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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사람들-③남은 자의 슬픔] 현장에서 비극 접하는 경찰관ㆍ소방관…“힘들어도 말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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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사진=헤럴드경제DB]

-매일 비극 마주하는 구조대…10명 중 1명은 “자살 생각”

-경찰ㆍ소방 정신건강 문제 심각하지만…상담 인력은 ‘부족’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 지난 8월 20일, 점심시간을 갓 넘긴 오후 1시40분께 119 상황실에는 급박한 신고전화가 걸려왔다. 한 중년 남성이 잠실대교에서 뛰어내린 것 같다는 전화였다. 신고를 받은 뚝섬 수난구조대는 5분 만에 현장에 도착해 수색을 시작했다.

잠수장비를 갖춘 수난구조 대원이 뛰어내린 김모(53) 씨를 찾은 건 신고 20분만인 오후 2시 6분. 이날 투입된 인원만 45명으로 비교적 빠르게 김 씨를 찾아냈지만, 이미 김 씨는 호흡도, 맥박도 없는 상태였다.

당시 소방 관계자는 “당시 김 씨를 구조해 인근 병원으로 신속히 이송했지만, 이미 김 씨는 맥박이 없는 상태였다”며 “하루에도 몇 번씩 비슷한 비극이 반복되다보니 구조에 나서는 대원들의 정신적 충격은 상당하다”고 했다.

실제로 최근 5년 동안 서울 시내 한강교량에서 투신한 사람은 모두 2255명에 달한다. 지난 2015년 543명까지 치솟았던 투신 건수는 지난 2016년 506명으로 줄었지만, 지난해 다시 517명으로 증가했다.

투신 건수만큼 경찰관과 소방관의 출동 건수도 늘어난다. 출동 한 건, 한 건이 모두 트라우마가 된다. 올해로 20년차 소방관이라는 한 소방경은 “모르는 사람들은 너무 자주 사고를 접해서 소방관들이 무딜 것이라 생각하는데, 현실은 정반대”라며 “몇 년 전 사고 당시 들었던 ‘살려 달라’는 피해자의 목소리가 지금도 악몽이 될 정도로 힘든데, 주변에는 말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8년 전국 소방공무원 정신건강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에 응답한 전국 소방관 4만5719명 중 10.7%인 4874명이 “최근 1년간 자살 생각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응답자 중 118명은 “자살을 5번 이상 생각했다”고 말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으로 드러났다.

소방관들이 지난 1년간 극심한 외상 사건에 노출된 경험은 평균 7.7회에 달했다. 심지어 소방관 20%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외상 사건을 경험한다”고 답할 정도로 고통을 호소했다. 소방관들의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유병률은 4.4%로 일반인(0.6%)의 7배에 달한다.

현장에서 똑같이 비극을 마주해야 하는 경찰관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4년 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찰관은 87명으로 순직한 경찰관 수(60명)보다 많다. 특히 지구대ㆍ파출소에서 민원을 담당하는 경찰관들의 정신적 충격은 상당하지만, 정작 이들을 도와줄 전문 기관은 턱없이 부족하다.

경찰에 따르면 경찰관들의 자살예방과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 설립된 ‘마음동행센터’는 전국에 모두 7곳 뿐이다. 지난해까지 센터를 이용한 경찰관은 7766명에 달하지만, 각 센터에 배치된 상근 상담사는 한 명뿐으로, 1년에 상담할 수 있는 경찰관 수는 500명 정도로 제한돼있다.

경찰은 센터 수를 확보하고 상근 상담사 숫자를 늘려 경찰관들의 트라우마 치료에 적극 나선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현장에서는 “경찰관들이 편하게 찾아갈 수 있는 환경부터 갖춰져야 한다”고 했다. 서울의 한 지구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경찰 관계자는 “경찰 중에서는 트라우마를 호소하면서도 ‘정신력이 약하다’는 얘기가 두려워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며 “경찰들이 편하게 상담받을 수 있는 환경에 더 신경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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