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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단독]상견례도 항공료 500만원도 날려…메르스는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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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거주 한 변호사가 겪은 황당한 14일

중앙일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국내 확진환자가 격리치료중인 가운데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응급의료센터 감염격리병동에 마스크를 쓴 의료진이 지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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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거처를 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밀접 접촉자가 14일 강제 격리되면서 자녀 상견례에 참석하지 못하고, 500만원이 넘는 비행기 값만 날리게 됐다. 호텔 비용도 정부가 댄다고 방침을 정했지만 어떻게 처리할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밀접 접촉자는 영국 런던에 거주하는 남기종 변호사이다. 국적은 한국이다. 그는 메르스 확진환자A(61)씨와 같은 항공편인 EK322편 비즈니스 석으로 입국했다. A씨와 인접한 자리에 앉은 탓에 입국 후 24시간이 채 안 돼 격리 조치됐다. 서울 강남의 한 레지던스형 호텔이었다. 한국에 거주지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여기에 갇혔다.

그의 아내와 아들은 다행히 아시아나 편으로 입국해 격리를 면했다. 남 변호사는 일정이 있어서 두바이를 거쳐 아랍에미레이트 항공편으로 들어왔다가 격리되는 신세가 됐다. 그는 다음 달 결혼 예정인 아들의 처가댁과 상견례를 하고, 고객을 만나고 관련 인터뷰를 하기 위해 입국했다.

8일 격리되면서 상견례(9일)에 참석하지 못했고, 비즈니스는 일절 할 수 없었다. 남 변호사는 격리 첫날부터 호텔 비용을 두고 보건복지부·행정안전부·보건소·질병관리본부·법무부 등에 질의했으나 정확한 답을 듣지 못했고 오히려 떠넘기기를 했다고 한다. 격리 해제(21일 자정)를 8시간가량 앞두고 오후 "정부가 협의해서 부담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남 변호사가 먼저 부담하고 사후 정산할지, 보건 당국이 결제할지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격리 직후 법무부로부터 출국 금지 통보를 받았다. 그는 다른 나라에 입국할 때마다 '출국 금지를 받은 적이 있느냐'는 입국 신고서의 질문에 체크하고 출입국 담당자에게 이번 메르스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남 변호사는 22일 밤 예정대로 출국한다. 14일의 격리 기간만 채웠다. 이번 출장에서 일을 하나도 보지 못해 10월에 다시 입국할 예정이다. 500만원이 넘는 비행기 값만 날리게 됐다.

현행 감염법예방법은 치료비와 생활비만 지원하게 돼 있다. 생활비는 긴급복지법 기준을 따르는데, 남 변호사는 74만원(2인 가구)을 받게 된다. 격리 대상자의 영업이나 업무 손실은 제대로 보상하지 않는다. 2015년 메르스를 겪은 뒤 감염법예방법을 고쳐 격리 대상자 지원을 담았으나 치료비·생활비에 그쳤다. 격리자가 소송을 제기한 적이 없고, 환자와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17건 건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해 현재 진행 중이다. 환자가 제기한 4건 중 3건은 환자가 패소했다. 1건은 1심에서 국가가, 2심에서 환자가 승소했고 3심이 진행 중이다.

남 변호사는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격리 대상자)가 일부 피해를 감수할 수 있다고 본다. 다수의 복리 증진을 위한 조치로 이해한다. 하지만 이런 조치의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마땅하다. 그래야만 앞으로도 격리 대상자들이 자발적으로 협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클라이언트(고객) 만나고 인터뷰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못하고 타고 들어온 비행기로 나간다"고 말했다.

남 변호사는 "감염병 확산을 방지하여 신체적, 심리적, 물적 피해를 감수하며 지난 2주간 6평 정도 호텔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서지 못했다. 그런데도 내가 직접 피해 구제를 수소문해야 한다. 이는 감염병 행정 미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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