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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죽어서도 시리아 참상 알리는 전선 기자 ‘마리 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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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사진=BBC방송


“왜 세상은 시리아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가?”

2012년 2월21일 영국 선데이타임스의 기자 마리 콜빈(여·당시 56세·사진 오른쪽)은 런던에 있는 본사에 전화를 걸어 울분을 토로했다.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 정권이 시리아 도시 홈스를 무차별 폭격해 아이들이 부모를 잃고 기아에 허덕이는 참상을 목도한 뒤였다. 스리랑카, 체첸, 리비아, 동티모르, 이라크(걸프전) 등 분쟁 지역만 30여년간 누볐던 베테랑 기자는 처참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이튿날 그는 시리아 정부군이 폭격을 예고했던 임시 프레스센터에 남아 있다 폭격을 맞고 생을 마감했다. 시리아를 떠나기 하루 전이었다.

한 쪽 눈을 검은 안대로 가린 채 전 세계 분쟁 지역을 취재했던 마리 콜빈. 동료 기자들은 그를 ‘침묵이 지배하는 곳에 직접 찾아가 버려진 이들의 목소리를 전 세계에 알리는 기자’로 기억했다. 5남매 중 첫째로 태어난 콜빈은 학창시절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하며 현실에 눈을 떴다. 미국 예일대 인류학과에 입학한 뒤 학내 언론사 ‘더 예일 데일리 뉴스’에서 기사를 쓰며 기자의 꿈을 키운 그는 졸업 후 UPI통신에 입사해 파리 지국장을 지냈다. 하지만 파리는 그의 무대가 아니었다. 안락한 생활에 염증을 느낀 그는 중동 특파원 부임을 약속받고 1985년 영국 선데이타임스로 옮겼다. 30여년에 걸친 전선 기자 생활의 시작이었다.

그는 특파원 부임 첫해에 동료 기자 주디스 밀러(뉴욕타임스)가 준 연락처를 가지고 무작정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를 찾아갔다. 그리고 세계 최초로 카다피 인터뷰를 성사시켰다. 그는 “전 세계 사람들이 싫어하는 카다피가 붉은 실크 셔츠를 입은 채 지하의 작은 방으로 들어왔다”고 회고했다. 1987년 이스라엘 베이루트 취재를 계기로 그는 난민 취재에 나섰다. 당시 그는 시민들이 다니는 거리를 취재하다 총격에 쓰러진 22살 팔레스타인 여성을 목격한 뒤 ‘죽음의 길거리에서 스나이퍼들이 여성을 저격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로 팔레스타인 난민의 참상을 전 세계에 전했다.

1991년 걸프전 발발 당시 영국 기자 중 처음으로 이라크에 도착해 1보를 타전했다. 1999년에는 인도네시아 정부군의 폭격 위협을 받고 있던 동티모르로 날아갔다. 난민 1500명과 함께 4일 동안 생사를 함께하며 이들의 탈출기를 기사화했다. 같은 해 12월 체첸 사태 현장에서는 군인들이 어린이를 장난으로 죽이는 현장을 고발했다. 13kg 무게의 짐을 지고서 혹한을 뚫고 꼬박 4일을 걸어서 코소보에서 조지아까지 탈출한 적도 있었다.

2001년 4월 스리랑카에서도 그는 죽을 고비를 겪었지만 결코 펜을 꺾지 않았다. 정부로부터 독립을 원하는 타밀 타이거족을 취재하던 중 그는 정부군의 RPG 탄을 맞아 왼쪽 눈을 잃고 폐를 다치는 중상을 입었다. 그는 부상한 상태에서 기사를 마감 전에 송고했다. 그는 후일 당시를 회상하며 “용기는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분쟁 지역 취재 과정에서 그는 “언제든 그곳에 가야만 한다”는 원칙을 고집했다. 분쟁의 참상을 보도하면서 지속적인 심리적 외상에 시달렸지만 그는 2011년 ‘아랍의 봄’으로 불린 중동 민주화 현장은 물론 내전으로 치달은 시리아로 달려가서 기사를 썼다. ‘취재진의 어머니’로 불렸던 그가 시리아에서 숨진 사실이 알려지자 동료들은 “그는 언제나 폐허 현장에 있었다. 현지인에게 ‘차를 태워 달라’며 용기 있게 현장을 누비던 그의 모습이 생생하다”며 애도했다.

영국 BBC방송은 마리 콜빈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언더 더 와이어’가 개봉한다고 최근 전했다. 이 영화에서 콜빈은 배수관을 뚫고 반군의 도움을 받아 사흘간에 걸쳐 30km를 걸어간 끝에 그를 죽음으로 이끈 홈스에 도착한다. 홈스로 가는 여정에 함께 했던 동료기자 폴 콘로이(사진 왼쪽)는 “당시 레바논 관계들로부터 아사드 정권이 어떤 기자든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정말 끔찍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시리아 독재 정권은 아직도 권력을 지키기 위해 러시아를 등에 업고 반군의 마지막 근거지인 이들리브를 위협하고 있다. 콜빈은 죽은 후에도 시리아 내전의 참상을 고발하고 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사진=BBC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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