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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文대통령, 운전자론 넘어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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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한반도 주인論

"南北 진전이 비핵화 동력… 정상회담, 평화협정으로 가는 시작"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제73주년 광복절 기념식 경축사를 통해 9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 전개될 남북 관계 구상을 포괄적으로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남북 관계 발전은 북·미(北美) 관계 진전의 부수적 효과가 아니다"며 미·북 관계와는 별개로 다각적인 남북 관계 진전 의지를 내비쳤다. 설령 미·북 간 비핵화 협상 속도가 늦더라도 유엔의 대북 제재 원칙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남북 관계 개선 조치를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자"고 했다. 미국도 "비핵화의 진전이 있어야 남북 관계 개선도 가능하다"며 남북 관계 속도 조절을 주문해 왔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이번 경축사를 통해 남북 관계에 속도를 냄으로써 미·북의 비핵화 협상을 촉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문 대통령은 "남북 관계 발전이야말로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하는 동력"이라며 "과거 남북 관계가 좋았던 시기에 북핵 위협이 줄어들고 비핵화 합의에 이를 수 있었던 경험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9월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종전선언, 평화협정으로 가기 위한 담대한 발걸음을 내디딜 것"이라며 "남북 간에 더 깊은 신뢰 관계를 구축해 북·미 간 비핵화 대화를 촉진하는 주도적 노력도 함께하겠다"고 했다.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인이라는 인식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청와대가 그동안 "비핵화 문제는 북·미 간 문제"라고 선을 그어왔던 것과도 달라진 기류다.

이런 입장 변화는 4월 남북 정상회담과 6월 미·북 정상회담 때처럼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이 일치할 때는 시너지를 낼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비핵화를 외면하고 한·미 간 이견이 커질 때는 민족과 동맹에 우선순위를 두고 갈등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이 같은 문제에 대해선 구체적 언급을 하지 않았다. 다만 "남북과 북·미 간의 뿌리 깊은 불신(不信)이 걷힐 때 합의가 진정성 있게 이행될 수 있다"고만 했다.

청와대가 이날 주한 미군이 주둔하던 용산을 사상 처음 광복절 기념식장으로 택한 것도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곳은 114년 만에 국민 품으로 돌아와 비로소 온전히 우리의 땅이 된 서울의 심장부"라면서 "용산은 일본의 군사기지였고 조선을 착취하고 지배했던 핵심"이라고 했다. 용산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함으로써 신(新)자주 노선을 내비친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다만 문 대통령은 "용산에서 한·미 동맹의 역사가 시작됐고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 평화를 이끌어온 기반이었다"고 했다. 개화기 이후 용산이 미국과 일본이라는 '외세(外勢)'에 의해 점령됐다는 기존 진보 진영 논리와는 결이 다르다. 청와대 관계자는 "자주적 입장을 강조하고 있지만, 평화를 유지하는 기반에는 한·미 동맹에 있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분단 체제에 대한 규정과 비판에선 기존 진보 진영의 입장과 다르지 않은 견해를 밝혔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전의 대한민국 구주류(舊主流)들은 '분단 세력'이고, 이들이 분단을 정치적·경제적으로 악용해왔다는 인식이다. 문 대통령은 "분단은 안보를 내세운 군부 독재의 명분이 됐고, 국민을 편 가르는 이념 갈등과 색깔론 정치, 지역주의 정치의 빌미가 됐고 특권과 부정부패의 온상이 됐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나 분단 체제를 만들고 유지하는 거대한 축인 북한의 김씨 왕조 체제에 대해선 별다른 비판을 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반드시 분단을 극복해야 한다"고 했지만 "정치적 통일은 멀었더라도 남북 간 평화를 정착시키고 하나의 경제 공동체를 이루는 것, 그것이 진정한 광복"이라고 했다. 통일보다는 남북 간 교류와 경제 협력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정우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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