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02 (일)

남녀 서로 "생존에 해로운 존재” 갈수록 성양극화 심각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남 40% 여 60% “성차별적 혐오 경험”

일베·워마드 아니어도 불안 확산

이성혐오는 사회구조적 문제

성차별 불만, 정책으로 풀어야

여름 휴가로 경기도 가평 펜션에 놀러 간 직장인 여성 한모(31)씨는 침실 천장 나무를 덧댄 곳에 구멍이 뚫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펜션 주인은 “인테리어 과정 중 생긴 단순한 구멍”이라고 설명했지만, 한 씨는 화장실과 방을 모두 구석구석 확인하며 몰카가 없음을 확인했다. 그는 “이런 곳에서 남성들이 찍은 몰카가 일간베스트(일베) 사이트 등에 올라가 유포될 것을 생각하면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남성 손모(30)씨는 지난 4일 주말 버스를 탔을 때 흰색 마스크를 낀 여성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불안감을 느꼈다. 남성혐오사이트로 논란이 되고 있는 ‘워마드’ 회원들이 마스크를 쓰고 집회를 연다는 기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성에 대한 극단적 혐오감을 드러내는 ‘일베’나 ‘워마드’가 아닌 일반인 사이에서도 이성에 대한 경계심을 느낀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사회 전체 구성원이 대립적이고 극단적인 성(性)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성에 대한 견제, 경계, 불안의 감정이 조금씩 퍼지고 있다. 일베·워마드로 대표되는 이성간 온라인 전쟁과 미투의 확산 전에는 없었던 현상이다.

중앙일보

혐오 사회구조문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성별 이슈는 정치적 경계마저 무너뜨린다. 워마드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일부 여성들은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탄핵집회에 합류해 손팻말을 들고 “문재인 탄핵, 안희정 유죄, 홍본좌(홍대 몰카범) 무죄”를 외쳤다. 진보나 보수보다 여성이라는 가치를 우선시하고 있는 것이다.

남자들 사이에서도 자신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여성을 끼워주지 말자는 ‘펜스룰’이 언급되고 있다. 이는 아내가 아닌 여성과는 단둘이 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동령의 사례에서 나온 개념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를 ‘성양극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곽교수는 “과거에는 남성과 여성이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며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인식했다면, 현재는 이성끼리 서로를 생존에 해가 되는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여성의 정치·경제·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면서 남성과 여성이 경쟁 상대로 자리매김했고, 남녀가 이성의 성공을 동성의 실패로 여기며 교집합이 없는 남과 여로 양극화된 것이다. 최근 잇달아 터져 나온 사건들이 이런 양극화 현상을 촉발하고 강화했다는 설명이다.

이런 흐름이 더 확산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여성들은 그동안 경험한 성관련 범죄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가 표면화되고 있고, 남성은 여성들의 새로운 극단성에 대한 혐오감이 폭발하고 있다”며 “오랫동안 쌓여온 사회적 요소들이 하루 아침에 해결될 수 없는 만큼 이런 현상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여성·남성혐오 인식에 대해 20~50대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80.7%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남성 응답자의 39.8% 일상생활에서 성차별과 관련된 혐오표현을 들어본 적 있었으며, 여성 응답자 가운데는 무려 59.6%가 성차별 관련 혐오 표현을 들어본 적 있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68.2%는 이러한 여성혐오, 남성혐오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라고 봤다.

곽금주 교수는 “성양극화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1차적으로 남성과 여성이 사회와 조직에서 느끼고 있는 차별 및 역차별에 대한 불만을 정책적으로 해소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까지 남자라서 혹은 여자라서 겪어온 차별에 대한 분노들이 누적되고 성프레임이 이를 자극하면서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라며 “관습이라며 방치해왔던 차별 요소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다영·박해리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