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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 (일)

다름을 그리고 서로를 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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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제주도민과 예멘 난민들이 서로의 얼굴을 그리고

대화를 나누는 ‘제주 컬러풀 워크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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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우리가 즐겨 인용하는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의 명제가 참이라면,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것은 자세히 오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제주도에 와 있는 예멘 난민이 그랬다.

8월7일 저녁, 제주도민과 예멘 난민 50명이 서로의 얼굴을 그리고 대화를 나누는 ‘제주 컬러풀 워크숍’에 참가하기 위해 제주 시내 작은 카페에 모였다.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는 카페에는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웃음의 종류는 다양했다. 어떤 사람들은 처음 마주한 낯선 얼굴을 그리는 일이 어색해 멋쩍게 웃었다. 상대방이 그린 자신의 얼굴을 보고 폭소하는 이도 있었고, 아이들은 뭐가 즐거운지 예멘 난민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박수를 치며 “꺄르르” 소리내 웃었다. 제주도민들은 가족 단위로 참가한 이가 많았다. 강지우(11) 어린이는 “봄 꽃축제에서 예멘 사람들을 지나가며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이야기한 건 처음인데 너무 재미있었다. 내가 모르는 언어를 써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는 어렵지만 그림을 그리니까 좀더 통하는 거 같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우리는 여기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예멘 사람들은 전쟁 때문에 불행하다’고 했다. 사람들이 싸우지 않고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림은 만국 공통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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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림은 만국 공통의 언어였다. 눈·코·입을 찬찬히 뜯어보고 머리카락을 한올 한올 그려나가며 관찰하다보면 금세 서로를 친근하게 느꼈다. 1시간에 걸쳐 서로의 얼굴을 목탄으로 그린 참가자들은 조금씩 타국의 언어에 관심을 가지고 흉내 내기 시작했다.

행사에 참가한 예멘인 모하마드는 “이렇게 뜻깊고 즐거운 행사에 초대해줘서 너무 고맙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그림을 통해서 한국 사람들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렇게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렸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면 그 말씀은 한글도 아랍어도 아닌 그림이 아니었을까.

행사를 기획한 미술가 최소연씨는 행사 공지글에 “우리는 예멘과 한국에서 동시에 길을 잃었다. 함부로 서로를 판단하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고 기록하기 위한 작업장을 시작한다.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그림 그리고 글을 쓰는 워크숍에 초대한다”고 썼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서로를 오랫동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볼 수 있게 했다.

행사에 참가한 한국 사람들은 얼굴을 본 적이 없어 낯설고 두려웠던 마음이 누그러졌다고 입을 모았다. 자녀들과 함께 참가한 채희정(40)씨는 “언론 보도를 보고 두려운 마음이 들어 조심했던 게 사실이다. 길에서 (예멘 난민을)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해다니기도 했다. 예멘에서 여성의 지위가 남성보다 낮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나를 어떻게 대할지 궁금했는데 직접 만나보니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서 힘들었지만 편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뉴스에선 항상 모자이크 처리가 돼 있어서 몰랐는데 생각보다 많이 잘생겼다”며 밝게 웃었다.

서로의 얼굴을 그린 다음에는 글 쓰는 시간을 가졌다. 질문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의 가장 자랑스러운 모습은 무엇인가?’ ‘처음 예멘/한국에 대해 생각했던 것과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나?’ ‘어떻게 하면 지금 상황을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해 파트너에게 편지를 쓰는 것’ 세 가지였다. 각자의 모국어로 글을 쓰는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노트·SNS에 시 쓰는 걸 즐기는 예멘인들

‘그림을 그리면서 멀게만 느꼈던 예멘과 한국이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는 내용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한 걸음 다가가는 것에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내용이 많았다. 예멘인 아루는 “내가 한국을 몰랐더라면 아무것도 모르고 죽었을 것이다. 한국을 모르고 죽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짧은 시를 썼다. 예멘인들은 노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시 쓰는 것을 즐긴다.

그림과 글은 각자에게 주어진 종이 상자에 담았다. 참가자들은 종이 상자에도 다양한 색깔의 그림을 그렸다. 8월6일과 7일 이틀에 걸친 행사에서 상자 100여 개가 모였다. 최소연씨는 그림과 글을 전시하거나 스캔해서 책으로 펴내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김종훈(42)씨는 “기사를 보며 사람들의 걱정처럼 나도 치안 문제를 포함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낯설고 두려운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자녀들에게 그런 고민을 떠나 있는 그대로를 한번 보여주고 싶어서 데려왔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고 그림을 그리니까 감정적으로 가까워진 느낌이다. 나중에 뉴스에서 예멘인이 난민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하면 걱정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서울에서 제주도로 여행 왔다가 워크숍에 참가한 사람도 있었다. 한여원(29)씨가 그렇다. “서울에 올라가기 전에 꼭 한번 만나보고 싶어서 왔다. 예멘 난민에 대한 가짜뉴스를 보고 무작정 쫓아내라는 여론이 있다는 것을 듣고 마음이 아프고 속상했다. 같이 그림 그리고 이야기도 나눴는데, 문화가 조금 다르지만 그들은 예의 바르고 착했다. 페이스북 친구를 맺었는데 앞으로 계속 연락하고 지내겠다.”

행사를 기획한 최소연씨는 자신이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으로 공간을 잃은 경험이 있어서, 전쟁을 피해 조국을 등지고 낯선 곳으로 온 예멘 난민들의 아픔을 더욱 깊이 이해했다. 최씨는 2010년부터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추구하는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을 운영했다. 하지만 이태원 인근 상권이 확대되고 주변 건물 임대료도 급격하게 올랐다. 2012년 가수 싸이(박재상)가 최씨가 세입자로 있던 한남동 건물을 인수한 뒤 재건축을 위해 공간을 비울 것을 요구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지난한 소송과 다툼 끝에 최씨는 2016년 8월 거기서 나왔다.

최씨는 이날 행사 머리 발언에서 “서울에서 살고 있지만 나도 계속 쫓겨났다. 난민 같은 마음이다. 한국에는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가 없고 예술가를 위한 공간이 없다. 예멘 사람들의 상황이 훨씬 나쁘지만 함께 길을 찾았으면 좋겠다. 방법을 잘 모르겠으나 국가가 해주기를 기다리기보다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쓴 글과 그림으로 컬러풀한 도서관을 만들어보자”고 했다.

6년 전부터 국내 난민 문제에 관심 갖고 활동해온 최씨는 2014년 난민 10명과의 인터뷰를 엮어 책 <난센여권>을 펴내기도 했다. 책 제목은 노르웨이 출신 탐험가이자 인권운동가인 프리드쇼프 난센이 난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난센여권’에서 땄다.

“누군가 옆에 서주는 게 큰 힘”

최씨는 <한겨레21> 인터뷰에서 “자유의지가 아닌 강제에 의한 이주에 관심이 많다. 건물주에게 밀려 떠나고 사람들의 오해를 받아보니까 사회적 약자가 발언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고, 답답했다. 일종의 박해인데 그럴 때 약자 처지에선 누군가 한 명이 옆에 서주는 게 큰 힘이 된다”며 “아직 참가하지 못한 예멘인 중에서도 함께하고 싶다고 밝힌 분들이 있어서 여건이 허락되면 행사를 계속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제주=이재호 기자 ph@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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