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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임신·출산, 그리고 1년의 육아…이제 나도 `돌끝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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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1년 동안 아이도 나도, 고생 많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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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엄마 잡학사전-57]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제법 시원해졌다. 한낮의 태양이 뜨겁긴 하지만 푹푹 찌는 더위는 한풀 꺾였다. '작년 이맘때 내가 아이를 낳았다고?' 불과 1년 전 일이지만 믿기지 않는다. 출산 2주 전까지 만삭의 몸으로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다녔다는 사실이 꿈만 같다. 아직도 버리지 못한 임부복만이 내가 임신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내가 다니던 병원 1층 카페에서는 카페인이 들어가지 않은 커피를 팔았다. 산부인과 검진 갈 때마다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둘째라 대부분 남편 없이 혼자 병원에 다녔고 별로 서운하지 않았다. 회사와 병원이 멀어 병원 검진이 있는 날마다 회사에 눈치가 보였지만 속으로 기뻤던 적이 많았다. 대기시간이 길어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진료받고 여유롭게 출근하는 시간이 좋았다.

출근시간이 남편보다 조금 늦은 내가, 곤히 자는 첫째를 둘러업고 아침마다 친정에 데려다준 뒤 출근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만삭의 몸으로 노트북 가방과 어린이집 가방을 짊어지고 첫째를 안고 내려가 차에 태우는 일은 고됐다.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친정으로 퇴근해 첫째를 돌보다 거실에 뻗어버린 만삭의 딸을 오직 친정엄마만 이해해주는 것 같았다.

하필이면 야근 많은 부서에서 일하느라 일주일에 한두 번 남짓 가족과 시간을 보낸 남편이 가끔 원망스러웠다. '그럴 거면 회사를 그만두라'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당시에는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회사 다니며 첫째 육아에 둘째 임신까지, 삼중고가 겹친 나는 남편의 절대적인 지원과 지지가 필요했다.

상급 종합병원에서 출산한 까닭에 밤늦게 병원 로비를 남편과 돌아다녔다. 링거를 꽂거나 휠체어를 타고 가족들과 어두운 얼굴로 얘기를 하거나 우두커니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들이 애처로워 보였다. 기쁜 일로 이 병원에 있는 사람은 오직 우리와 산부인과 병동 사람들뿐이라는 생각에 어쩐지 마음이 이상했다.

산후조리원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번 에어컨을 껐다 켰다. 몸은 더운데 산후풍 걱정이 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조리원 창문 너머로 매일 아침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실감했다. 퇴근 후 식은 디카페인 커피를 들고 나타나는 신랑이 그렇게 반가웠고, 몇 년 동안 보지 못한 드라마를 몰아보며 시간을 보내는 게 즐거웠다.

조리원 생활이 끝나고부터는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아이 둘과 매일 육아 전쟁을 치르다 보면 금세 하루가 지나갔다. 둘째는 언제 뒤집고 기고 서서 걸어다니나 싶었는데 벌써 걸음마를 위한 첫발을 뗐다.

헝클어진 머리에 수유복을 입고 매일 아이와 씨름하며 언제 내 아이가 돌이 될까 생각했는데 오늘이 벌써 둘째가 태어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생후 6개월도 안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도 되는 건가 고민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잘 적응해주었고, 언제 이가 나서 밥을 먹나 싶었는데 벌써 이가 8개나 났다. 첫째 장난감을 가지고 놀겠다고 대들며 형을 물기도 하고 검지손가락으로 여기저기 가리키며 엄마를 진두지휘하니 제법 어린이 같다.

지난주 가족들과 간소하게 돌잔치를 치렀다. 준비 과정은 힘들었지만 돌잔치를 끝내고 나니 뭔가 후련했다. 이제 나도 사람들이 말하는 '돌끝맘'이 됐구나, 이제 아이가 제법 커서 손잡고 걸어다니고 이야기도 하고 밥도 같이 먹을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시원섭섭했다. 이제 더는 배냇짓을 하지 않고 응애응애 울지는 않겠지만 온 가족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넷이 손잡고 걸어다닐 수 있겠구나 싶어 설레었다.

복직할 날이 머지않았다. 어린이집에 다녀온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함께 그네를 타고 집 앞 마트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던 소소한 일상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을 테다. '1년 동안 아이 키우느라 고생 많았다'는 친구의 문자에 어쩐지 가슴 먹먹하다. 1년 동안 아이도 나도, 고생 많았다.

[권한울 프리미엄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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