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4 (금)

견책과 계급 정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마석우 변호사의 법률 이야기-79]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물론이고 사기업체 역시 그 조직의 내부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징계 제도를 운용한다. 내부 구성원에 대한 법적 제재이기에 법률적 근거가 있어야 하고 미리 정해진 엄격한 절차를 따라야 한다. 미리 형벌의 종류를 법으로 정해놓아야만 하듯이 징계의 종류도 미리 정해놓아야 한다. 공무원이라면 국가공무원법 같은 곳에 사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취업규칙 같은 곳에 그 근거를 마련해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공무원법을 기준으로 징계에는 파면, 해임, 강등, 정직, 감봉, 견책이 있다. 파면부터 정직까지가 중징계이고 감봉 이하 견책까지가 경징계다. 중징계 가운데 파면과 해임은 신분을 완전히 박탈하는 것이므로 흔히 배제징계라고 한다. 파면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퇴직금이나 퇴직연금의 절반 가까이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가장 중한 징계다.

징계처분의 가장 말미를 차지하는 것이 견책이다. 쉽게 와닿지 않는 용어인데 '시말서를 제출하고 장래를 훈계한다'는 의미다. 시말서 제출이라고 보면 되겠다. "까짓, 시말서 쓰는 게 뭐 대수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공무원의 경우 몇 개월간 승진 제한과 승급 제한 제재가 따른다. 몇 개월 승진 대상이 아니라고 해서 그게 또 문제랴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게 그 사람 인생에 치명적인 한순간이 될 수도 있다.

군과 경찰에는 계급정년 제도가 있다. 경찰의 경우 경정은 14년, 총경은 11년, 경무관은 6년, 치안감은 4년이다. 가령 경감에서 경정으로 승진한 후 14년 동안 총경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정년이 되어 경찰에서 강제로 떠나야 한다는 것이 바로 이 계급정년 제도다. 가령 14년이라는 시간이 긴 시간 같지만 14년 내내 승진의 기회를 주는 게 아니다. 승진 8년 차 정도가 되는 때를 기준으로 그 이전에는 승진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고 적정 승진 시기를 놓치면 또 사실상 승진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진다. 한마디로 경찰에서 경정으로 승진한 후 가령 10년 정도를 넘겼다면 사실상 몇 년 후 경찰을 떠나야 되는구나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자, 여기 10년 차 된 경정 한 분이 계신다(경정은 경찰서장인 총경의 바로 한 단계 아래 계급이다. 일선 경찰서에서 과장 업무를 수행하는 분들이다). 올 해 승진을 꼭 해야 하는 입장이기에 그해 승진을 목표로 열심히 업무를 수행하시다 아주 작은 실수를 했다. 누가 보더라도 이게 무슨 징계감이야 싶은 경미한 사고였다. 그러나 어쨌든 실수는 실수. 징계위원회의 위원들 모두가 경징계, 경징계 가운데서도 가장 제재의 정도가 약한 견책에 의견이 일치했다. 그러나 당사자에게는 징계위원회까지 올라간 건에 대해 가장 경한 징계를 받았다고 해서 좋아할 일이 전혀 아니다. 견책에 따른 6개월간 승진 제한으로 그해 승진은 법적으로 막혀 있다. 사실상 내년에는 승진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견책 처분이 결정되는 바로 그 순간 몇 년 후 평생을 바쳐온 조직에서 옷을 벗어야 한다는 것도 결정된다고 보면 되겠다.

제도가 그랬다. 그 사유에 비추어 징계가 예정한 것은 시말서 제출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해임에 준하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몇 개월 전에 참석한 모 징계위원회에서 실제 있었던 사례였다. 법이 예상하지 못한 이런 맹점이 어디 한두 곳이랴? 계속해서 마음이 착잡했다.

[마석우 변호사]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