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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문재인·트럼프 정부, ‘대북 제재’ 정면 충돌하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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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제재 해제 문제를 놓고 정면으로 충돌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0일 국회 외교통일위 국정감사에서 북한의 천안함 폭침에 따른 한국의 ‘5.24 제재’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발언하자 트럼프 정부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미국은 ‘선 비핵화 후 제재 해제’ 전략을 동맹국인 한국이 앞장서서 무력화하려 든다고 성토한다.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대북 제재 해제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대북 독자 제재 해제에 나서면 미국 정부의 대북 핵 협상 전략이 뿌리째 흔들릴 것이라는 게 미국 측 판단이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문재인·트럼프 정부 간 대북 제재 완화 문제를 둘러싼 대립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한·미 간 갈등이 고조되면 문 대통령 정부의 중재 노력이 벽에 부딪힐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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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워싱턴=AP연합뉴스


◆화들짝 놀란 트럼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강 장관의 대북 제재 해제 검토 발언에 대해 “우리의 승인 없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그들은 우리의 승인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AP 통신 등이 보도했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독자 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는 한국 측 입장은 자신이 허락할 때에만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AP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동맹국에 북한이 비핵화할 때까지 대북 제재를 유지하라고 독려해 왔다고 지적했다.

미 국무부의 한 관계자도 언론에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 완화는 비핵화에 뒤이어 이뤄질 것이라는 점을 매우 분명히 해왔다”고 말해 ‘선 비핵화, 후 제재 완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가 그 지점(비핵화)에 빨리 도달할수록 더 빨리 제재를 해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과 한국은 북한에 대한 우리의 통일된 대응을 위해 긴밀한 조율을 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로버트 팔라디노 국무부 부대변인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 완화는 비핵화의 뒤를 이어 이뤄질 것이라는 점을 처음부터 매우 분명히 해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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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2018 외교부 국정감사에 참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뉴시스


◆미국의 민감한 반응

미국의 뉴욕 타임스(NYT) 등 주요 언론은 강 장관의 5.24 조치 해제 용의 발언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NYT는 “한국 정부가 대북 독자 제재를 해제해도 남북 경협이 획기적으로 증대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이는 한국이 유엔 차원의 제재를 지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NYT는 “한국의 대북 독자 제재는 많은 부분이 유엔의 대북 제재 내용과 중첩되고, 한국의 제재 완화 조처가 상징적인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NYT는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가 이뤄질 때까지 대북 ‘최고의 압박’ 전략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왔고, 한국이 비핵화 분야에서 진전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 관계를 너무 빠른 속도로 진척시키지 말 것을 요구해왔다”고 전했다.

미 의회 전문지 ‘더 힐’ (The Hill)은 이날 “한국이 대북 제재를 해제해도 북한이 안심할 수가 없을 것”이라며 “북한은 여전히 미국과 국제기구의 강력한 경제 제재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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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한·미 대북 공조

미국의 언론 매체 복스(Vox)는 ‘한국이 대북 제재 완화를 바라고 있고, 이는 트럼프의 북핵 전략을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미 관계 악화 가능성을 제기했다. 복스는 “한국이 한·미 관계를 해칠 뿐 아니라 북한을 도와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매체는 “한국이 대북 제재 완화 조처를 하면 이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 해체를 위한 대북 압박 캠페인이 산산조각이 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복스는 “한국이 대북 제재를 완화하면 한·미 양국의 북한 핵 프로그램 종식을 위한 접근 방식에 중대한 균열이 생길 수 있고, 한·미 관계가 전반적으로 붕괴하는 사태를 맞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매체는 “북한이 지난 수십 년 동안 한·미 유대 관계 약화를 최고의 목표로 추진해왔다”면서 “한·미 양국의 공동 전선이 무너지면 정치적 긴장 사태를 유발할 것”이라고 전했다. 복스는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을 더는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여길 수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매체는 “문 대통령 정부가 트럼프 팀이 북한에 과도하게 공세적이라고 여기면서 미국의 지지 없이 대북 유화 정책의 길을 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미 양국 정부 사이에서 이미 틈이 벌어졌다는 징후가 나타났다고 이 매체가 강조했다. 복스는 그 근거로 강 장관이 지난달 남북 정상회담 계기에 나온 군사합의서와 관련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자신에게 불만을 표시한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는 점을 들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란틱 카운슬 선임 연구원은 이 매체에 “김정은이 한·미 양국 사이에서 이간질하는 북한의 각본을 이용하는 데 능란한 솜씨를 보였다”면서 “이는 곧 한·미 양국의 대북 지렛대가 무너지고 있고, 대북 최대 압박 전략을 다시 가동하기가 극도로 어렵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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