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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빨간날]"아니아니"…'반말 섞어쓰기' 빈정 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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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편집자주] 월 화 수 목 금…. 바쁜 일상이 지나고 한가로운 오늘, 쉬는 날입니다. 편안하면서 유쾌하고, 여유롭지만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늘은 쉬는 날, 쉬는 날엔 '빨간날'

[근데 왜 '반말'이세요?-③]응답자 84% "교묘한 반말, 기분 상해"…갈등 되거나 관계 해치기도

머니투데이

/삽화=임종철 디자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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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아니, 사이드 먼저 풀어야지."

"응, 그렇지. 그게 아니고, 여기서 멈춰야죠."

"아이 참, 사고 나겠네."

대학생 유소영씨(21)는 여름방학이라 운전 면허를 따고 있다. 그런데 최근 도로주행 연수를 받다 기분 나쁜 일을 겪었다. 보조석에 앉은 강사가 계속해서 존댓말에 반말을 교묘하게 섞어서 쓴 것. 중간중간 "응", "아니", "ㅇㅇ하는데" 등 말이 귓속에 파고들어 신경을 계속 긁었다. 결국 연수를 끝낸 뒤 유씨는 "근데 왜 아까부터 계속 반말을 쓰시냐"고 따졌다. 이에 강사는 "기분 나빴으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교묘한 반말'이 단골 고민꺼리다. 주로 존댓말을 쓰면서 때때로 반말을 섞어 쓰는데, 은근 빈정이 상한다는 것. 앞에서 대놓고 정색하기도 애매해 듣는 이만 속 끓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관계를 해치는 것은 물론, 심하면 갈등까지 불거지기도 한다.

머니투데이가 20~50대 주부·직장인·취업준비생·대학생·무직 등 100명을 대상으로 취재한 결과 84명(84%)이 은근슬쩍 섞는 반말 때문에 기분이 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 같은 사례는 주로 거리가 있는 인간 관계에서 오간다. 친하지 않다고 생각해 존댓말을 쓰는데, 한쪽이 드문드문 말을 놓아 생기는 일이다.

주부 강모씨(36)는 함께 운동하는 주부 정모씨(31)와 알게됐다. 종종 점심을 먹긴 했지만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녔다. 그런데 한 달 전쯤 부터 정씨가 강씨에게 반말을 섞어 쓰기 시작했다. 기억나는 반말은 "귀찮은데", "오늘 갈거야?", "빨리 와", "왜 그래" 등이었다.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다 기분이 상한 강씨는 점차 정씨와 거리를 두게 됐다.

비교적 격식을 갖추는 직장 내에서도 이 같은 일이 벌어질 때가 많다.

대기업 직장인 고모씨(29)는 상사가 섞는 반말이 들리면 심장이 쫄깃해진다. 조직 문화 혁신이라며 허울 좋은 존댓말을 쓰는데, 뭔가 안 좋을 때마다 반말이 나오는 탓. "고OO씨, 일 아직도 못했어요? 정신 안 차려?", "고OO씨, 왜 이렇게 늦었어요. 단골 지각생이네." 등 깨질 땐 타격이 더 크다. 차라리 반말이 더 편할 정도다.

보험업계에 종사하는 권모씨(34)는 업무 협력 차원에서 다른 부서 직원을 만났다. 해당 직원은 존댓말을 쓰면서 반말을 섞어 썼다. 업무 협의 중간중간마다 혼잣말인지, 권씨에게 하는 말인지 애매하게 "일이 좀 많은데", "난감한데", "골치 아프네", "응, 맞네" 등을 반복했다. 권씨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모르는 사이라면 더 빈정이 상한다. 직장인 정영호씨(34)는 최근 한 맛집을 찾았다가 서빙 직원 반말에 기분이 상했다. 메뉴를 시킬 땐 "이게 맛있어, 시켜봐요", 부를 땐 "가요, 간다고", 계산할 땐 "카드야? 현금 없어요?" 등의 식이었다. 이에 정씨가 "말이 좀 짧으시네"라고 하자 직원은 기분이 상했는지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다수는 속만 끓는 경우가 많다. 대놓고 반말을 쓰는 게 아니라 머리가 복잡해지기 때문. 머니투데이 취재 결과 '교묘한 반말'에 어떻게 대응했느냐는 물음에 100명 중 68명(68%)은 '기분 나빴지만 넘어갔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애매한 반말이어서'가 38명(55%)으로 가장 많았다. 취업준비생 이정호씨(31)는 "항의하면 속 좁은 사람이 될까 그냥 넘어간다. 따지기도 애매해서 화가 더 난다"고 말했다.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 쓰는 심리는 뭘까. 이 같은 화법을 구사하는 이들은 대다수 '말버릇' 이라고 밝혔다. 직장인 양승철씨(36)는 "상대방과 빨리 친해지기 위한 일종의 말버릇인 것 같다"며 "별다른 악의가 있는 건 아닌데 가끔 오해를 받을 때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교묘한 반말이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부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최주리 올댓매너연구소 대표는 "일상적으로 편하게 반말을 섞어 쓰기도 하는데, 매너를 갖춰야 하거나 공적인 자리에선 불쾌감이 들 수 있다"며 "특히 애매모호한 관계거나 동갑인데 직급이 다른 경우 등에선 더 그렇다"고 설명했다.

최 대표는 "상대방에게 어떻게 불러주는게 편한지 물어보는 게 중요할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편하겠지 얘기하면, 사람에 따라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라며 "편하게 가자는 합의가 되면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서 사용해도 불쾌감 안 들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형도 기자 hu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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