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맛과 식품의 과학] 맛보다 향 중독은 드물다지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혀로 느끼는 맛은 고작 단맛, 신맛, 짠맛, 감칠맛, 쓴맛밖에 없다. 그런데 코로 느끼는 향은 사과 향, 딸기 향 등 수만 가지가 있고, 사과도 제각각의 맛이 다른 것을 구분할 수 있으니 인간이 구분할 수 있는 냄새의 종류는 1조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그것을 알고 있는 맛의 과학자들은 풍미에서 미각(맛)은 10~20%, 후각(향)이 80~90%의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도 올바른 평가는 아니다. 세상에 맛의 중독은 흔해도 향 중독은 드물기 때문이다. 물에 설탕만 넣은 것과 향만 넣은 것을 주면 향만 넣은 것을 선택하는 동물은 없다.

판다는 원래는 잡식성이었지만 400만년 전 감칠맛 수용체의 유전자가 고장 난 후 고기 맛을 모르게 되었고 대나무 잎을 먹고 산다. 벌새가 열심히 꽃을 찾는 것은 향 때문이 아니라 매일 자기 체중의 절반에 해당하는 단물을 먹을 정도로 단맛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야생 염소는 아찔한 절벽에 매달려 소금을 핥고, 나비는 악어나 거북의 눈물을 핥는다. 소금 때문이다. 초식동물에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이 뭐냐고 물어볼 수 있다면 아마 소금이라고 답할 것이다. 세상에는 이처럼 맛 중독은 흔해도 향 중독은 없으니 미각의 역할이 결코 후각의 역할에 비해 작다고 할 수 없다. 단지 지금은 향에 비해 맛은 너무나 쉽게 채워지는 욕망이라 그 중요성이 과소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호랑이 같은 육식동물은 단맛 수용체의 유전자가 고장 나 고기만 먹고 사는데 그런 미각의 상실이 단 한 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한다. 미국 모넬감각센터에서 식육목 12종(7종은 육식, 5종은 잡식)과 고래목 1종(큰돌고래)의 미각 수용체 유전자를 조사한 결과 육식만 하는 종들은 예상대로 단맛 수용체 유전자가 고장 나 있었고, 잡식을 하는 5종은 온전했다. 그런데 단맛 수용체의 유전자가 고장 난 자리가 종마다 달랐다고 한다. 한 종의 동물이 단맛 수용체가 고장 나 그것이 여러 종의 육식동물로 분화한 것이 아니라, 여러 육식 동물이 출현했는데 주로 육식을 하다 보니 단맛 수용체가 고장 나도 아무 문제가 없었고, 점점 완전한 육식동물로 진화했다는 설명이 더 타당해진 것이다. 한 종의 날개 달린 동물이 한 번 만들어져 여러 형태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곤충, 익룡, 새, 박쥐 등 6종이 따로 만들어져 수렴 진화한 것과 같은 현상이다.

감칠맛을 잃어버려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감각이 운명을 결정한 것이라면, 육식 위주로 살다 보니 단맛을 잃어버린 것은 운명이 감각을 결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최낙언 식품평론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