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MD' 3권 완간한 김정아 대표… 책과 옷에 미친 러시아 문학 박사
도스토옙스키 전문가이지만 패션업계에선 '패션MD' 저자로 유명하다. '패션MD'(21세기북스)를 최근 총 3권으로 완간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사무실에서 만난 김씨는 "난 대학생 때 딱 두 가지만 샀다. 책과 옷"이라며 깔깔 웃었다. "87학번이에요. 그 엄혹하던 1980년대에 하이힐 신고 짧은 치마 입고 등교하는 말도 안 되는 아이였죠."
‘스페이스 눌’의 ‘눌(Null)’은 러시아어로 ‘0’ 또는 ‘영원’을 뜻한다. 김정아 대표는 “아무것도 없다는 건 모든 걸로 채울 수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태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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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간강사로 뛰던 그가 패션계에 뛰어든 건 2007년이다. 처음엔 남편 사업을 도와주는 차원이었다. '딱 3년만' 하려 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10년이 지나 있었다. 2015년 첫 권을 내놓은 '패션MD' 시리즈는 패션 MD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기본기를 알려주는 책. 세 권이 각각 '바잉(buying)' '브랜드' '쇼룸'으로 구성됐다.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인문학적 발상에서다. "인문학이란 자기가 공부해 쌓은 지식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거잖아요. 패션계는 전화번호 하나도 공유 안 해요. 처음 이 바닥 들어와서 어느 멀티숍 대표에게 '뉴욕 패션위크 땐 어디에 가야 하느냐' 물었다가 '무례하다. 그건 영업비밀이라 물어보는 게 아니다'는 말을 들었어요. 공부를 하려 해도 관련 책 한 권 없었지요."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해 세월이 흘렀다. 패션계에 탄탄히 자리 잡고 나서 그는 생각했다. '내가 몸으로 깨달은 걸 남들에게 알려줘야지!' 브랜드 조사하는 방법부터 각국 패션쇼 때 필수로 들러야 하는 곳 정보까지 꼼꼼히 정리했다. 전문가용 책이었지만 3쇄까지 찍으며 스테디셀러가 됐다. 업계 관계자들이 연락해 왔다. "이 동네선 '정보'가 밥줄인데 다 나눠주다니 아깝지 않아요?" 김씨는 고개를 내저었다. "음식점 레시피라면 모를까, 시간 지나면 다 알게 되는 게 어떻게 기밀이 되나요. 정보를 제한함으로써 승부하는 건 비겁한 거라고 답했죠. 아마 업계에선 나를 미워할 거예요.(웃음)"
패션 MD이자 인문학자, 세 아이 엄마로 그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산다. 밤 9시 반 잠자리에 들어 새벽 1시 반쯤 일어난다. "남들 잠든 새벽 시간이 제겐 '노는 시간'이에요. 공부가 제게는 놀이니까요. 책 읽고 글 쓰고 번역도 하지요."
'밥벌이엔 쓸모없다'는 인문학이 그가 거칠고 말 많은 패션계에서 버티는 동력이 됐다. "저는 아이들에게 '책은 영혼과 정신의 덤벨이다'라고 얘기해요. 미친 듯 책을 많이 읽은 게 정신적 근육이 돼 줬어요. 안달복달하던 제가 긍정적이고 강한 사람으로 커져 있더라고요. 제가 인문학에서 배운 게 뭔 줄 아세요? 인생이라는 게 공짜도 없지만 열심히 한 일을 무화시키지도 않는다는 거예요."
[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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