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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정동칼럼]‘대학 적폐’의 핵심, 대학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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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여러분들의 혈세와 등록금으로 운영되는 대학의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가져주십사 하는 마음에서 씁니다. 고교 교육을 망치고 불평등을 생산하는 기지처럼 됐다는 한국 대학도 스스로 개혁할 의지나 힘이 부족합니다. 송구스럽습니다.

경향신문

한국 대학들이 말기 질환을 앓고 있다는 진단을 받은 지는 벌써 10년이 넘은 듯합니다. 오래전부터 진작 필요했던 것은 실천이고 조직이요, 또 실제로 적지 않은 분들이 양심과 밥벌이를 걸고 재단과 또 ‘이명박근혜’ 정권과 싸우기도 했습니다. 구체적인 진단도 처방도 거의 나와 있는데, 교수들 자신의 보수성과 안일함, 또 사학재단과 기득권의 여전한 강고함 때문에 어둡습니다. 또 자칭 ‘촛불혁명정부’ 아래에서 나아진 게 아무것도 없어서 많은 이들이 김상곤 교육부총리와 문재인 정부 자체에 실망한다 하는 거겠지요. 사학법·고등교육법의 개정, 공영형 사립대, 국립대 네트워크, 대학 비정규직 철폐, 총장 직선제 도입 등 대학 민주주의와 공공성뿐 아니라 국제적 경쟁력(또는 탁월성)을 위해서도 실로 많은 과제가 있지만, 오늘은 대학평가 문제에 대해서만 말씀드릴까 합니다.

지난주에 또 중앙일보가 대학평가 결과라는 것을 발표했던데요, 기사를 보니 ‘대학 적폐’의 핵심 중 하나가 바로 이 대학평가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습니다. 한국의 대학평가는 하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주도합니다. 평가를 통해 대학을 ‘호갱’으로 만들어 잇속을 차리고, 대학서열화로 사회 전체의 줄세우기를 획책합니다. 진정한 학문과 교육의 관점은 단 1도 관련이 없는 그들 식의 학벌 계급투쟁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대학들은 그 권세와 언어폭력이 두려워 거부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런 대학평가의 속내는 허당이고 실로 표피적입니다. 이번에도 보니 대학평가 관련 기사들에는 ‘가짜뉴스’에 가깝다 해도 될 게 적지 않습디다. 기본 사실관계조차 틀린 것도 여러가진데, 근본적으로 신문사 대학평가에 사용되는 지표가 의심스럽고 부실합니다. 예컨대 가장 중요한 지표의 하나인 교수의 1인당 발표 논문 수 같은 것이 결코 신뢰할 만한 게 아닙니다. (재)임용·승진 등을 미끼로 삼아 대학당국들이 휘둘러댄 거센 채찍과 당근 때문에, 지난 10여년 사이 ‘쪼개기’ 등 교수들의 논문 양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만약 1명의 인문사회과학 쪽 교수가 1년에 (분야별 차이는 있죠) 4편 이상의 단독 저술 논문을 생산했다면, 그건 비정상적인 압력과 불안·초조 상태에서 쓰인 것일 겁니다. 물론 그 논문들의 질도 별로 믿을 것이 못 되겠죠. 국제화 지표 따위도 눈 가리고 아웅하는, 이제는 외려 해로운 것들입니다. 교육부·과기정통부 합동 조사 결과에 따르면 와셋 같은 해외 ‘가짜’ 학회에 참가했던 교수·연구자는 1317명(5년간)입니다. 그들은 왜 멀리 비행기를 타고 그런 데 논문을 발표하러 갔을까요?

한편 중앙일보 평가에는 학과를 등급 매긴 것도 포함돼 있습니다. 인문·사회과학 분야는 소위 주요 대학들에서도 학부에서 폐과·폐강 현상이 이어지고 대학원이 ‘정원 미달’ 상태인지 오래됐습니다. 그런데 등급 평가라니 도토리 키재기 같은 일입니다만, 이번에 평가를 받은 학과들 중에는 일부 교수들의 학생 인권 침해, 표절, 성폭력 문제 등으로 풍비박산·아비규환이 된 곳들이 있습니다. 그 학과들과 일부 문제 교수들에 대한 대학당국의 처리를 보면 ‘아, 정말 대학은 갈 데까지 갔구나’ 하는 탄식이 나올 정도입니다. 그러나 대학평가에는 그런 소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럴싸하게 만든 정량지표와 허장성세 ‘몇 등’은 이제 대학의 참담한 현실을 은폐하고 더 확대합니다. 대학이 제정신을 차려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는 데 기여하기를 바라는 분들은,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대학평가에 눈을 주시지 말기 부탁합니다. 내가 나온, 또 자식이 다니는 대학이 그런 평가에서 몇 등이더라는 ‘부심’을 갖는 분들은 설마 여기는 없겠지요?

사실 이미 교수협의체나 고려대 총학을 위시한 학생들이 신문사 대학평가를 거부한다는 선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은 중앙일보 평가를 거부한 대신 해당 분야 외국 학자들로 패널을 만들어 제대로 된 자체 정성평가를 받은 적이 있답니다. 진짜 교육과 학문의 발전이 목적이라면 그런 전문적이면서도 공공적인 평가가 필요한 것입니다.

대학들이 마지못해 신문사 대학평가에 응하거나 ‘우리가 몇 등’이라며 나대더라도 한편 갑질에 못 이긴 탓이고 다른 한편 용렬한 학벌주의자들과 사학재단이, ‘타자의 인정’에 주린 배를 채우고 또 학내권력의 도구로 삼기 위해 하는 일이라는 점을 아시고 꾸짖어주시기 바랍니다. 그 때문에 비정규직 교수들도 희생당하고 우리 많은 젊은 학생들까지 병들고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천정환 | 성균관대 교수·<1960년을 묻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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