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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단독] 구전 속 의자왕 ‘별궁’ 실체 드러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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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부여 화지산 기슭서 백제 최고급 건물 터 발굴

금강벌 한눈에 보이는 최고의 입지

구들장·고급토기 등 무더기 출토

‘삼국사기’ 기록 ‘망해정’ 세워진

별궁터로 추정…분석 결과에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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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세기 백제 도읍지였던 충남 부여의 화지산 기슭에서 당시 왕실 별궁과 전각 등으로 추정되는 대형 건물터와 고급 유물들이 잇따라 나왔다. 화지산 일대는 학계에서 <삼국사기>에 백제 마지막 임금 의자왕이 지은 것으로 기록된 망해정과 왕실의 이궁(별궁) 자리로 점찍어왔던 곳이다.

부여군 백제고도문화재단은 최근 부여읍 남쪽 궁남지 동쪽의 화지산 유적(국가사적)에서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어 지난 4월부터 5차 발굴조사한 성과를 공개했다. 재단 쪽은 사비시대 백제인들이 산 기슭의 땅을 깎고 흙을 되메우는 방식으로 재개발해 큰 대지를 조성한 뒤 정교한 주춧돌을 놓아 건물 3동을 지은 흔적들을 최근 확인했다고 밝혔다. 조사에서 확인된 건물터와 주변에 닦은 대지(750여평)는 백제인이 당시 자연 지형을 활용해 도시를 재개발한 특유의 방식을 보여준다. 산 서쪽 경사면에 원래 지반을 ‘L(엘)’자형으로 판 다음, 흙으로 일부를 되메우면서 수로, 축대 등을 만들었고 계단식으로 평평한 인공 대지들을 차례차례 조성한 뒤 건물들을 잇따라 축조한 흔적이 드러난 것이다. 산의 경사면 위쪽까지 대규모 택지를 조성한 백제시대 토목 재개발 사업의 자취를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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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축으로 배치된 건물터들은 당대 도성의 고급 시설로 추정된다. 터 바닥에선 구들장과 불고래 시설 등이 확인됐고, 연꽃무늬로 정교하게 수놓아진 기와막새와 그릇받침(기대), 뚜껑달린 합 등의 백제 토기류 150여점이 쏟아졌다. 이 세 동의 건물터는 원형과 네모진 형상으로 정교하게 다듬어진 기둥 초석들이 열을 이루면서 윤곽을 형성하고 있다. 현장을 살펴본 홍보식 공주대 교수는 “한눈에도 왕실이나 귀족 등이 쓸만한 용도의 공간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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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되는 건 두개의 나무 발판을 댄 구덩이(수혈) 유적이 건물터 부근에서 발견됐다는 점이다. 구덩이 아래로 배수로가 지나가는 유적의 바닥에서는 참외, 복숭아 등의 씨앗류가 층을 이루면서 깔린 채 발견됐는데, 식재료를 보관하거나 조리하는 대형 주방·창고 또는 화장실일 수 있다는 추정이 엇갈린다. 현장을 본 학계 한 관계자는 “구덩이 위에 나무 발판 두개가 올려져 있고 내부 바닥이 유기물층이었다. 애초엔 화장실터일 것이란 견해가 먼저 나왔지만 씨앗이 많아 현재로서는 터의 성격을 명확히 단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조사단은 구덩이 바닥 아래의 유기물층 토양을 떠서 화장실 유적의 전형적 특징인 기생충알 흔적이 있는지 분석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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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의자왕이 재위 15년째인 655년 ‘왕궁 남쪽에 망해정(望海亭)을 세웠다’는 기록이 전해져온다. 학계는 화지산 일대가 왕실연못 궁남지를 바라보는 위치인데다, 2000년 이래 4차례 발굴을 통해 초석 건물터와 연통형토기, 팔각우물, 인공대지 등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산 기슭에 망해정을 포함한 이궁터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해왔다. 재단 쪽은 “초석건물터와 각종 고급 출토품들은 전언으로만 알려져온 백제의 망해정, 이궁지의 전모를 밝히는 중요한 근거가 될 것으로 보고있다”고 밝혔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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