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투신사고를 목격한 기관사들의 트라우마는 오래 지속되고 있었다. 10년 전 지하철 기관사로 일했던 정모(51) 씨는 “15년이 지난 지금도 누군가가 떨어지는 악몽을 꾼다”고 토로했다. 사진 기사와 무관. [헤럴드경제DB]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10년 경력 기관사 “아직도 누군가 뛰어드는 악몽을 꿔요”
-공황장애 호소 기관사 늘자 서울교통공사, ‘힐링센터’ 운영
-“지하철 투신 스크린도어 설치로 예방 가능해 늘려야”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내가 살릴 수 있진 않았을까….”
10년 전 지하철 기관사로 일했던 정모(51) 씨에게 그 찰나의 순간은 죄책감과 공포감으로 하얗게 변해있다. 그는 2000년 겨울 지하철 2호선을 운행하던 중 지하철에 몸을 던지는 30대 남성을 목격했다. 그는 당시 심정에 대해 “우리의 두 눈도 어떠한 충격을 받으면 순간적으로 ‘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끔찍한 순간은 짧았지만 충격은 오래 갔다. 몇 달간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밤에는 누군가가 몸을 던지는 악몽에 시달렸다. 그는 “정상적인 업무는 엄두도 못 냈었다. 그저 수 천명의 승객을 태운 기관사가 정신 못 차리면 안되지 하는 책임감 하나로 계속 기도하면서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지하철 투신사고를 목격한 기관사들의 트라우마는 오래 지속되고 있었다.
정 씨는 “승무 일을 안 한지 15년이 넘었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무섭다. 여전히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떨어지는 꿈을 꾼다”고 하소연했다. 업계관계자는 “투신자가 몸을 던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눈을 마주치는 사람이 기관사라는 말이 있다. 소름 끼치는 일이지만 사실”이라고 전했다.
12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8월 2일 안산선 중앙역에서 승객 투신사고가 발생하는 등 최근 5년간(2012~2016년) 총 25건의 승객 추락 투신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이 생기면서 지하철 투신 사고가 현저히 줄어든 상황이지만 1990년대에서 2000년 초엔 지하철 투신사고는 연간 100여명에 달할 만큼 많았다. 그만큼 이를 목격하는 기관사들의 충격도 상당했다.
당시 기관사로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당시엔 그게 트라우마인 줄도 몰랐고 이를 치유하는 방법조차 알지 못했었다”고 토로했다. 사상사고가 나면 모든 동료들이 모여 소주를 마시면서 서로를 위로했다. 술에 취하면 동료들은 하나 둘씩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이냐’하고 울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었다”고 전했다.
지하철에서 투신사고가 계속해서 발생하자 2003년부터 2013년 동안 승무원 7명이 공황장애를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이후 2013년 9월 서울교통공사에는 직원들의 정신 상담과 치료를 돕는 ‘힐링센터’가 생겼다. 이곳에서는 투신을 목격한 사람들을 위험도에 따라 1, 2, 3차로 나눠 집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상담, 심리검사, 심리치료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는 투신 목격자에 대한 상담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우울이나 불안, 가족 문제 등 직원들의 다양한 정신적 고통을 치유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조진환 서울교통공사 보건환경처 처장은 “힐링센터에서 상담을 받은 후 생각이 정리되고 속이 편안해졌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많다”면서 “센터의 직원을 늘리고 사무실도 증축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2001년 서울교통공사 노선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한 이후엔 투신사고가 없었다. 지하철 투신 사고는 스크린도어 설치로 인해 막을 수 있는 만큼 그 설치를 더욱 늘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say@heraldcorp.com
-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