겨주려 한다”며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는 마지막 태극기 전사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라고 적혀 있다.

우파 유튜브 채널에서 대세인 대한애국당은 일반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집계조차 되지 않는 소수파다. 현실에서 소수파인 이들끼리 벌이는 그들만의 리그는 순수성 경쟁으로 이어진다. 유튜버 안진호씨(가명)는 “애국심보다 사익을 추구하는 위장 우파들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그가 지목한 대표적인 위장 우파 중 한 사람이 바로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다. 변 대표는 대한애국당 창당 멤버였으나 당내 갈등으로 지난해 12월 당에서 제명됐다. 우파진영 외부의 시각에서 본 변 대표는 대표적인 인터넷 극우논객이다. 하지만 우파들의 세계에서는 그 역시 친박 태극기 세력을 어지럽힌 위장 우파일 뿐이었다.

안씨는 “저는 영상에 광고도 안 넣고 후원계좌도 없다”며 “사심을 갖고 움직이는 위장 우파들 중에는 가짜로 하루에 수백 명씩 구독자를 조작해서 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애국보다는 돈벌이로 유튜브를 하려는 이들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11개월차 유튜버 민병일씨도 골수 태극기 부대 사이에서는 ‘위장 우파’로 찍혔다. 하루는 고성국 평론가가 자신의 유튜브 방송 도중 “게스트로 부르고 싶은 이를 댓글로 추천해달라”고 말했다. 누군가 민씨의 이름을 거론하자 댓글창에는 민씨를 공격하는 댓글이 쏟아진 일도 있었다. 민씨는 “최근 방송에서 애국당의 당 운영을 비판했더니 나보고 ‘위장 우파’라는 사람들이 있다. 유튜브 구독자도 떨어졌다”며 “같은 진영의 잘못을 비판하면 ‘진짜 우파 맞냐’고 공격해대니 답답한 노릇”이라고 말했다.

민씨는 문재인 정부의 가짜뉴스 단속이 우파 유튜버에 대한 단속으로 이어질까봐 걱정했다. 민씨는 “우파 국민들이 믿고 볼 만한 방송이 없는데 유튜브가 그나마 숨통을 틔우고 있다. 어르신들이 휴대폰으로 유튜브 켜서 돋보기까지 써가며 실시간 채팅방을 읽는 심정이 무엇인지 생각 좀 해달라”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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