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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매경이 만난 사람] 채동욱 前검찰총장에게 듣는 검찰개혁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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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지난 24일 서울 도곡동 법무법인 서평 사무실에서 매일경제와 만나 검찰의 현재와 미래,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등 이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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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욱 전 검찰총장(59·사법연수원 14기)은 2013년 4월 현직 총장으로 검찰 수사권의 상징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를 단행하며 검찰 개혁의 새 장을 열었다. 최근 매일경제는 채 전 총장을 인터뷰하고, 그에게 현재 검찰과 검찰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물었다. 그는 특히 "정권마다 반복되는 정치권력에 대한 검찰의 예속 논란을 없애려면 권력으로부터 검찰이 독립할 수 있게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다양한 검찰 개혁 방안과 함께 검경 수사권 조정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우선 '검경 수사권 조정'이라는 용어 자체가 정확하게 사태의 본질을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용어는 국민에게 마치 검찰과 경찰이라는 두 수사 기관이 권한을 더 차지하기 위해 힘겨루기를 하는 것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본래 이 논의는 지난 정권에서 검찰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현 정부 들어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시작된 겁니다.

―과거 검찰의 가장 큰 문제는 뭡니까.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정확한 수사지휘권 발동' 문제가 있습니다. 경찰에 대한 수사 지휘를 게을리해 힘없는 국민의 권리 구제와 인권 보장에 소홀했다는 거죠. 정당하고 정확한 수사지휘권 발동은 검찰 본연의 기능입니다. 따라서 검찰의 수사지휘권은 오히려 강화돼야 합니다. 그래야 일반 국민이 억울한 누명을 쓰거나 과도하게 수사받는 상황에 맞닥뜨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경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지휘 영역을 줄이는 게 검찰 개혁의 올바른 방향이라는 식으로 논의가 흘러간다면 문제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겁니다. 다른 하나는 '검찰의 직접수사권 남용' 문제입니다. 지난 정권에서 중요한 정치적 사안마다 검찰 수사는 정치적 중립이나 공정성을 지키지 않았고, 정권의 눈치를 보며 권력의 입맛에 맞는 수사를 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정치검찰'이었죠.

―검찰 개혁은 어떻게 이뤄져야 합니까.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건 인사권 때문입니다. 권력이 자신의 말을 잘 들으면 승진시키고, 말을 잘 안 들으면 좌천시켰던 거죠. 현 정부는 노무현정부와 마찬가지로 검찰에 대해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권력으로부터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할 수 있는 공정한 제도가 마련되지 않는 한, 정권이 바뀌거나 검찰을 권력의 하수인으로 쓰려는 권력자가 나타나면 또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검찰총장이나 검사장의 직선제 도입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라고 봅니다. 이러한 본질에서 벗어난 검찰 개혁 논의는 전부 무망(無望)한 일입니다.

―검찰의 직접 수사 기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검찰 본연의 임무는 경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지휘·감독하는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검찰의 직접 수사는 극히 제한된 범위에서 하는 게 맞습니다. 갈수록 지능화·고도화해가는 금융범죄 사건이나 권력형 부정부패 사건, 신종 첨단범죄 사건처럼 고도의 수사 역량이 필요한 사건에 한해서만 직접 수사하는 게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 정부에 대한 사정수사를 뜻하는 적폐수사가 1년여간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회적 비극은 권력자의 탐욕과 무지, 그리고 배운 자들의 부역이 뒷받침될 때 나옵니다. 지난 두 정권에서 우리는 그러한 비극을 경험했고요.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구속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대통령 비서실장, 국정원장 등 고위 관리들의 범법 행위를 명백히 밝힌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죠. 그런 면에서 적폐청산 수사는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적폐청산도 국가와 국민에게 아프고 비극적인 과정입니다. 이번 수사가 우리나라와 국민이 이러한 사회적 비극을 다시 겪지 않도록 역사적 교훈을 남기길 바랍니다.

―적폐청산 수사를 정치 보복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건 적폐청산 수사의 본질을 망각한 한심한 소리입니다. 암세포를 도려내지 않고 환자를 살릴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 지난 시절에 있었던 국정농단, 헌정농단과 같은 중범죄를 그냥 덮고 넘어가라는 건가요. 적폐 수사는 국가가 바로 서는 과정입니다. 만일 정치적 이유로 타협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현 정부와 검찰의 직무유기입니다.

―최근 38년 만에 공정거래법 전속고발권이 폐지됐습니다. 재계 반발이 심합니다.

▷먼저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에 대한 전속고발권을 줬던 취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기업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자칫 기업의 신용을 하락시키거나 경영을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수사권을 발동하라는 취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공정위의 행정 조사는 검찰의 강제 수사에 비해 혐의를 확인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과거 대기업에 대한 공정위의 적극적 조사가 미흡했고, 행정 조치도 솜방망이 과징금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 비판을 많이 받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현재 기업들이 가지는 불안감은 여전해 보입니다.

▷이번 전속고발권 폐지 대상은 가격담합, 공급제한, 시장분할, 입찰담합 등 경쟁을 기반으로 한 '경성 카르텔'과 관련된 것입니다. 검찰이 수사하게 되면 과징금으로 끝나지 않고 형사처벌 대상이 되기 때문에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기업들의 불공정한 거래 관행에 대한 강력한 예방 효과가 생기는 건 틀림없습니다. 이에 따라 검찰도 공정위에 전속고발권을 줬던 애초 취지를 잘 살려 기업들의 경영이 위축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선택하고 집중적으로 수사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됐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검찰 후배들에게 당부하고픈 말씀은.

▷살다 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속에 떠오르는 문장이나 구절이 있습니다. 저는 요즘 두 개의 문장이 자꾸 떠오릅니다. '이렇게 스산하면서도 고운 날을 본 적이 없다.' '낡은 것들은 소멸돼 가는데 새것은 오고 있지 않다.' '맥베스' 1막 1장의 맥베스의 대사와 안토니오 그람시의 옥중서신의 한 구절입니다. 두 문장 모두 어떤 불안감과 관련된 것 같습니다. 과거 관행으로 포장돼 어물쩍 넘어갔던 불법과 불공정이 만들어낸 국민의 고통과 비극을 보십시오. 국민은 이제 용납하지 않겠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새로운 시대를 여는 합의와 관행은 없고 기득권 세력은 과거로만 돌아가려 합니다. 검찰 후배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습니다. 이런 스산한 시대일수록 검사들이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그것이 검찰에 주어진 칼자루의 의미이며 존경받는 검찰이 되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이죠.

화가 데뷔 '더스틴 채' "딸 시집 보내는 것같아 제 그림 이제 안팔죠"

매일경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지면 게재에 동의한 3점의 작품 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단풍` `Who am I` `정물`. 채 전 총장의 지인이며, 해당 작품을 보관 중인 점묘화가 김주철 화백이 제공했다.


―화가 '더스틴 채'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주변에서 많이들 저 보고 미술에 소질이 있다고 했습니다. 대학 진학 후 한동안 그림을 못 그리다가 2013년 총장 퇴임하면서 우연한 기회에 다시 붓을 잡게 됐죠. 2014년 5월쯤 마음을 추스를 겸 지인들과 제주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때 푸른 제주도 바다를 보면서 같이 간 유휴열 화백에게 "그림을 그려보면 좋겠다"고 했더니 유 화백이 대뜸 저에게 "한번 그려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게 됐습니다. 흰색 캔버스를 앞에 두면 아무 생각이 안 들고 그곳에 푹 빠지는 느낌입니다.

―작품 활동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작년에 생각지 않게 미국 뉴욕 아트엑스포에 그림 '생명의 나무' 5점을 출품하면서 데뷔했습니다. 당시 지인인 김주철 화백이 그동안 그린 그림을 방치해두지 말고 함께 엑스포에 나가자고 하길래 '집에서 노느니 한번 해보자' 하는 생각에서 참가했습니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서 평소 좋아하는 미국 영화배우 '더스틴 호프먼'의 이름을 따 '더스틴 채'로 예명을 지었습니다. 지난 4월에도 같은 엑스포에 그림 'Who am I' 5점을 출품했죠. 지금까지 그린 그림은 총 130점 정도 됩니다.

―엑스포에 출품한 그림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엑스포이기 때문에 그림에 가격을 붙여놓게 돼 있습니다. 팔아본 적 없으니 가격을 알 턱이 없었고, 결국 주변에 물어서 적당히 내놨죠. 얼마 뒤 엑스포 현장에 있던 지인한테서 그림이 팔렸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한 외국인이 사갔다는 거예요. 판매된 작품은 생명의 나무 5점 중 '여름'과 '겨울'이었는데 처음엔 그저 놀랐죠. 기쁨도 잠시였고 그림 2점이 사라지니 금세 서운해지는 거예요. 마치 딸 시집 보내는 것처럼요. 그래서 올해는 아무도 못 사가게 표시를 해뒀습니다.

―그림이 전부 유화입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수채화나 동양화는 붓이 한번 지나가면 되돌릴 수 없지만 유화는 수정이 가능합니다. 퇴임 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만 해도 머릿속에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실수해도 다시 그릴 수 있고 마음대로 그릴 수 있는 유화가 제격이었죠.

―개인전 계획도 갖고 계십니까.

▷그림을 더 그린 다음에 고민해볼 생각입니다. 여생 동안 할 일이 남았으니 참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죠.

■ 채동욱 전 총장은…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한 뒤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8년 서울지검 검사로 임관해 대검찰청 마약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기획관 등을 거쳤다. 검사장 승진 이후 전주지검장, 법무부 법무실장, 대검찰청 차장, 서울고검장 등을 거쳐 2013년 제39대 검찰총장을 역임했다. 그해 9월 혼외자 논란으로 취임 6개월 만에 사퇴했다. 지난해 8월부터는 법무법인 서평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전지성 기자 / 송광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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