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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매경포럼] 정의선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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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오늘 미국 행정부와 의회 인사들을 만나 통상문제를 논의한다. 그룹을 총괄하는 자리에 오른 이후 맡은 첫 임무다. 이 일정으로 4대 그룹 총수 중 유일하게 평양 남북회담 특별수행단에서도 빠졌다. 그만큼 미국에서 처리해야 할 사안이 급박하기 때문이다.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은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수입 자동차에 최대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현대차와 기아차의 최대 수출 시장이다. 미국이 정말 이 조치를 취하면 현대·기아차는 수조 원의 관세 폭탄을 맞는다.

그렇지 않아도 현대차는 사면초가에 처해 있다. 전략 시장인 중국에서 균열이 생긴 탓이 크다. 현대와 기아차를 합친 중국 내 생산능력은 270만대에 달하지만 지난해 판매량은 115만대 수준에 그쳤다. 올 들어 사정이 다소 나아지고 있다지만 잘나갈 때에 비하면 많이 쪼그라들었다. 미국 시장이 좋은 것도 아니다. 전체 승용차 판매가 감소하고 있는 데다 경쟁이 치열해 기존 전략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고성능 모델로 승부를 걸 수 있지만 벤츠나 BMW 등 프리미엄 브랜드를 넘어서기엔 아직 역부족이다. 그나마 유럽과 신흥국 시장에서 성장하고 있으나 미국과 중국에서 활로를 찾지 못하면 의미가 희석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수익성이다. 한때 두 자릿수를 넘보던 현대차 영업이익률은 3~4%대로 떨어졌고 기아차는 1%대까지 하락했다. GM과 도요타 등 경쟁 업체들에 비해서도 이익률이 낮다. 높은 인건비와 환율 변동 등 여러 요인이 결합해 수익성을 악화시킨 것인데 이를 개선할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게 현대차의 고민이다. 이 역시 고부가가치 차량 비중을 늘리고 불요불급한 비용을 줄이는 식으로 극복할 수 있겠으나 근본 해결책은 기업 체질을 바꾸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대대적인 사업 재편과 노조 설득이 필요한데 쉽지 않은 일이다. 엘리엇 등 일부 주주의 반대로 중단된 지배구조 개편 작업과 미래차 개발, 신성장 사업 발굴 등 정 부회장 앞에 놓인 숙제는 한둘이 아니다.

다행스러운 건 1999년 현대차에 합류한 뒤 20년 가까이 정몽구 회장을 보좌하며 많은 경험을 쌓았다는 점이다. 특히 크고 작은 성공 스토리를 만들면서 그룹 내 위상이 높아졌고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 긍정적이다. 현대차에 밀려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던 기아차 대표를 맡았을 때는 디자인 경영으로 변화를 이끌었고, 2009년 현대차 부회장으로 취임하고 나서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럭셔리 브랜드인 제네시스의 성공적 론칭을 주도하는가 하면 중국 바이두와 딥글린트, 핀란드 바르질라, 미국 오로라 등 글로벌 기업들과 협업을 이끄는 과정에서도 리더십을 보였다. 싱가포르 차량공유 업체인 그랩을 비롯해 독보적 기술과 서비스를 보유한 기업에 대한 전략적 투자도 그의 진두지휘로 이루어졌다. 디자인을 총괄하는 피터 슈라이어 사장 등 외부 인재 영입에서도 많은 활약을 했다.

하지만 정 부회장의 리더십 검증은 현재진행형이다. 세계 자동차산업은 엄청난 변화를 앞두고 있다. 독일과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이미 내연기관 차량 퇴출을 선언했고, 중국과 인도 역시 모든 자동차를 전기차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현대차의 주력인 가솔린과 경유차만으로는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는 의미다. 자동차를 소유하는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사실도 직시해야 한다. 차량공유 산업이 커지면 자동차 수요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현대·기아차뿐만 아니라 모든 자동차업체들의 글로벌 판매량이 줄고 수익성이 악화되는 건 이런 대격변의 전조일 수 있다.

정 부회장은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현대차그룹은 ICT(정보통신기술) 회사보다 더 ICT 회사답게 변화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달 7일 인도에서 열린 무브 글로벌 모빌리티 서밋에서는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회사로 전환을 적극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백번 공감하는 비전이다. 비전은 전략과 실행이 뒷받침돼야 성취할 수 있고 이는 리더십에서 나온다. 정의선 리더십의 진검승부는 이제부터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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