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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서구적 근대’ 넘어설 ‘토착적 근대’에 주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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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원광대 ‘토착적 근대’ 주제 학술회의

‘영성’이 서구 근대 넘어설 실마리

동학이 물꼬를 튼 ‘개벽사상’ 주목



한겨레

서구가 독점해온 ‘근대’의 개념과 그로부터 야기되는 한계들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지만 ‘서구적 근대’의 강력한 규정성을 떨쳐버리는 것은 아직도 쉽지 않은 과제로 꼽힌다.

지난 15~16일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이 연 ‘근대 한국종교의 토착적 근대화 운동’이란 주제의 학술회의는, ‘토착적 근대’라는 비교적 새로운 개념을 통해 기존의 ‘서구적 근대’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정신과 영성을 끌어안는 종교가 ‘토착적 근대’의 큰 축을 담당한다는 주장도 흥미롭다.

‘토착적 근대’는 아프리카 문학을 연구해온 기타지마 기신 일본 요카이치대 명예교수가 제시한 개념이다. 학술회의 발표자로 나선 기타지마는 “(비서구 지역에서) 토착문화가 현대의 과제에 도전하고, 현실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데에서 생겨나는 것이 ‘새로운 근대’이며, 이것을 ‘토착적 근대’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서구 근대는 종교를 개인의 정신세계에 가뒀고, 종교가 지니는 초월성은 국가의 절대성으로 포섭되었다. 그런데 국가의 절대성이 차별과 억압을 만들어내니, 이를 넘어설 ‘새로운 근대’를 토착문화인 종교로부터 찾아보자는 것이다. 그는 실제로 1970년대 이란의 ‘이슬람 부흥주의’(알리 샤리아티),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구스타보 구티에레스), 남아프리카의 ‘흑인의식운동’(스티브 비코) 등 토착문화인 종교를 기본 축으로 삼은 사회·정치 비판 운동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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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한 원광대 연구교수와 조성환 원광대 책임연구원은 한국 근대사상사에서 ‘개벽’이라는 물줄기를 키워, ‘토착적 근대’란 문제의식에 공명하고자 한다. 그동안 전통에 매달리는 척사파와 ‘서구적 근대’에 입각한 개화파의 대립만을 봤다면, 이제는 ‘서구적 근대’와 전혀 다른 ‘토착적 근대’를 사유하고 실천한 ‘개벽파’를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조성환은 동아시아의 근대를 영성 중심의 ‘개벽의 근대’와 이성 중심의 ‘개화의 근대’로 나눈다. 일본이 추구했던 ‘개화의 근대’는 사실상 ‘서구적 근대’를 따라가는 입장이었다. 반면 1860년 한국에서 동학 혁명으로 일어난 ‘개벽의 근대’는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도덕문명’을 ‘민중’으로 이루려 했다는 점에서 이와 다르며, 서구적 근대가 위기에 처한 오늘날 다시금 되살려야 하는 사상적 전통이라는 주장이다. 3년 동안 유라시아를 유랑했던 이병한은 유라시아 곳곳에서 ‘지구적 근대’의 위기를 “종교나 생태 등 초월적 세계와의 연결망 회복”으로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며, “경제적 이성(산업화)과 정치적 이성(민주화) 이후, 탈세속화 시대의 정치적 영성화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 역시 개화좌파(진보), 개화우파(보수)와는 다른, “만인의 성인(聖人) 되기”를 추구하는 ‘개벽파’가 오늘날 시대정신에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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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로 유명한 오구라 기조 일본 교토대 교수의 ‘19세기와 동학’ 발표도 눈길을 끈다. 그는 “동학의 평등사상은 제국주의라는 큰 흐름의 한가운데에서 그것에 대해 아래로부터 항거하려고 하는 방향성을 19세기 어떤 동아시아 사상보다 선명하게 내세웠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평가한다. 기성 학계에선 간과해왔지만, ‘영성적인 것’이야말로 “한국사상사 전체를 움직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동력이 되어왔다”는 풀이를 내놓는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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