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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화)

[안희정 무죄 후폭풍]안희정 판결 후 쏟아지는 ‘2차 가해’…여성들 “#김지은 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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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고 당일, 남초 사이트·SNS에 김씨 비난글 다수 올라와

“배후 있다” “미투 변질” 주장 다시 확산되자 우려 목소리

시민단체, 가해 증거 수집·해시태그 운동…주말 시위 예정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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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비서에게 성폭력을 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1심 무죄 선고가 있던 14일. 온라인 남초 사이트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안 전 지사의 비서 김지은씨를 비난하는 글들이 다수 올라왔다.

직장인 이모씨(33)는 퇴근 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김 전 비서가 한 정치인의 인생을 망쳐놨다. 김 전 비서의 뒤에는 정치적 목적을 가진 배후가 있을 것’이라는 글을 보고 ‘추천’을 눌렀다고 했다.

이씨는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불륜 관계에 불과한 두 사람의 일이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라는 이름으로 잘못 포장됐다”며 “범죄가 성립하려면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김 전 비서의 말을 빼면 무슨 증거가 있나. 무죄 판결로 그 뒤에 배후가 있다는 생각이 굳어졌다”고 말했다.

안 전 지사의 무죄 판결 이후 온라인을 중심으로 김 전 비서에 대한 ‘2차 가해’가 진행되고 있다. 김 전 비서를 ‘질투에 눈이 먼 불륜 여성’으로 몰고, ‘미투는 변질됐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다시 확산되는 추세다.

15일 한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자기(김지은 전 비서)도 즐겨놓고 갑자기 성폭행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한 사람(안희정 전 지사) 인생을 망쳐놨다” “김지은 비서가 과연 순수한 피해자일까…눈물 빼고는 증거라고 할 게 하나도 없지 않았나” 등 글이 올라왔다.

동조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공무원 남모씨(41)는 “그동안 김씨가 일방적인 위력에 의한 피해자라고만 생각했는데 1심 판결문을 보니 ‘김 전 비서가 본인 의지만 있었다면 거부의사를 밝히는 등 충분히 해결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그간 조용하던 남자 동료들도 판결 직후, 김 전 비서를 비난하고 안 전 지사를 옹호하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좀 놀랐다”고 했다.

여성들은 이번 판결과 ‘2차 가해’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직장인 민모씨(34)는 “밥벌이가 걸린 상황에서 피해자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었겠냐”며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 아니라는 판결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1심이 안 전 지사에 대해 무죄라고 판단했더라도, 그 의미는 ‘유죄로 볼 증거가 충분치 않다’는 뜻이지, 안 전 지사가 죄 없는 완전무결한 사람이란 뜻이 아니다”라며 “성폭력 피해자인 김 전 비서를 비난하고, 안 전 지사를 옹호하는 행위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지역 경찰서 여성청소년과에 근무하는 한 여성 경찰은 “미국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도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슈타인이 배우들에게 호텔방으로 와달라고 하고, 위력을 이용해 배우들이 자신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게끔 만든 데서 시작됐다”며 “안 전 지사가 김 전 비서에게 한 행위도 똑같다”고 말했다. 그는 “판사가 가진 직업의 무게는 상당하다”라며 “이번 판결이 한국의 미투운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우려된다”고 했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연구해온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성폭력 가해자가 지인인 경우 피해자가 소리 지르고, 저항하고, 뺨을 때리고, 신고하는 등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생각은 판타지에 불과하다”며 “피해자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하면서도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등 혼란스러워한다”고 말했다.

허 조사관은 “재판부가 ‘피해자다움’에 초점을 맞추고 판단할 게 아니라, 가해자가 어떻게 상황을 만들어서 피해자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었는지 등 가해자의 행위에 초점을 맞춰야 했다”며 “‘피해자다움’에 대한 이해와 고려가 부족한 재판이었다”고 지적했다.

일부 누리꾼은 SNS에서 ‘#우리는 김지은을 지지합니다’라는 해시태그 운동을 시작했다. 여성단체들과 누리꾼은 김 전 비서에 대한 ‘2차 가해성 게시글’에 대한 제보를 받고 있다.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측은 안 전 지사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의하며 오는 18일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성폭력성차별 끝장집회’를 진행키로 했다. 집회 슬로건은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이다. 이들은 25일 예정된 집회를 앞당겨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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