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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투자자들까지 협박당해… 냉면집 문 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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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출신 영화감독 정성산, '평광옥' 문 연지 9개월 만에 폐업

작품 홍보차 참석했던 보수 집회 보도되며 불매·악성 민원 시달려

탈북자 출신으로 뮤지컬 '요덕스토리'를 만든 정성산(49)씨가 자신이 운영하던 냉면집 '평광옥' 문을 닫는다. 정씨는 15일 페이스북에 '죄송합니다. 평광옥 접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보름 전쯤 동업자들이 '도저히 이런 상태로는 안 되겠다'며 가게를 정리하자고 했다"고 썼다. 정성산씨는 15일 본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모든 것이 뒤틀린 느낌"이라며 "응원해주신 분들께 죄송해 긴 시간 고민했지만 가게 문을 닫게 됐다"고 했다.

시작은 지난 4월 MBC 시사프로그램 '스트레이트' 보도였다. 세월호 단식 농성 앞에서 피자·치킨을 시켜 먹은 보수 단체를 다루면서 정씨의 모습을 10여 초 내보냈다. 이후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 정씨의 식당 이름, 위치가 올라오면서 '불매 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정씨는 "뮤지컬 '평양 마리아' 티켓을 나눠주러 갔을 뿐"이라면서 "내 손으로 수많은 탈북자를 데려왔고 누구보다 생명의 존엄성을 아는 사람인데 그런 짓을 하겠냐"고 항변했다.

조선일보

지난 5월 자신이 운영하는 평양냉면집 앞에 선 정성산씨. 뒤로 노란색 스프레이 흔적이 남아 있다. 가게 문을 닫기로 한 정씨는 “웬만하면 버티려고 했는데 동업자들이 피해를 보니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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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후 식당 유리창에 정씨를 비난하는 대자보가 붙고 노란색 스프레이로 세월호 추모 리본 표지가 그려지기도 했다. 이후 "한 달에 1~2번씩 관할 구청에 갖가지 이유로 신고가 들어갔다"고 했다. 폐업을 진작에 생각했지만 "부산, 제주도에서 직접 가게를 찾아와 격려하는 손님들에게 미안해 계속 장사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동업했던 투자자들의 회사로까지 협박성 전화가 걸려오면서 결국 폐업을 결정했다. 정씨는 페이스북에 "동업자들이 '탈북자 정성산은 위험 인물이며, 평광옥에 투자한 당신들을 국세청에 신고해 세무조사 받게 하겠다'는 전화를 여러 차례 받았다"면서 "투자자들이 '평광옥 때문에 모든 신상이 털릴 판'이라는 데 할 말을 잃었다"고 썼다.

평광옥은 지난해 11월 문 열었다. 그는 "'애국하는 분들 시원한 평양냉면 대접하리라'고 시작했던 가게를 9개월 만에 접게 됐다"고 마지막 소감을 남겼다. 정씨는 6~7㎏이 빠지고 건강이 악화됐다. 그는 "냉면 장인들이 무료로 레시피를 알려주실 정도로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너무 아쉽다"면서 "병원 치료부터 받고 냉면집을 살릴 방법을 찾겠다"고 했다. 그가 올린 페이스북 글에는 '응원하는 사람이 많으니 힘내라' '반드시 다시 일어서야 한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정씨의 본업은 영화감독이다. 평양연극영화대를 졸업하고 모스크바 국립영화대에서 영화 연출을 배웠다. 1994년 북한에서 KBS 방송을 몰래 듣다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갔고 1995년 탈북했다. 남한에 와서는 동국대 연극영화과에서 공부했다. 2006년 뮤지컬 '요덕스토리'를 연출하면서 유명해졌다. 그는 "요덕스토리를 영화화하기 위해 얼마 전 할리우드 관계자와 강원도를 다녀왔다"면서 "사선을 넘어온 사람인데 이대로 무너지지 않겠다"고 했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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