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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사설] 다시 궤도 오른 북·미 핵협상의 진정한 전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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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오 “북·미 협상 즉시 착수”

뉴욕·빈에서 북핵 대담판 열릴 듯

한반도 정세, 불가역적 강물 건너나

어제 문재인 대통령이 2박3일간의 역사적 평양 방문을 마치고 돌아왔다. 문 대통령은 ‘9월 평양공동선언’을 언급하면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확고한 비핵화 의지를 거듭거듭 확인했다”며 “공동선언에 나온 영구적 북핵 폐기란 용어는 결국 검증 가능한 불가역적인 폐기와 같은 뜻”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귀환 직후 열린 대국민 보고 대회에서 “북한은 북·미 대화의 중재를 요청했으며 미국도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북·미 대화를 조속히 재개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평양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의 비핵화 시계는 다시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잇따라 나서 핵협상 재개 의사를 밝혔다. 교착상태에 빠졌던 북·미 협상이 다시 정상 궤도에 오른 것은 크게 환영할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앞장서서 북·미 협상에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사흘 전 김 위원장으로부터 엄청난 편지를 받았다. 한국과 북한에서 큰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1차 평양회담 직후 “흥미롭다”는 반응에 이어 더 강한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의지까지 묻어나는 대목이다. 그가 전문가의 핵 폐기 참관을 넘어 “북한이 핵 사찰을 허용했다”고 언급한 점으로 미뤄 김정은의 친서에는 핵시설의 순차적인 폐기나 검증 가능한 핵 사찰을 수용하겠다는 내용이 담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실무 사령탑인 폼페이오 장관도 “북한 비핵화 완성을 목표로 북·미 협상에 즉시 착수하겠다”고 했다. 그는 다음주 이용호 외무상에게 뉴욕에서 만나자고 초청한 사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가 가장 빠른 기회에 북한과 만나자고 요청한 사실도 공개했다. 특히 빈 회담은 대담한 아이디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핵 사찰 기구 옆에서 핵 담판을 짓자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트럼프 1차 임기 내 김 위원장의 완전한 비핵화 약속’을 미국이 못 박았다는 점이다. 임기 내 비핵화 완료는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의 대북 특사단과 면담한 자리에서 했다는 언급이다. 이는 앞으로 ‘28개월 안에 이룰 핵 폐기 로드맵’을 뉴욕과 빈으로 가져오라는 요구다. 미국은 북핵 로드맵에 핵탄두와 물질, 핵시설 등의 리스트 신고와 검증 시점이 응당 담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과연 ‘북·미 간 근본적 관계 전환(종전선언→평화체제 및 수교를 의미)’ 카드와 진정성 있는 비핵화를 맞바꿀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하지만 북한 노동신문에 문 대통령의 방문과 ‘9월 평양공동선언’ 전문, 양 정상의 기자회견 주요 발언이 그대로 소개됐다. 또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약속했다”는 말도 전달했다. 일단은 좋은 신호다.

하지만 미국 중간선거(11월 7일)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적극적 입장을 언제까지 유지할지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일단 미국은 한쪽에서 협상을 재개하면서 다른 쪽으론 대북제재의 고삐를 그대로 쥐고 나갈 공산이 크다. 이미 미국은 남북 정상회담 전날 유엔 안보리 긴급 회의까지 소집해 러시아의 제재 이탈을 규탄한 바 있다. 또 미국 의회와 싱크탱크 사이에는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다. 북·미 간 신경전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얘기다.

문 대통령은 이번 평양 방문을 통해 70여 년간 고착된 남북 간 관행과 어법을 돌파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집단체조를 관람하면서 15만 명의 평양 시민 앞에서 연설했고, 평양 시민들에게 90도 허리 숙여 인사했다. 또 귀환 직전 마지막 일정으로 백두대간의 시작점인 백두산에도 올라 김 위원장과 손을 잡았다. 결과적으로 남북관계를 기대 이상으로 개선시켰다.

문 대통령이 냉전 구도를 허물어뜨리는 이런 흐름을 주도하면서 한반도 정세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여전히 비핵화를 둘러싸고 남북이 합의하기는 쉽지만 미국을 설득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빠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당장 다음주 뉴욕에서 열릴 한·미 정상회담은 또 하나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어제 한·미 정상회담을 의식해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며 평화협정의 출발점”이라며 “연내 종전선언을 목표로 트럼프 대통령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폼페이오 장관과 이용호 외무상의 뉴욕 회담, 더 멀게는 빈에서의 북·미 실무회담과 북·미 정상 간 2차 회담, 11~12월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 등 빅 이벤트가 줄줄이 놓여 있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순항하든, 그 반대이든 한반도 정세는 2018년 9월 19일 평양공동선언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가지 못할 정도의 깊은 강물을 건너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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