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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Why] 제주선 경찰 수사, 광주는 특혜 논란… 일그러진 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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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후죽순 비엔날레… 1주일새 6개 줄줄이 개막

조선일보

국내에선 서울, 부산, 광주, 대구, 대전, 창원 등에서 14개의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위 사진은 광주비엔날레, 아래는 부산과 광주디자인비엔날레(맨 오른쪽)의 전시작./김종호·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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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열린 제주비엔날레의 졸속 운영이 경찰의 수사로 드러나고 있다. 최근 제주서부경찰서는 비엔날레 운영 관계자들의 소환 조사에 나섰다. 비엔날레는 이탈리아어로 '2년마다'란 뜻을 가진 문화 전시 행사. 준비 부족이나 운영 미숙으로 파열음을 낸 적은 있지만, 수사는 이례적인 일이다.

제주도 내에선 터질 일이 터졌다는 분위기다. 이번 비엔날레는 독립된 조직위원회 없이 제주도립미술관이 행사를 주관했다. 도립미술관장이 총감독에 오르고 예술감독은 별도 절차 없이 도립미술관장이 직접 뽑았다. 공모 절차에 따라 책임자를 뽑는 보통의 경우와 달랐다.

신작인 줄 알았던 전시 작품이 구작으로 확인돼 허위 자료 제출 논란이 일었는가 하면, 셔틀버스 계약을 맺은 업체와 실제 운행 업체가 다른 황당한 이면 계약도 발생했다. 운행 사업비 집행을 위해 입찰을 하거나 공모를 해야 했지만 이런 절차도 지켜지지 않았다. 일부 작가들의 작품은 비엔날레 출품 수준이 아니라는 혹평이 제기되기도 했다.

제주도는 지난 1995년 프리(pre)비엔날레를 열었다가 비슷한 문제를 겪었고, 비엔날레로 이어지지 못한 상처를 갖고 있다. 제주도의회 관계자는 "행사 진행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일단 수사 결과 발표를 보고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갑자기 '일몰제' 규정 변경

국내에선 제주 외에도 광주, 부산, 공주, 대구, 대전, 창원, 강원, 서울 등에서 14개의 비엔날레가 열린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어려운 광경이다. 한국을 '비엔날레의 나라'로 부르는 미술계 인사도 많다. 2013년 태동한 세계비엔날레협회 초대 회장이 이용우 전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고 지난해까지 사무국도 광주에 있었다.

비엔날레 대부분에는 국가 예산이 투입된다. 가장 규모가 큰 광주비엔날레의 경우 100억원가량의 예산 중 3분의 1 정도가 국고 지원이다. 2016년 비엔날레에 31억원, 2020년에도 비슷한 국고가 투입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는 애초 정부 계획과는 크게 다르다. 지난 2013년 정부는 무분별한 지자체의 국제 행사를 막겠다며 국고 지원을 제한하는 '일몰제'를 도입했다. '국비가 10억원 이상 들어가는 행사는 국고 지원을 7회까지만 한다'는 게 골자였다. 이에 따라 광주비엔날레에 배정된 올해 국고 투입은 9억원으로 줄었다. 본래대로라면 2020년 광주비엔날레에 대한 지원액도 삭감됐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 4월 갑자기 규정을 고쳤다. '일몰 연장 평가'란 개념을 도입해 이를 통과하면 지원 횟수를 늘릴 수 있게 해줬다. 사실상 일몰제를 무력화한 것이다. 더욱이 국제행사를 지원하는 사업 예산을 광주비엔날레처럼 '국가균형발전특별법'으로 편성해서 '지역특별회계'로 분류하면, 아예 일몰제를 적용받지 않을 수 있다. 광주비엔날레의 경우엔 평가 없이도 계속해서 국고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국가 정책적으로 계속적인 지원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면서 "이런 때에도 지원이 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뒀을 뿐 일몰제는 계속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일몰제가 기능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한 재정 전문가는 "지자체의 항의와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의 민원 등이 거세 현실적으로 일몰제를 적용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규정을 바꾼 시기 역시 6월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 개정안을 낸 것 자체가 선심성 정책 아니었느냐는 게 이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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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 없는 비엔날레

우후죽순 비엔날레를 늘리는 지자체들은 호평을 담은 보도 자료를 돌리지만 실상은 다르다. 일단 시기가 겹치면서 흥행에 빨간불이 켜진다.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가 이달 1일, 창원조각비엔날레가 4일,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가 6일, 광주비엔날레·대구사진비엔날레가 7일, 부산비엔날레가 8일 일제히 문을 열었다. 일주일 새 6개의 비엔날레가 시작된 것.

1995년 163만명으로 시작한 광주비엔날레의 경우 2010년 33만명, 2014년 18만명까지 관람객이 줄었다. 2016년엔 40만명을 기록했지만, 이는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합친 숫자다. 본전시 관람객만 따지면 더 적다. 그나마 광주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석 달여간 수십억원의 사업비를 쓰는데도 학생이나 공무원이 동원되지 않으면 자생이 어려운 비엔날레도 있다.

준비 기간도 짧다. 대부분 1년이 채 안 된다. 외국은 물론 국내 유명 작가 대부분이 1~2년 전에 일정이 짜이는 점을 감안할 때 애초에 수준 있는 전시가 어려운 구조다. 그렇다 보니 차별성 없는 붕어빵 비엔날레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사립대학 미대 교수는 "공예 비엔날레에 공예가 없고, 투어리즘을 내세우는 비엔날레에 여행이라는 주제가 느껴지지 않는다"며 "전시 작품이 해당 비엔날레의 문제의식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많은 곳에서 기전시된 작품이라 주제와 연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비엔날레 관계자들은 매해 문제를 일으키며 구설에 오른다. 6일 개막된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의 경우 최효준 관장이 성희롱 의혹을 받아 7월부터 직무 정지 상태다. 6명의 집단 기획자 중 한 명이 더 사임했다. 개막부터 안팎이 뒤숭숭하다. 부산비엔날레에서는 집행위원장이 작품료로 지급했던 돈을 되돌려받아 기소되기도 했다.

청주 국제공예비엔날레, 전남 국제수묵비엔날레 등은 공무원 등을 통해 입장권을 강매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비엔날레 사무국이 공무원들에게 표를 배정한 뒤 '구매 또는 판매해달라'고 협조를 구하는 식이다. 문제가 되면 '자율적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발뺌한다. 특정 비엔날레의 문제라고 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지원 제동 걸면 적폐?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엔날레 등 지자체의 문화 행사 유치에 제동을 걸기는 쉽지 않다. 최근에는 지원을 줄이자는 이야기조차 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한다. 이는 계속된 적폐 수사 영향도 있다는 게 관계자들 이야기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박근혜 정부 관계자들이 특정 문화·예술인의 지원을 배제한 것에 범죄 혐의를 적용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한 관계자는 "특정 이념을 가진 이들이 피해를 봐선 안 되지만, 연속해 지원을 받았거나 흠이 있는 탓에 지원에서 배제된 이들도 있었다"고 했다. 폐단을 지적해도 잘못하면 정치 논쟁에 휘말려 적폐로 몰릴 수 있기 때문에,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으려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정부가 규정을 바꿔 일몰제를 사실상 폐지한 것에도 비슷한 해석이 붙는다.

지자체 입장에선 눈에 띄는 국제 문화 행사를 외면하기 어렵다. 치적으로 내세우기 쉽고, 문화라는 키워드 탓에 반대도 상대적으로 적다. 이 때문에 문제가 뻔히 보이는데도 일단 행사를 치르고 보자는 식이 많다고 한다. 예산 25억원이 투입된 평창비엔날레에선 3분의 1인 9억원의 돈을 쓰지 않고 남기는 일도 벌어졌다. 조직위도 없이 2개월여의 실무 준비만 한 결과였다.

전문가들은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던 영화계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고 얘기한다. 부산국제영화제 성공 이후 100여 개 영화제가 난립했지만, 국고 지원이 끊기거나 자생력을 잃으면서 상당 부분 자취를 감췄다. 국고 지원 등을 두고 정치인들과 얽히고설키면서 뒷말을 남긴 경우도 생겼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비엔날레를 통한 국제적 비평 담론 형성이나 국내 작가가 국제 무대로 진출하는 효과 등이 매우 낮다"며 "10개가 넘는 비엔날레에 국민 혈세가 투입되는 것이 맞는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김아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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