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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한겨레 프리즘] 경상동도를 아시나요? / 신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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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신동명
영남팀장


박정희 정권 때 대통령 비서실장과 중앙정보부장 등을 지낸 권력 실세 이후락이 1970년대 울산을 중심으로 경북 경주·포항과 경남 양산·밀양 등을 아우르는 광역행정구역으로 ‘경상동도’를 구상한 적이 있다. 이후락의 이 구상은 구상으로 그쳐 실현되진 않았다. 그의 고향 울산이 1962년 특정공업지구 지정과 함께 시로 승격해 급속히 성장함에 따라 당시 경남의 변방에 불과했던 도시 위상을 별도 광역행정구역의 중심으로 끌어올리고자 했던 의도가 엿보인다.

그 후 20여년이 지난 1992년 14대 국회의원과 대통령 양대 선거를 치르면서 울산에서 ‘직할시’(지금의 광역시) 승격이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 취임 뒤엔 시의회와 지역상공인, 학계·문화계 인사 중심으로 추진위원회가 꾸려져 정부에 건의안을 내는 등 대통령 공약사항이던 울산직할시 승격 추진운동이 본격화됐다.

당시 울산시(지금의 울주군과 북구 일부 제외) 인구는 80만명으로 직할시 요건에 못 미쳤지만 추진위 쪽은 “날로 급증하는 행정수요가 이미 기초단위 행정기구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강변했다. 경남도내 지방세 비중이 33.6%나 되는 울산시가 따로 떨어져 나갈 것을 우려한 경남 다른 지역의 반대결의와 저지 움직임 또한 만만찮게 들끓었다. 이런 상황에서 1994년 당시 울산 출신 최형우 내무부 장관이 전격적으로 행정구역 개편을 추진해 1995년 1월1일 울산시·군이 통합되고, 통합 울산시 인구가 100만명을 넘어선 1997년 7월15일 울산광역시가 출범하게 됐다.

이로부터 13년 뒤 이번에는 경남 창원시가 2010년 7월1일 이웃한 마산·진해시와 통합해 인구 100만명을 넘긴 뒤 광역시 승격 추진에 나섰다. 창원시의 광역시 승격은 경남도로 볼 때 전체의 3분의 1에 이르는 인구와 경제력을 모두 떼어내는 것이어서 애초부터 난관이 예상됐다. 더욱이 과거 울산은 경남의 변방에서 떨어져 나갔지만 창원은 경남의 중심에 있다. 울산 때처럼 대통령 공약도, 행정체제 개편을 밀어붙일 만한 지역 출신 권력 실세도 없다.

이처럼 광역시 추진에 강력한 제동이 걸리자 창원시가 최근 ‘특례시’를 추진하고 나섰다. 지난 12일 인구 100만명 넘는 수도권의 수원·고양·용인시 시장들을 불러 특례시 추진 공동대응기구와 공동기획단도 꾸렸다. 현행법상 특례시라는 행정구역이나 지방자치단체는 없지만, 지방자치법을 바꿔 인구 100만 이상 대도시에 대한 특례를 확대해 기초자치단체 지위를 유지하면서도 광역시 수준의 행정·재정적 자치권한을 부여받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광역시가 됐든 특례시가 됐든 추진 과정에 지역사회 정·관·재계 주도층의 목소리만 있지, 그 도시에 사는 일반시민의 목소리는 없다는 것이다. 광역시든 특례시든 결국 시민의 살림살이나 삶의 질과 직결된 문제인데, ‘여론수렴’보다는 ‘여론조성’만 무성해 보인다. 과거 울산광역시 추진 과정에서도 광역시 승격 뒤의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민여론조사나 당시 울산군 일부 지역의 광역시 편입 반대 움직임 등이 있었지만 일방적인 광역시 논리에 모두 묻혀버렸다.

광역시나 특례시 추진 이유로 내세우는 ‘행정수요 대응’ ‘도시 경쟁력’ 등이 시민의 ‘살림살이’나 ‘삶의 질’과 관련된 것은 맞다. 하지만 지역 정·관·재계 주도층이 이를 빌미로 시민의 삶보다 도시의 위상과 이에 따른 자신들의 입지를 더 앞세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끝내 떨쳐내지 못하겠다.

tms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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