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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보험료 더 걷자” ‘용돈 연금’이 되지 않도록 노후 소득 늘리는 연금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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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내년부터 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고요. 잘 몰랐네요.”

캐나다 몬트리올에 살고 있는 유동진 씨(57)는 내년부터 연금 보험료가 오르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묻자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캐나다는 현재 9.9%인 연금 보험료율을 내년부터 2023년까지 11.9%로 높인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직장인이라면 연금 보험료의 절반만 내면 된다. 하지만 자영업자라면 보험료를 모두 자신이 부담해야 한다.

유 씨는 고교 졸업 직후인 1981년 몬트리올로 이민을 간 뒤 식료품가게 운영과 식품수입업을 하는 자영업자이다. 따라서 그의 연금 보험료 부담은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게 됐다. 불만이 생길 법도 하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한 신뢰가 있는데다 이곳에선 연금으로 사는 노인들이 잘 지내는 편이다”라며 “많이 떼어간 만큼 은퇴자들이 잘 먹고 살게 해주지 않겠느냐”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 미래 세대를 위해 보험료 더 걷자

캐나다 정부는 2016년 6월 캐나다연금(CPP) 개정안을 마련했다. 프랑스어 사용을 고집하는 퀘벡주정부도 지난해 11월 CPP와 동일한 내용의 퀘벡주연금(QPP) 개정안을 확정했다. 개정안은 내년부터 2025년까지 7년간 단계적으로 도입된다.

‘용돈 연금’이 되지 않도록 노후 소득을 늘리는 게 개혁의 핵심이다. 연금의 현재 소득대체율은 25%다. 연금 수령액이 평균 근로소득의 25%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이를 33%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예컨대 평균 근로소득이 연 5만 달러(캐나다달러 기준·875원 환율 적용 시 4375만 원)인 가입자라면 지금은 은퇴 후 CPP로 1만2000달러 정도의 연금을 받는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연금액은 1만6000달러로 4000달러 늘어난다.

이를 위해 단계적으로 두 가지를 바꾼다. 우선 현재 9.9%인 보험료율이 내년부터 2023년까지 순차적으로 11.9%로 높아진다. 2024년과 2025년에는 2단계로 연금 보험료 액수를 결정하는 ‘기준소득액 상한선’도 14% 상향된다. 이에 따라 2025년에 이 상한선은 7만2500달러에서 8만2700달러로 올라간다.

요약하자면, 보험료를 많이 내지만 그만큼 나중에 연금 수령액도 높아진다는 이야기다. 결국 현재의 연금 수령자보다는 미래 세대를 위한 개혁의 성격이 짙다. 캐나다 몬트리올에 본사를 두고 QPP 운영을 전담하고 있는 금융기관 ‘더 캐스(The Caisse)’의 자크 드메르 고객관리 담당 부사장은 “더 많이 걷어 (미래 세대에게) 더 많이 주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캐나다연방 재무부도 “현재 은퇴생활을 하고 있거나 은퇴를 앞둔 중년층은 연금 인상을 기대해선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연금 재정의 안전성도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보험료 인상으로 연금 재정은 넉넉해지는 반면 현재 1만3000여 달러 수준인 최대 연금지급액이 2만 달러로 늘어나는 데는 40여 년이 걸릴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우려도 제기된다. 캐나다의 비영리조직인 CD하우연구소는 지난해 4월 보고서 ‘커진 연금, 커진 위험’을 통해 “40~75년 후 연금 지급액이 반 토막이 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캐나다 정부가 향후 75년간의 연평균 수익률을 3.55%로 가정하고 있지만 투자 손실이 발생할 경우 이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 해외 시장 개척으로 수익률 크게 높여

결국 개혁의 성공은 얼마나 수익률을 높이느냐에 달려있다. 기금 운용 기구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까닭이다. 이를 책임진 기관이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이다. 캐나다 최대 도시 몬트리올 시청 인근에 본사를 둔 CPPIB는 캐나다 연금이 바닥날 상황에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1966년 도입된 캐나다연금은 1993년 연금 지급액이 징수액을 초과하면서 고갈 위기를 맞았다. 인구 고령화로 은퇴자가 늘어난 게 원인이었다. 게다가 은퇴자 1명을 부양하는 근로자가 1993년 6.5명에서 2055년에는 2명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마저 나오자 우려는 공포로 변했다. 이에 돌파구로 CPP를 전담 운용하는 독립기구를 설치하기로 했고, 마침내 1997년 CPPIB가 만들어졌다

CPPIB는 ‘CPP 수익률 극대화’를 조직의 의무사항으로 못 박고 있다. 실제 성과도 좋다. 최근 5년간 한국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5.2%에 불과하다. 이 기간 CPPIB의 평균수익률은 11.8%로, 국민연금의 2배를 넘었다. 2017년에만 11.8%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현재 모든 세계 연기금을 통틀어 수익률 1위다.

최근 발간된 CPPIB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월말 기준 CPP의 순자산은 전년(3166억 달러)보다 394억 달러 늘어난 3560억 달러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늘어난 자산의 대부분은 투자수익(367억 달러)으로 연금가입자들이 내는 보험료수입(27억 달러)보다 10배 이상 많다.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이 뭘까. 바로 공격적인 투자다. CPPIB는 주식에 자산의 59.1%를 쏟아부었다. 안정적인 투자상품인 채권에는 17.4%만 투자했다. 반면 한국은 반대다. 채권에 51.1%(올 7월 말 기준)를 투자하고 주식은 36% 정도이다.

해외 시장을 적극 공략하는 것도 성공 요인 중 하나다. 국내시장에 기금의 70%가량을 투자하는 국민연금과 달리 CPPIB는 15.1%만 캐나다 국내에 투자했다. 나머지 84.9%는 모두 미국과 아시아 등 해외시장 공략에 사용하고 있다. 이미 10년 전에 영국 런던과 홍콩에 지점을 세웠다. 중국에선 알리바바에 투자하고 영국에선 부동산개발에까지 참여했다. CPPIB는 2025년까지 세계 GDP의 47%를 차지할 신흥시장에 펀드의 3분의 1을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마크 마신 CPPIB 회장은 연차보고서를 통해 “민간과 공공을 아우르는 다양한 투자상품 및 지역별 포트폴리오를 지속적으로 확장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정부와 팔 길이만큼의 거리 유지

CPPIB가 중시하는 기본 운영원칙 가운데 하나가 독립성이다. CPPIB 직원들은 “우리는 정부와 팔 길이(arm‘s length)만큼의 거리를 둔 독립기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CPP는 연금 정책과 기금 운용이 완전히 분리돼 있다. 캐나다는 고용복지부 격인 정부부처(DESD)가 연금 정책을 담당하고, 기금 운용은 CPPIB가 전담한다. CPPIB 이사회는 연방정부와 각 지방정부가 추천하는 12명의 이사로 구성되는데 모두 투자 및 경제 전문가다. 이들 이사가 최고경영자를 선임한다. CPPIB법을 수정하는 것은 캐나다 헌법을 바꾸는 절차와 동일하다.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CPPIB는 운용인력의 연봉이 성과에 연동된다. 인력 규모는 한국 국민연금의 5분의 1 수준이지만 운용인력만 보면 5배에 달할 정도로 운영수익률 제고에 초점을 맞춘다. 이들에 대한 대우도 업계 최상급이다. 몬트리올에 위치한 투자운영회사 ’알피아이에이‘에 근무하는 한국계 캐나다인 케이티 정 씨는 “CPPIB에 입사한 것 자체가 특별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한국에서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이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토론토.몬트리올=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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