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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TF초점] 안희정 1심 무죄에 '남탓' 바쁜 국회-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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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지난 14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가운데, 국회와 법원이 각각 '사법'과 '입법'을 탓하며 책임을 돌렸다. 지난 14일 안 전 지사가 서울서부지법에 출석했을 당시. /이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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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1심 무죄 판결에 국회-법원 서로 책임 미뤄

[더팩트ㅣ임현경 인턴기자]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1심 무죄 판결을 두고 후폭풍이 거세다. 특히 안 전 지사의 무죄 판결을 놓고 사회적 혼란을 부채질한 법 제도에 제도적 보완을 해야 할 사법부와 입법부가 네 탓만 하고 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조병구 부장판사)는 지난 14일 안 전 지사에 무죄를 선고하며 '현행법상 한계'를 들었다. 즉, 안 전 지사의 무죄 판결은 현행법에 근거했을 뿐이며, 법이 바뀐다면 재판 결과 역시 달라질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현행법상 피해자가 '싫다'고 했어도 특정 조건을 충족하지 않는다면 '강간'이 되지 않는다. 형법에 따르면, 강간죄는 가해자가 '폭행이나 협박'을 사용해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 또는 '항거가 현저히 곤란한 상태'에 빠진 경우에만 적용된다.

만약 '노 민스 노(No Means No), 거절은 말 그대로 거절을 의미한다)'가 반영된다면 법률상 피해자가 거절 의사를 명시한 이후 항거 불능 상태에 처하지 않았더라도 강간죄가 성립된다. 이 경우 안 전 지사의 1심 결과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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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강간 처벌 체계는 입법 정책의 문제"라며 입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사진은 20대 국회 본회의 현장. /더팩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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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상대방의 성관계 동의 의사 없이 성관계로 나아갈 경우 이를 강간으로 처벌하는 체계를 도입할 것인지는 입법 정책적인 문제"라며 입법부의 역할을 부각했다. 실제로 20대 국회에서 '미투 운동'과 관련해 발의된 법안은 총 41건이지만, 이제까지 본회의에 상정된 법안은 단 한 건도 없다.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지난 2~4월 무렵 국회에서는 관련 법안이 쏟아졌다. 홍철호 자유한국당 의원, 강창일·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 천정배 민주평화당 의원 등이 '노 민스 노 룰'을 규정한 형법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황주홍 민주평화당 의원이 지난 2월 발의한 법안은 '사실에 관한 명예훼손죄'를 처벌하는 규정을 삭제해 피해자가 명예훼손으로 역고소 당하는 일을 방지하고자 했다.

한국당은 권력형 성폭력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일명 '안희정 처벌법'을 내놨다. 이명수 의원과 곽상도 의원이 각각 지난 3월과 4월에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특히 곽 의원의 법안은 '피해자의 동의나 합의에 의한 것으로 인정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는 '예스 민스 예스(Yes Means Yes)룰'을 포함한다.

심지어 미투 운동이 있기 이전에도 강간죄 성립 요건을 완화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끝내 빛을 보지 못했다. 함진규 한국당 의원은 강간죄가 성립하기 위한 폭행·협박 기준을 강제추행죄와 동일시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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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보다는 사법부의 법률 해석이 재판에 결정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대법원 전경. /더팩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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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당시 입법 취지로 "'항거 불능 또는 항거가 현저히 곤란한 상태'의 요건이 강간죄의 보호법익인 피해자의 성적자기결정권과 배치된다"며 "피해자를 '범죄의 원인 제공자' 또는 '반항조차 충분히 하지 않은 방조자'로 보아 재판을 '피해자재판'으로 변질시킨다"고 설명했다. 해당 법안은 2013년 6월 발의됐으나 2016년 5월까지 약 3년간 계류 상태에 머물렀다. 결국 19대 국회 임기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입법의 문제가 아니라 사법부의 법률 해석이 결정적이라는 반론이 나온다. 사법부의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승희 민주당 의원은 16일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재판부는 현행법상 '위력'에 대한 해석 자체를 협소하게 했다"며 "법적 체제상 해석이 명기되어있지 않으니 입법을 핑계로 삼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재판부는 김지은 씨에게 전형적인 피해자상을 강요하며 피해자는 삶이 파탄지경에 이르고, 죽을 때까지 저항해야만 성폭력 피해로 인정한다는 과거의 잘못된 통념을 그대로 답습했다"며 "문화적 차원에서 등불같이 번지는 미투가 법적 해석으로 이어지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 의원은 "'노 민스 노'에서 나아가 '예스 민스 예스'까지 좀 더 분명한 법안이 필요하다. 민생, 약자보호법안들이 여야 합의가 지체돼 계류 상태다. 이 또한 입법 개혁 과제일 것이다"며 입법에 대한 성찰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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