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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교도소가 기피시설? “일자리 생긴다” 일본선 유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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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형무소 허용해 과밀수용 해소

경범죄자·초범 배정해 직업훈련

모두 1인실 주고 교화에 집중

한·일 재소자수 5만명 비슷한데

교정시설은 188곳 한국의 4배

2018 교도소 실태보고서 ⑤
중앙일보

가와고에 소년형무소의 거실 복도. [윤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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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말 일본 사이타마현 가와고에 소년형무소의 한 교도작업장. “어딜 보는 겁니까.” 특별취재팀을 안내하던 히시누마 야스야키 교도관이 갑자기 호통을 쳤다. 취재진을 흘깃거리던 재소자가 곧바로 고개를 떨궜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이 같은 상황에 익숙한 듯 다른 수용자 10여 명도 자세를 고쳐잡고 정면을 응시했다. 히시누마 교도관은 취재진에게 “놀랄 것 없다”며 “질책을 하거나 엄격한 분위기를 만들었을 때 (수용자가)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진 않는지 태도 등을 살피고 기록하려고 일부러 고함을 쳤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용자들의 작은 행동과 반응은 모두 기록 대상”이라며 “심리학을 전공한 (수용자) 분류 담당자가 이 기록을 토대로 교정·교화 프로그램 계획을 짠다”고 덧붙였다.

일본 형무소는 엄격하다. 규율과 통제가 강해 자유롭고 편안한 북유럽 국가들의 교도소와 다르다. 특별취재팀이 이날 방문한 가와고에 소년형무소도 그랬다. 이곳엔 만 26세 미만의 수용자 1500여 명이 수감돼 있었다. 재소자들끼린 사적인 대화를 할 수 없다. 식사시간에만 간단한 대화가 허용된다. 식사는 30분 안에 마쳐야 한다. 교도작업장에서도 제약이 많다. 자신의 책상 앞 바닥에 그려진 흰 네모칸에서 하루 8시간을 일해야 한다.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땐 교도관을 부르는 대신 착용한 모자 끝을 손으로 살짝 들어올려 의사표시를 해야 한다. 히시누마 교도관은 “시대가 변했다곤 해도 형무소가 죗값을 치르는 처벌의 공간이라는 원칙엔 변함이 없다. 규칙을 따르고 책임을 다해야 그 대가가 주어진다는 단순한 논리를 습관으로 만드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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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고에 소년형무소의 남자 독거실의 모습. 잦은 인원 변동으로 일부 혼거가 불가피할 때를 제외하곤 ‘1인 1실’ 수용 원칙을 지킨다. 교정·교화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조치다. [윤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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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일본 형무소에선 재범 방지를 위한 재소자에 대한 탐구, 교정·교화를 위한 최적의 환경 조성 등 운영 원칙이 더 철저히 지켜지고 있다. 가와고에 소년형무소는 대규모 시설임에도 1인 1실 독거 수용을 원칙으로 한다. 잦은 인원 변동으로 1인실이 부족할 경우에만 혼거실을 운용한다. 한국의 교도소처럼 3명 정원인 방에 6명을 몰아넣는 방식은 아니다. 6명 정원인 방을 3명이 넉넉히 나눠 쓴다. 유도 한스케 일본 법무성 교정국 사무관은 “독거 수용은 교정·교화의 방해 요소가 제거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며 “잠버릇, 생활 습관, TV 시청 취향이 제각각인 성인들이 한데 섞여 지내다 다투게 되면 교정·교화 프로그램의 효과는 반감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일본 형무소에는 수용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제도화돼 있다. 형이 확정된 기결수 중 만 26세 미만 수형자와 특별 조사 대상자가 입소하면 분류센터 전문가들이 약 8주간 이들을 면담·관찰하며 교정·교화 프로그램을 짠다. 한국에선 살인·성폭력 등 강력범죄자만을 대상으로 이같은 심층 분류심사를 진행한다. 대부분의 수형자는 20분 만에 면담을 마치고 수형 생활을 시작한다.

이런 원칙을 지키는 형무소·구치소가 일본 전역에 퍼져 있다. 모두 188곳이다. 소년범 수용시설까지 합치면 200개가 넘는다. 전국의 재소자 수는 5만여 명으로 한국과 비슷하지만 시설 수는 4배에 달한다. 일본 법무성에 따르면 교정시설 수용률은 지난해 66.8%였다. 윤옥경 경기대 교정보호학과 교수는 “교도소를 혐오시설로 인식하는 한국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일본에선 ‘범죄자도 출소하면 결국 함께 생활하게 될 이웃’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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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정시설, 한국과 어떻게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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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씨앗은 약 20년 전에 뿌려졌다. 민간의 자본과 아이디어를 도입해 과밀 수용을 해소하려던 정부의 노력이 국민의 인식 전환으로 이어졌다. 일본은 1990년대 말부터 수용자가 급격히 늘면서 대부분의 교정시설이 정원 100%를 초과하는 과밀수용 상태가 됐다. 정부는 ‘민간자금을 활용한 공공시설 정비 촉진법’을 활용했다. 이 법에 따라 2007년부터 4곳의 민간 형무소가 차례로 문을 열었다. 이들 시설엔 사회복귀촉진센터라는 이름이 붙었다. 주로 범죄 성향이 많이 발전하지 않은 경범죄자나 초범자를 선별 수감해 민간 전문가들에게 이들의 직업훈련과 교화 프로그램을 맡겼다. 교정시설을 통해 지역 일자리가 창출됐고, 형무관 등 직원을 포함해 수용자들까지 지역 주민으로 인정되면서 주민 수에 비례한 정부 지원금이 늘어났다. 교정시설이 피해야 할 혐오시설이 아니라 돈 되는 수익사업이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신규 민간 형무소를 유치하려는 지자체 간 경쟁도 벌어졌다. 유도 법무성 사무관은 “지역 주민들이 시설 내로 들어와 교도소 운영인력으로 일하고, 수용자들은 담장 밖 일터에서 일반인들과 함께 일했다. 이 비율이 높아지면서 교정시설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상당 부분 해소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출소자를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거처가 마땅치 않은 출소자를 돕는 민간 단체는 100곳이 넘는다. 특별취재팀이 방문한 한 갱신회 시설은 도쿄 한복판인 신주쿠에 있었다. 운영 방식은 민간 형무소와 비슷하다. 출소자의 재범 방지를 위한 정착 지원과 재사회화 교육은 민간 영역의 시민들이 돕고, 정부는 운영 비용 대부분을 지원한다. 신주쿠 갱신회에서 일하는 오카모토 미네오 보호관은 “현재 22명의 출소자들이 생활 중”이라며 “출소 전 형무소에서 본 면접 결과를 토대로 범죄 이력 등이 고려돼 이곳에 입소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야마다 겐지 상임이사는 “출소자들 대부분이 평균 5만 엔(약 51만원) 정도의 돈을 쥐고 사회에 정착해야 하는데, 먹고 자고 입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게 재범의 동기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범죄자라는 이유로 기피되고 방치되면 이들은 좌절하고 만다. 이것이 다시 선량한 시민을 피해자로 만드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들이 일자리를 구하고 스스로 거처를 마련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우리의 임무”라고 강조했다.

가와고에·도쿄=윤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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