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속도와 건강 상관관계 연구
20m 27초 넘기면 건강 위험 2.3배
한국 노인 보행속도 외국보다 느려
“부모 걸음 느려지면 방치 말아야”
어르신들이 21일 서울 종로3가 탑골공원 앞 왕복 8차로 횡단보도를 힘겹게 건너고 있다. [우상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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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씨는 “아무리 빨리 걸어도 (신호가 바뀌기 전에) 8차로 횡단보도를 건너기 어렵다. 신호가 시작되자마자 걸어도 힘들다. 신호가 바뀐 후 숫자가 절반밖에 안 남으면 갈 엄두가 안 난다. 그렇다고 땡볕에 신호 바뀔 때까지 기다리기 힘들다”고 말했다. 결국 황씨는 횡단보도를 포기하고 지하도를 택했다. 황씨는 “무리해서 횡단보도를 건너다 혹시라도 차에 부딪힐까 봐 겁난다. 신호가 1초에 숫자 하나가 아니라 둘씩 없어지는 듯하다. 신호가 더 길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황씨처럼 8차로(편도 4차로)의 횡단보도를 제시간에 건너지 못할 경우 건강이 악화할 위험이 2.3배, 사망 위험도 2.5배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잘 걷지 못하면 오래 살지 못한다는 뜻이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이은주 교수와 장일영 전임의(내과 전문의), KAIST 정희원 연구원이 강원도 평창군 보건의료원과 함께 2014~2017년 평창군 65세 이상 노인 1348명의 보행 속도와 건강의 상관관계를 연구했다. 연구 결과 국제기준보다 보행 속도가 느린 노인의 사망률이 정상 그룹의 2.54배, 요양병원 입원율은 1.59배였다. 이 둘을 포함해 전반적인 건강 악화 위험도는 정상 그룹의 2.31배였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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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영 전임의는 “이번 조사는 농촌 노인이 대상이며 도시 노인의 걸음걸이는 평창군보다 약간 빠를 수 있다”고 말했다.
장 전임의는 ‘걷는 속도=건강의 거울’이라고 정의했다. 외국에서도 이렇게 통한다. 근육·심폐기능·관절·만성질환 등 몸의 균형이 걷는 속도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에서 70세 이후 나이가 올라갈수록 걸음 속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나이와 관계없이 노쇠 지수가 올라가면 나이 드는 것과 비슷하게 걸음 속도가 떨어졌다. 걸음 속도가 나이와 관련 있긴 하지만 이것 못지않게 신체의 노쇠 정도와 밀접하다는 뜻이다. 장 전임의는 “부모의 걷는 속도가 떨어지면 ‘나이 드니까 당연하겠지’라고 넘기면 안 된다. 신체 어딘가가 나빠졌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보행 속도는 왕복 4차로·8차로·12차로의 횡단보도를 제시간에 건널 수 있는지를 측정한다. 4차로 횡단보도(10m)는 신호 시간이 17초이며 제시간에 건너려면 평균 초당 0.588m로 걸어야 한다. 8차로는 27초(초당 0.741m), 12차로는 37초(초당 0.811m)가 필요하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8차로의 횡단보도를 제시간에 건너지 못하면 국제 기준 미달이다. 문제없으면 4차로·8차로 횡단보도는 여유 있게 건넌다. 12차로 횡단보도도 적색 신호로 바뀌기 전에 건넌다. 연구 결과는 노인의학 분야 국제학술지 ‘임상노화연구(Clinical interventions in Aging)’ 최신호에 실렸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이승호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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