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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리뷰]개같은 세상을 사는 개·돼지 시민들, 연극 '그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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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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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괜찮아, 우리 모두는 유기견이야."

세종문화회관 산하 예술단체인 서울시극단의 연극 '그 개' 속 대사에 믿음이 간다.

틱 장애(투렛 증후군)를 알고 있는 열여섯살 여중생 '해일'이 유기견 '무스탕'을 향해 외치는 소리. 불안한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게 욕설 "씨X"을 내뱉는 해일은 자신처럼 외롭게 지내는 무스탕과 정을 나누면서 성장해 간다.

극의 초반은 발랄하다. 미술 강사이자 화가인 '선영'과 그녀의 남편 '영수'가 건강보험료 3만원을 더 내는 것을 걱정하는 궁핍한 생활에도, 아들 '별이'를 키우며 꿈을 키워나가는 모습은 밝고 건강하다.

하지만 가난이 주는 비정한 현실을 끝내 벗어나지 못한다. 이들 부부와 별이, 그리고 해일과 무스탕, 해일의 아빠가 모시는 제약회사 사장 '장강'과 그의 반려견 '보쓰'가 얽히면서 빚어내는 비극은 최소한의 희망마저 무너뜨리는 화근이 된다.

해일이 지난한 현실의 유일한 탈출구로 삼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녹여낸 웹툰 '어비스 러브'다. 아이들은 공상을 통해 이해하기 힘든 현실의 어려움을 넘어선다. 철없는 어린 나이에 나이 많은 아빠와 결혼한 엄마는 자신까지 버려둔 채 식당 주인과 함께 살림을 차린다. 어느 날 엄마가 만들어준 볶음밥이 너무 먹고 싶어, 1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고 가 그곳에서 꾸역꾸역 밥을 넘기는 것이 해일의 일상이다.

'그 개'의 통찰이 뛰어난 것은 1시간50분이라는 비교적 길지 않은 러닝 타임에 장애와 편부모 가정에 대한 편견, 반려견 제도의 미비, 장강으로 대변되는 갑질, 선영·영수 부부의 사례로 요약되는 젊고 가난한 부부의 출산·육아 문제 등 사회의 부조리를 톺아본다는 것이다.

가난한 생활에도 젊은 부부의 모범으로 통할 정도로 건강한 의식을 지닌 선영·영수 부부는 문으로 들어온 가난이 창밖으로 최소한의 행복을 내던지는 걸 목도하는 순간, 차갑게 돌변하고 자신들의 배려를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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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그 개'는 복잡하게 미로처럼 얽힌 대한민국의 어둡고 난해한 논리 세계를 일상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시선으로 자연스레 풀어낸다. 거시적인 관점으로 한국의 내면과 무의식을 들여다본 전작들 '썬샤인의 전사들'과 '함익'으로 호평 받았던 김은성(41) 작가는 2년 만의 창작극 '그 개'로 '날 선 일상의 감수성'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어두움으로 침잠하던 극은 마무리에도 명쾌하거나 밝은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해일은 그럼에도 살아간다. 이해하지 못할 이 세계에서 내동댕이쳐진 관객들이 불안한 상황에서 미로를 맞닥뜨릴지라도, 저만이 만들어놓은 상상의 세계에서 숨 쉴 수 있다는 걸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무스탕의 본래 이름은 '바닐라'. 해일은 이렇게 말하며 바닐라에게 '아메리카산 작은 야생마'를 뜻하는 무스탕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그런 달달한 이름으로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 이 힘겨운 세상을 살아가는 유기견들이여, 저마다 버틸 수 있는 가명을 짓자. '민트초코 바닐라 라테' 같은.

김 작가와 '썬샤인의 전사들'과 '함익'에서 각각 호흡을 맞춘 부새롬(42) 연출과 서울시극단 김광보(54) 단장 겸 예술감독은 이번에도 그의 든든한 우군이 돼 준다. 부 연출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연스런 연출을 뽐내고, 김 감독은 작가·연출이 자유롭게 상상을 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 유기견 무스탕과 셰퍼드 보쓰를 배우가 연기하는 등 연극적인 장치도 돋보인다. 해일 역의 배우 이지혜(32) 등도 호연하다. 공연은 2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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