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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제주난민 괴담 확산… "혐오바탕 무비판적 가짜뉴스 수용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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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온라인서 강력사건 예멘인 연루 허위사실 확산

전문가 "괴담 근저엔 난민 혐오...비판적 수용 태도 필요"

제주CBS 고상현 기자

노컷뉴스

온라인 커뮤니티에 떠돈 '제주 실종' 게시물.


최근 제주지역에서 강력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예멘 난민이 연루됐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괴담이 빠르게 퍼지는 이유로 혐오를 바탕으로 예멘인이라는 낯선 집단을 배제하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인간의 심리적 특성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 여성 6명 실종·변사 사건…예멘 난민 연루?

지난 6일 오후 9시 37분쯤 제주시청 인근 골목길에서 A(85·여)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사건 현장을 지나가던 시민들이 SNS에 목격한 내용과 함께 ‘여성 사망 사건에 난민이 개입됐다’ 등의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유포했다.

실제로 경찰 조사 결과 치매환자였던 A씨가 신변 비관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경찰이 난민에 의한 범죄가 아니라고 밝혔음에도 SNS상에선 ‘난민들이 한 게 아니라고 거짓말 중’이라는 등의 사실을 부정하는 글이 나돌았다.

이에 앞서 지난달 25일 제주시 세화포구에서 최모(38·여)씨가 실종되자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제주도 난민 받은 이후로 한 달 동안 여성 6명 실종’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 게시물은 지난 6월 7일부터 7월 25일까지 중복 사례를 제외한 모두 5건의 여성 변사 사건을 나열하며 해시태그(#)와 함께 ‘제주도여성실종사건’, ‘제주도여성안전권보장하라’라는 문구를 곁들였다.

작성자는 게시물과 함께 “제주도가 위험하다. 가만히 있으면 제주도뿐만 아니라 한국 전체가 난민으로 위장한 사람들에게 먹힐 것”이라고 적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에서 확인한 결과 변사 사건 5건 중 2건은 사실이 아니며, 실제로 발견된 변사체도 모두 타살 혐의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거짓 정보 중에 포함된 세화포구 30대 여성 실종 사건 역시 경찰 부검 결과 실족해 익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게시물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지만, 난민 혐오를 부추기는 이 게시물은 인터넷 기사 댓글과 영상 등 ‘가짜뉴스’의 형식으로 온라인상에서 빠르게 퍼졌다.

노컷뉴스

최근 SNS상에서 퍼진 난민 괴담 글들.



◇ 난민 괴담 확산…“인지적게으름‧세련된 가짜뉴스 때문”

전문가들은 이처럼 최근 온라인상에서 예멘 난민 혐오를 부추기는 괴담 확산 현상에 대해 어떻게 바라볼까.

안도현 제주대학교 언론홍보학과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번 현상에 대해 “낯선 집단을 배제하는 인간의 심리적 특성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인간의 근원적인 심리 중엔 내집단과 외집단을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며 “내집단 안에서는 이타적이지만, 반대로 외집단에겐 굉장히 배타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예멘 난민은 외집단 중에서도 가장 생소하고 낯선 외집단이기 때문에 모든 나쁜 게 있으면 그쪽으로 돌려버리는 게 인간의 가장 직관적인 심리적 특성”이라고 덧붙였다.

예멘 난민 수용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은 현 상황에서 강력사건 등 부정적인 이슈를 예멘 난민과 연관 지음으로써 난민 수용에 대한 반대 여론을 강화한다는 것.

안 교수는 특히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인지적 게으름’도 괴담 확산에 한 몫 했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와 부합할 경우 사실 여부를 따지지 않고 그대로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며 “난민 관련 괴담이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정 작용 없이 빠르게 퍼지는 것도 이러한 심리적 특성에 기반한다”고 지적했다.

또 “오래 전부터 가짜뉴스는 있었지만, 조악한 형태였다”며 “최근에는 기술 발달로 미디어 진입 장벽이 낮아지면서 제도권 미디어 형식과 비슷한 가짜뉴스가 양산돼 사람들이 쉽게 믿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 괴담 근저엔 난민 혐오가…“비판적 미디어 수용 태도 필요”

최현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괴담 현상의 근저에는 난민 혐오가 깔려 있다고 지적한다.

최 교수는 “최근 살기가 팍팍하다보니 사람들이 예멘 난민을 희생양 삼는 것”이라며 “일본에서 재특회가 재일동포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괴담을 유포하며 희생양 삼았던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재특회(재일 한국인들의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모임)는 일본 내 한인 혐오단체로 괴담 유포를 비롯해 공개적인 자리에서 ‘죽여라’ ‘바다에 던져라’ 등의 선동을 해왔다.

최 교수는 “일본도 재특회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자 혐오 발언을 처벌할 수 있는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을 제정했다”며 “사회적 약자인 난민에 대해 악성 루머를 퍼뜨리는 사람에 대해선 관계 당국이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 수용 측면에서도 난민 관련 괴담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선 비판적인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도현 교수는 “쉽진 않지만, 정보를 접할 때 가치에 부합한다고 무조건 믿는 게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 비판적인 자세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컷뉴스

경찰청이 제주 실종 여성 사건과 관련해 유포된 루머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내용을 SNS에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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