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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게임 그리고 섹스, 우리의 상상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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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젊은 작가의 전시 둘]

디지털 시대 위안과 즐거움 다룬 차슬아

여성의 솔직한 성적 욕망 표현한 김민희

청년의 시선으로 그린 ‘오늘의 미술’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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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줘!’

3년전인 2015년 국내 청년작가들은 미술판에 외마디 비명 같은 프로젝트들을 내지르며 ‘삼포세대 미술’의 존재감을 알렸다. 서울 변두리 곳곳에 ‘신생공간’이 우후죽순 들어섰고, 그해 10월 세종문화회관에 차렸던 난장 같은 청년미술장터 ‘굿-즈’는 그 비명의 실체였다. 그러나 이듬해 청년작가들의 집단적 움직임은 사그라들었고, 다시 그들은 ‘잠수’했다. 그때의 기억을 품은 청년작가들은 올 여름 어떤 미술을 꿈꾸고 있을까.

지난달말부터 서울 망원역 근처 동교로의 미술공간 ‘취미가’에 차린 차슬아(29) 작가 개인전 ‘Ancient Soul(고대의 정신)++’(26일까지)과 서교동의 대안공간 ‘합정지구’에 마련한 김민희 작가의 개인전 ‘오키나와 판타지’에서 그들 나름의 모색을 엿볼 수 있다.

조소를 전공한 차 작가는 전시장에 칸칸이 구획된 장을 짜서 온라인게임에 등장하는 가상의 물건들을 예술품마냥 진열해 놓았다. 흔히 ‘아르피지(RPG)’로 불리는 롤플레잉(역할)게임, 즉 플레이어가 가상의 캐릭터 역할을 맡아 적과 싸우며 목표를 성취하는 게임에서 전투력 혹은 체력을 배가시키기 위해 고르는 아이템을 실물로 빚어놓은 것이다. 마법사·대정령의 지팡이, 은기둥, 투명알, 마법의 계란알, 그리고 온갖 종류의 녹슬거나 빛나는 장검 등이 점토·레진·스티로폼 등의 재료로 물화돼 질서정연하게 놓여있다. 작가는 일종의 가상 복제물을 만드는 발주업자가 돼 작품들을 빚어내는 셈이다.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겐 황당한 내용들이지만, 게임에 몰입해본 청년층 관객들은 눈앞에 실제로 나타난 물건들을 보면서 묘한 위안과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고 한다. 모든 출품작들을 손으로 만지고 들어볼 수 있다는 점도 전시의 특징이다. 디지털 시대의 산물을 아날로그 수공작업으로 질감과 무게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는 독특한 설정이 또다른 성찰의 여지를 남겨주기도 한다. 3년전 미술품 장터 ‘굿-즈’의 맥락을 계승한 전시장의 작품들은 대부분 4만원대에서 70~80만원대까지의 굿즈(미술상품)로 구매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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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27) 작가의 개인전은 여성의 몸에 대한 시선과 작가의 솔직한 성적 욕망을 거친 선과 색감의 정통 회화로 탐색한다. 굿-즈 미술과는 다른 맥락에서 시대와 현실을 고민하는 청년작가들의 심중을 그려내 보이고 있다. 여성의 젖꼭지까지 핑크색-갈색으로 우열지어 소외감을 조장하는 남성 중심 사회의 음습한 시선에 맞서, 작가는 다양한 각도로 갈색 젖꼭지들을 형형하게 묘사해 집적한 모자이크 작업으로 미학적 항거를 꾀한다. 오키나와 여행중 만난 현지 가옥의 창문이나 빨랫줄에 내걸린 잠수복 등에서 돌연 성적 충동을 느꼈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린 풍경연작들에서도 타인의 시선에 대상화되지 않은 작가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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