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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5 (수)

[이산가족 상봉]딸이 있었다니…아버지는 눈물만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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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이산상봉, 금강산 첫날

부인 임신 사실 모른 채 생이별…북쪽의 67세 딸 처음 만난 부친

남측 89가족 197명 ‘감격 재회’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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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식씨(89)는 생전 처음 보는 딸 유연옥씨(67)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유씨는 1950년 12월 북에서 홀로 남으로 피란할 당시 아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당시 일주일만 지나면 다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렇게 68년이 흘렀다. 유씨는 이번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로 선정되면서 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 연옥씨는 아버지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유씨의 젊은 시절 사진과 다른 형제자매들의 사진을 보여줬다. 유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딸은 아버지의 어깨를 꼭 껴안았다.

한신자씨(99)는 67년 만에 재회한 첫째·둘째 딸 김경실씨(72)와 김경영씨(71)를 보자마자 “아이고”라며 통곡했다. 두 딸은 한씨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한씨는 그간 생이별의 한을 풀려는 듯 딸들의 볼에 얼굴을 비볐다. 세 모녀는 한참을 아무 말도 없이 눈물만 흘렸다. 유일한 모녀 상봉자인 한씨는 1951년 1·4 후퇴 때 두세 달이면 다시 돌아올 생각으로 갓난아이였던 셋째 딸 김경복씨(69)만 등에 업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당시 경실·경영씨는 3~6살 정도였다. 한씨는 두 딸과 함께하지 못한 것이 미안한 듯 “내가 피란을 갔을 때…”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20일 금강산에서 개최됐다. 남북의 이산가족 상봉은 2015년 10월 이후 약 3년 만이다. 남측 방문단 89가족, 197명은 이날부터 사흘 동안 6번, 11시간 동안 한국전쟁과 분단 등을 이유로 헤어진 북측 가족들과 만난다. 이날 오후 2시45분쯤 금강산호텔 2층 연회장에 단체상봉을 위해 북측 가족들이 입장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오후 3시 남측 방문단이 입장했고 곳곳에서 탄식과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이금섬씨(92)는 테이블에 도착하자마자, 한국전쟁 때 헤어진 아들 리상철씨(71)를 안고 오열했다. 아들도 67년 만에 만난 어머니를 부여잡았다. 이씨는 전쟁 통에 가족들과 피란길에 올랐는데 남쪽으로 내려오다 남편, 아들과 헤어졌다. 상철씨 며느리 김옥희씨(34)가 이씨 남편 사진을 꺼내자, 상철씨는 “아버지 모습입니다, 어머니”라며 흐느꼈다. 이씨는 아들에게 “애들은 몇이나 뒀니”라고 물었다. 모자는 2시간 동안 두 손을 꼭 붙잡고 대화를 나눴다.

■ 두 동생 찾은 91세 맏언니 “왜 이렇게 늙었니” 울음

세 살 딸 두고 온 아버지

“영숙아, 살아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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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측 딸 황영숙씨(71)는 아버지 황우석씨(89)가 행사장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황씨가 테이블로 다가와 “영숙이야? 살아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황씨는 1951년 1·4 후퇴 때 세 살이던 딸과 헤어졌다. 황씨가 “출가 전에 누구랑 살았느냐”고 묻자, 영숙씨는 “외갓집에서 어머니랑 살았어요”라고 했다.

문현숙씨(91)는 분홍색 한복을 입은 동생 영숙씨(79)와 광숙씨(65)에게 “네가 영숙이니? 너는 광숙이고?”라고 물었다. 현숙씨는 “왜 이렇게 늙었냐. 어렸을 때 모습이 많이 사라졌네. 눈이 많이 컸잖아”라고 웃으며 말을 건넸지만,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맏언니 현숙씨는 동생들에게 “엄마 없이 어떻게 시집갔니?” 등 질문을 쏟아냈다. 현숙씨는 광숙씨에게 “너 진짜 엄마 많이 닮았다”고 했다.

남측 오빠 만난 두 여동생

“이렇게 만나냐” 눈물 흘려


김춘식씨(80)는 한국전쟁 때 생이별한 여동생 춘실씨(77), 춘녀씨(71)와 재회했다. 춘식씨가 동생들을 향해 “일어서봐, 내가 춘식이다”라고 하자, 동생들은 “오빠 이렇게 만나냐”며 오빠 품에 안겨 통곡했다. 춘식씨는 “어머니가 너희들 보고 싶어서 가슴 쓰려 하시다가 일찍 죽었다”고 했다.

북측 동생 김순옥씨(81)는 오빠 김병오씨(88)에게 “혈육은 어디 못 가. 오빠랑 나랑 정말 똑같이 생겼다”고 했다. 자신을 평양의과대학 출신 의사라고 밝힌 순옥씨는 “통일이 돼서 단 1분이라도 같이 살다 죽자, 오빠”라며 눈물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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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측 며느리 김명순씨(71)는 최고령자인 백성규씨(101)가 휠체어를 타고 행사장에 나타나자 백씨의 어깨를 부여잡고 울었다. 백씨는 미소를 띠며 애써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백씨의 아들 용선씨(59)는 김씨를 향해 “형수님, 형수님이십니다”라고 했고, 김씨의 딸 백영옥씨(48)에게는 “내가 작은아버지야”라고 했다. 북측 보장성원(안내원)이 백씨 가족을 위해 카메라로 즉석에서 기념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부인과 함께 연회장에 입장한 김강래씨(84)는 북측 두 동생 영래씨(75), 흥래씨(61)와 서로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흥래씨 어깨를 만지면서 “이야 반갑다!”라며 웃었다. 흥래씨도 “이야~”라고 했다.

송영부씨(92)는 상봉 중 기력이 떨어진다고 호소해 의료진이 긴급 출동하기도 했다.

옛 사진 보며 얘기꽃 만발

겨울옷·신발 선물도 풀어


남북 이산가족들은 곳곳에서 옛 사진들을 꺼내 보며 얘기를 나눴고, 상봉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남측 방문단은 북측 가족들을 위해 겨울 점퍼 등 옷가지와 신발, 영양제, 초코파이 등을 준비했다. 2시간 동안의 단체상봉이 끝나 남측 방문단이 퇴장한 뒤에도 출입문 쪽을 바라보는 북측 가족들도 있었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오후 7시17분 2시간 동안 북측이 주최한 환영만찬에 참석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상봉 2일째인 21일에는 숙소인 외금강호텔에서 2시간 동안 개별상봉을 하고, 1시간 동안 남측 가족 숙소에서 가족별로 점심을 먹는다. 남북 가족이 숙소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금강산 | 공동취재단·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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