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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1 (금)

[현장에서] 농협 비과세 줄인다고 예금 급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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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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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을 다해 막아야 한다.”

이개호 신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농협으로서는 준조합원에 대한 예탁, 출자금 비과세 혜택이 폐지되면 운영에 심각한 위해를 입을 수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심각한 위해”라고 판단한 것은 농협·수협 등 상호금융기관이 취급하는 예탁금·출자금 등에 대한 준조합원의 비과세 혜택을 축소하도록 한 세법개정안을 말한다. 현재는 농어민이 아니더라도 출자금(1만원)을 내면 준조합원 자격이 생긴다. 그러면 예탁금 3000만원, 출자금 1000만원에 대한 소득세(14%)를 면제받을 수 있다.

기획재정부는 이 비과세 혜택이 ‘농어민·서민의 재산 형성’이라는 당초 정책 목적에서 벗어나 중산층 절세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보고 있다. 비과세를 없애는 이번 세법개정안으로 기재부는 2869억원의 세수가 확충될 것으로 추정한다. 반면 농협 쪽은 비과세 혜택이 없어지면 예금 10조원 이상이 급감해 농어촌경제가 흔들리고, 새마을금고 회원은 비과세 혜택을 계속 받아 ‘과세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꼼꼼히 따져보면, 농협 쪽 주장은 근거가 취약하다. 첫째, 1976년 처음 도입됐을 때와 달리 준조합원이 조합원(농어민)보다 더 많이 비과세 혜택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 기준 비과세 혜택을 받는 준조합원 예금은 42조4744억원으로, 전체 비과세예금(52조3898억원)의 81%에 달했다. 수협 비과세 예금(5조3558억원)에서 준조합원이 차지하는 비중도 94.6%에 이른다.

둘째, 비과세가 축소되더라도 여전히 다른 시중은행에 견줘 ’저율 과세’이기에 농협 쪽 예금이 급감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 세법개정안을 보면, 준조합원은 내년에 5%, 2020년에 9%의 분리과세를 적용받는다. 여전히 시중은행의 소득세(14%)보다 낮은 수준이다. 셋째, 새마을금고 회원은 의결권 등을 지닌 조직 구성원으로, 농협 등의 준조합원과 법적 지위가 다르다. 농협 준조합원은 고객에 불과한데 지금껏 지나치게 큰 혜택을 받아왔을 뿐이다.

농협·수협 예금에 대한 비과세 제도는 1995년부터 과세가 논의돼왔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과세로 전환하는 ’일몰제’를 이때 도입한 것이다. 하지만 20년 넘게 8차례나 일몰제를 연장하면서, 비과세를 유지하고 있다. 지역구가 농어촌인 국회의원들이 축소·폐지를 반대해왔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국회의원 출신 농림부 장관까지 팔을 걷어붙였다. 수명이 다한 ‘비과세 혜택’이 또 연명하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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