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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국감&공감]차 등록할 때 수십만원 뺏기는 기분…은행만 웃는 ‘의무매입 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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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신규 등록할 때 소비자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채권 거래로 은행·증권사가 매년 1000억원대의 수익을 챙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행적으로 10명 중 9명이 채권을 즉시 되파는데 이 과정에서 드는 비용이 은행·증권사로 흘러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지난해엔 이 돈이 약 1500억원이었다.

행정안전부가 10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서울 중구·성동구 갑)에게 제출한 ‘2013~2018년(상반기) 지역개발채권 및 도시철도채권 매출 관련 현황’ 등을 분석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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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이 지난 7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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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현행법이 공채(公債) 의무 매입 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공기업법·도시철도법에 따르면 ▶자동차를 신규·이전 등록하거나 ▶국가·지자체와 계약을 맺거나 ▶국가·지자체로부터 각종 면허·인허가를 받으려는 사람은 지역개발채권 또는 도시철도채권이라는 공채를 반드시 사야 한다.

지역개발채권은 광역시·도나 인구 100만명 이상 대도시 지자체에서 발행한다. 이를 통해 마련된 기금은 지역 사회간접자본(SOC) 조성과 지자체 재정 부족분을 보전하는 데 활용된다. 도시철도공사가 있는 광역시 등에서 발행하는 도시철도채권은 도시철도 건설·운영에 필요한 자금 조달용으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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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지방공기업법과 도시철도법이 규정하고 있는 지역개발채권 및 도시철도채권 제도 개요. [자료=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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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들은 주로 자동차를 사서 등록할 때 이 같은 의무매입 채권을 접하게 된다. 그런데 본인이 채권을 구매했다는 사실조차 잘 알지 못한다. 낮은 금리(지역개발채권 1.25%, 도시철도채권 한국은행 기준금리)로 재테크로서의 장점이 없는 데다 종이 채권을 5년(서울 도시철도채권은 7년)간 갖고 있어야 해서 대부분 보유를 꺼린다. 그래서 사자마자 팔게 된다.

지난해 발행된 지역개발·도시철도채권 325만4139건 중 298만842건(91.6%)이 즉시 매도됐다. 2016년에는 92.7%(342만817건 중 317만905건)가 즉시 매도됐다.

문제는 의무매입 채권을 즉시 매도할 때 비용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현행 법규(도시철도법 시행령)에 따르면 지자체는 한 개인이 중형 승용차(1600~2000㏄)를 구매해 신규 등록할 때 찻값의 12% 범위에서 도시철도채권을 매입하게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2200만원짜리 자동차를 등록하려면 264만원(12%)을 내고 채권을 사야 한다. 대부분 이를 곧바로 되파는데, 매입가격에 평균 9%의 할인율(5년 후 가치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는 비율)을 적용해 더 싸게 팔게 된다. 약 23만7000원(264만x0.09)의 거래 비용을 은행이나 소액채권 전담 증권사에 지불하는 셈이다. 자동차를 등록할 때 실제 채권의 매입과 매도가 순식간에 벌어지지만(주로 판매 영업사원이 대행) 정작 소비자들은 본인이 23만여원어치의 채권을 사들인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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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장안동 중고차 시장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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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표 의원실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지역개발채권은 즉시 매도 비용이 약 530억원이었고, 같은 기간 도시철도채권의 즉시 매도 비용은 약 843억원이었다. 즉시 매도를 대행하는 은행·증권사에 지불하는 수수료 비용(채권 매입가의 0.6%·앞의 사례의 경우 1만5840원)까지 합하면 지난해 발생한 즉시 매도 비용은 약 1500억원이었다. 자동차 구매자 등이 준조세처럼 부담하는 비용이 결국 은행·증권사로 흘러 들어간 것이다.

홍 의원은 “지역 개발과 도시철도 운영에 필요한 자금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이 같은 공채 발행의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대부분의 국민이 공채를 즉시 매도하면서 일정한 금액을 부담해 그만큼 돈을 뜯기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채의 금리를 현실화해 상품성 있는 소액 채권이 되도록 하거나, 즉시 매도로 발생하는 금액을 아예 조세화 해서 국민에게 선택의 자율성을 부여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국회에서 관련법 개정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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