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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IF] 수퍼유전자 조작한 '불임 모기'로 말라리아 박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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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임피리얼칼리지런던(ICL) 연구진은 지난달 말 국제학술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를 통해 "실험실에서 유전자 드라이브(gene drive) 기술로 번식이 안 되는 '불임(不妊) 모기'를 만들어 8세대 만에 말라리아 모기를 완전히 없애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유전자 드라이브는 생명체에 특정 유전자를 끼워 넣어 결국 해당 집단의 유전 형질을 새롭게 바꾸는 기술이다. 새로운 유전자는 처음에는 일부 개체만 가지지만 세대를 거듭하며 전체 집단으로 퍼져 나중에는 고유 형질이 된다.

연구진은 효소 단백질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사용해 모기의 DNA에 사람 피를 빨아먹지 못하고, 자손도 낳지 못하게 하는 불임 유전자를 끼워넣었다. 이런 모기들이 야생 모기들과 번식하면서 다음 세대로 불임 유전자들이 퍼져나갔다. 안드레아 크리산티 ICL 교수는 "유전자 드라이브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매년 45만명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말라리아를 원천 차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연구에 대해 "인간이 생물을 멸종시킬 권리가 없다"며 반발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모기가 사라지면 먹이사슬이 혼란에 빠져 생태계 전체에 피해가 갈 수 있다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간과 모기의 전쟁은 어떻게 진행될까.

불임 모기 퍼뜨려 박멸

이번 성과는 유전자 조작을 통한 모기 박멸 연구에서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각종 전염병을 옮기는 모기의 유전자를 조작해 개체수를 줄이려는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변이 유전자를 가진 모기들로 인해 개체수가 줄어들지만 몇 세대가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유전자 가위로 바꾼 유전자 부위에 돌연변이가 일어나 다시 이전 모습을 회복했기 때문이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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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산티 교수는 모기의 '수퍼 유전자(supergene)'를 조작하는 방법을 택했다. DNA는 고무줄처럼 꼬여 덩어리를 이룬다. 바로 염색체이다. 수퍼 유전자는 염색체 중에서 DNA들이 아주 강하게 꼬여 있는 부분으로, 잘 풀리지 않아 다른 유전자와 자리를 바꾸는 일이 거의 없다. 크리산티 교수는 "가장 안정적인 수퍼 유전자에 불임 유전자를 끼워 넣어 원상태로 돌아가는 돌연변이를 차단했다"고 말했다.

유전자 조작으로 모기를 박멸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미국 바이오 기업 모스키토메이트는 최근 뎅기열 바이러스와 지카 바이러스를 옮기는 흰줄숲모기를 없앨 수 있는 불임 모기를 개발해 미국 환경보호국(EPA)의 승인을 받았다. 이 업체는 모기가 짝짓기를 해도 수정란이 부화하지 않도록 유전자를 바꿨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리버사이드캠퍼스(UC리버사이드) 연구진은 지난해 11월 유전자 가위로 눈이 3개이면서 날개가 없는 기형 작은빨간집모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기형 모기는 정상 모기처럼 날거나 활동하기 어렵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일찍 죽는다.

생명 윤리 논란도 거세

하지만 일부에서는 유전자 조작을 통한 모기 박멸 기술에 대해 "사람에게 한 생물 종(種)의 멸종을 결정할 권리가 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모기가 사라지면 모기나 유충인 장구벌레를 먹고 사는 물고기·박쥐·새·곤충들이 잇따라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모기에 심은 불임이나 성전환 유전자가 다른 생물로 옮겨가 멸종의 연쇄 반응이 일어날 가능성도 제기됐다.

연구자들은 유전자 드라이브의 부작용이 지나치게 과장됐다고 반박한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개체수를 줄이려는 모기는 말라리아를 옮기는 얼룩날개모기를 포함해 3종으로 전체 모기(3500여종) 중에서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 또 지카 바이러스를 옮기는 이집트숲모기의 경우 자연보다 도시에서 빗물이 고인 곳에 주로 서식하기 때문에 이 모기가 없어지더라도 상위 포식자가 받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최인준 기자(pe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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