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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첫 월급 나를 위해서만 쓰기 싫었다"…네팔 간 국제구호 후원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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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구호개발 NGO 단체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가 후원자들과 함께 지난달 20일부터 26일까지 네팔을 방문했다. 후원자에게 자신들이 후원한 아이를 직접 보여주고 후원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리기 위해서다. 네팔을 다녀온 김용섭(62), 최두리(29), 정석윤(40)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중앙일보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가 지난 8월 후원자와 함께 네팔에 갔다. 후원자들은 5박 7일동안 자신이 후원하는 아동을 만나고 돌아왔다.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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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생각에 울컥”…작은 마음의 기적 경험


“아이 아빠가 카타르에 있다고 하는데 울컥하더라”

대구시 비산동에 사는 김용섭(62)씨는 지난 2013년부터 매달 세이브더칠드런을 후원해왔다. 후원금은 네팔에 사는 12살 소년 라키에게 전달됐다. 김씨 역시 80년대 젊은 시절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등 중동 국가에서 5년을 지냈다. 아빠가 돈을 벌기 위해 카타르에 갔다는 라키의 말에 예전 생각이 났다. 라키에게 “40여년 전 나도 중동에 돈을 벌어 왔고, 열심히 일해서 지금은 가족과 행복하게 산다”고 말해줬다.

후원금을 내는 회사 동료를 보고 시작한 기부지만 매달 돈을 내다보니 문득 '이 돈이 정말 잘 쓰일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후원금 납부를 자동이체로 해 봉사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는 고민 끝에 네팔에 직접 가보기로 했다. 네팔에 간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자 반응이 좋았다. 단골 치과 의사는 '좋은 일 하러 가신다'며 진료 비용을 깎아 줬다.

가기 전 설레는 마음으로 쇼핑도 했다. 라키와 친구들에게 줄 펜과 학용품을 20개 정도 샀다. 기대를 품고 도착한 네팔은 우리나라 70년대의 모습이었다. 라키를 만나기 위해 간 학교 교무실에는 선생님을 위한 의자가 없었다. 책상과 철제 캐비넷 3개가 전부였다. 검정 고무신에 다 떨어진 양말을 신고 끼니 걱정을 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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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가 지난 8월 후원자와 함께 네팔에 갔다. 후원자들은 5박 7일동안 자신이 후원하는 아동을 만나고 돌아왔다.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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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아이들 표정은 너무나도 밝았다. 김씨는“큰돈을 기부한 것도 아닌데 열렬히 환영해 주는 모습을 보니까 몸 둘 바를 몰랐다”고 기억했다. 라키는 쌍둥이였다. 김씨는 “현지에서 가방 2개를 사서 줬는데 기뻐하는 모습을 잊을 수 없다”며 “비로소 주는 기쁨을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매달 낸 후원금이 모여 학교가 되고 음식이 됐다. 작은 마음이 더해져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첫 월급 나에게만 쓰기 싫어서 시작”


최두리(29)씨는 2012년 주말 아르바이트로 첫 월급 25만원을 받았다. 어렵게 번 돈을 의미 있게 쓰고 싶었다. 그 마음이 7년 동안 이어졌다. 두리씨가 5살부터 후원한 록사나는 이제 12살이 됐다. 최씨는 “정말 먼 나라에 조카가 있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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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가 지난 8월 후원자와 함께 네팔에 갔다. 후원자들은 5박 7일동안 자신이 후원하는 아동을 만나고 돌아왔다.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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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만에 만날 기회가 생겼지만 무슨 얘길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공부 열심히 해라’ ‘부모님 일 많이 도와드려라’ 같은 잔소리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네팔에 도착한 뒤엔 깜짝 놀랐다. 도로는 포장이 안 돼 있었고 길 위엔 전깃줄이 거미줄처럼 어지럽게 늘어져 있었다. 그는 “공항이 우리나라 용인 시외버스터미널만 한 규모였다”며 “내가 후원한 아이가 이곳에 있다는 마음에 짠한 감정이 들었다“고 말했다.

처음엔 최씨는 록사나를 찾지 못했다. 아이가 “난 언니를 한눈에 알아봤다”며 천진하게 말할 땐 눈물이 날 뻔했다. “이 언니가 내 후원자”라며 반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록사나를 볼 땐 학부모 회의에 참석한 엄마의 기분마저 느꼈다. 아이의 반 아이 중 절반은 맨발이었다. 나머지 반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최씨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복지를 누릴 순 없지만, 최소한 권리, 인권 보장이 됐으면 좋겠다”며 “특히 아동 복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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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가 지난 8월 후원자와 함께 네팔에 갔다. 후원자들은 5박 7일동안 자신이 후원하는 아동을 만나고 돌아왔다.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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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단체에 대한 의심 사라져…“부자가 기부하는 것 아냐”


네팔에 간다는 정석윤(40)씨에게 주변 사람들은 ’특이한 곳에 휴가 간다’는 반응이었다. 그가 세이브더칠드런을 통해 네팔에 아이를 후원한 지 6년이 지났다. 1년 전부터는 13살 소녀 카리슈마와 인연을 맺었다. 네팔로 떠나기 전 선물을 고르느라 한참을 고민했다. 마트에 있는 학용품 판매대와 아동용품 판매대를 몇 바퀴 돌고 결국 노트, 연필 등을 골랐다. 국산 손톱깎이가 질이 좋다기에 그것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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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가 지난 8월 후원자와 함께 네팔에 갔다. 후원자들은 5박 7일동안 자신이 후원하는 아동을 만나고 돌아왔다.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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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슈마는 처음엔 정씨를 알아보지 못했다. 일이 바빠 아이가 보낸 편지만 읽고 제대로 답장을 해주지 못했다. 사진도 보낸 적이 없다. 그런 그에게 카리슈마는 작은 상자를 건넸다. 상자 안에는 손수 만든 꽃이 담긴 유리병이 있었다. ‘이런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나?’란 생각이 들었다.

정씨는 자신의 후원금이 잘 쓰이는지 궁금했다. 현장을 본 뒤엔 구호단체에 대한 의구심이 사라졌다. 그가 낸 후원금은 아이들이 자립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성과가 돼 있었다.

소비에 대한 시선도 변했다. 보통 아이 한 명당 매달 3만원의 후원금을 낸다. 정씨는 “한 달에 3만원이면 친구 만나 한 끼 식사하는 정도인데 돈을 쓸 때마다 아이와 현지 활동가의 모습이 떠올라 함부로 낭비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같이 네팔에 간 분들이 엄청난 부자여서 후원금을 내는 게 아니다"라며 "후원금을 더 늘릴까 고민”이라고 덧붙였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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