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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이슈추적]“풍등은 산불·폭발 점화원”…고양화재 여파 ‘공공의 적’ 된 풍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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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 5월 대구 달서구에서 진행된 풍등 날리기 행사 모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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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등 위험하다” 지자체들 행사 취소 속출


가을철을 맞아 풍등 날리기 행사를 계획했던 각 지방자치단체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7일 경기도 고양시에서 발생한 저유소 화재의 원인이 풍등(風燈)으로 드러나서다. 일각에서는 “크고 작은 화재의 원인이었던 풍등 날리기를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북 진안군은 “오는 18일 개막하는 ‘진안 홍삼축제’때 풍등 날리기 행사를 취소키로 했다”고 11일 밝혔다. 지난해 축제 때 풍등 불씨가 마이산 주변 나무에 옮겨붙는 등 풍등으로 인한 화재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다. 진안군은 올해 풍등 날리기 대신 축제 참가자들의 소원을 적은 풍선을 날리는 행사로 대체키로 했다.

강원도 평창에서는 내년 ‘효석문화제’와 ‘백일홍 축제’ 때 풍등 날리기 행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 환경문제와 풍등 수거 문제로 인해 폐지가 검토됐던 두 행사가 고양 화재를 계기로 전면 중단된 것이다. 매년 9월 열리는 효석문화제의 경우 축제기간인 지난달 2일 평창군 봉평면 일원에서 500여개의 풍등을 날리는 행사가 진행됐다. 백일홍 축제 기간인 같은 달 23일에는 평창읍 일원 축제장에서 30여개의 풍등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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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경기 고양경찰서 관계자들이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과 관련된 풍등과 동일한 제품을 공개하며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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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풍등 화재 26건…재산피해만 5억2000만원


제주도에서는 오는 13∼14일 열리는 ‘메밀축제’ 때 풍등 만들기 행사가 취소됐다. 단순히 풍등을 만드는 프로그램이지만, 체험행사를 통해 만들어진 풍등이 날려질 가능성 자체를 막기 위한 취지다. 충남 공주시(백제문화제)와 전북 무주군(무주반딧불축제) 등도 내년 축제 기간에 열리는 풍등 날리기 중단과 풍등 재질 교체 여부 등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풍등을 둘러싼 지자체들의 고민이 큰 이유는 행사의 인기 못지않게 화재 발생 가능성이 높아서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국내 곳곳에서는 총 26건의 풍등 관련 화재가 발생해 5억2447만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재산피해가 집계되지 않거나 풍등으로 인한 직접 발화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화재들은 모두 제외한 건수다.

실제 지난 1월 부산시 기장군 삼각산 인근 50만㎡를 태운 대형 화재 원인으로 풍등이 지목됐지만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지난해 12월에는 강원도 동해시 망상동 한 해수욕장 인근에 떨어진 풍등이 화재로 이어지면서 갈대밭 300㎡가량이 불에 타기도 했다.

소방 당국은 풍등 행사를 전후로 예방 차원에서 출동하는 소방관들도 많다는 점에서 행사 자제를 호소해왔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풍등 날리기와 관련해 소방관들이 출동한 사례는 실제 화재의 4~5배에 달한다는 점에서 소방력 낭비가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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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일 강원도 평창군 효석문화마을에서 열린 제20회 평창효석문화제를 찾은 관광객들이 각자의 소망을 담은 풍등을 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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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들은 새벽까지 ‘풍등 찾기’ 진땀
행사 후 땅에 떨어진 풍등을 수거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공무원과 축제 관계자들은 축제가 끝난 뒤로도 풍등을 찾느라 애를 먹어왔기 때문이다. 평창군 관계자는 “효석문화제의 경우 날려진 500여개의 풍등 중 새벽까지 80~90%밖에 수거를 못 해 꾸준히 환경문제가 제기돼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풍등 행사와 관련한 법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행법상 소방당국이 금지·제한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얼마든지 풍등을 날릴 수 있도록 돼 있어서다. 지난해 말 개정된 소방기본법 12조에는 ‘소방본부장이나 소방서장이 풍등 등 소형 열기구 날리기, 그 밖에 화재 예방상 위험하다고 볼만한 행위를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다’고만 규정돼 있다. 소방당국의 제한 명령이 없으면 풍등을 날릴 수 있다는 의미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풍등은 바람의 영향에 따라 어디로 얼마나 날아갈지 알 수 없는 산불과 폭발의 점화원”이라며 “화재 위험이 없는 안전장치가 마련되기 전까지 풍등 날리기는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안·평창=최경호·박진호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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