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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 (화)

긴장풀기, 후퇴, 대항, 제압… 상황에 따른 다양한 방어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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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교육] 문샘과 함께 ‘자기방어훈련’

한겨레

공격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기습적으로 일어나기도 하고, 지나칠 수 있는 소소한 것들부터 점점 덩치를 키워나가기도 한다. 이렇다 할 용건이 없는데도 빤히 쳐다보는 사람이 있다. 곧바로 불쾌한 감정이 들 수도 있고, 서서히 긴장이 밀려오고 망설여질 수도 있다.

차분히 호흡한 뒤에 말을 하기로 결정했다. “무슨 할 말이 있어?”라고 물어볼 수도 있고, “그렇게 쳐다보지 마”라고 할 수도 있다. 말의 내용보다는 목소리와 몸짓에서 말의 목적이 드러난다. 연극 대본으로 치자면 대사가 아니라 지문 속에 그 목적이 들어있는 것이다.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의아하다는 듯이, 진지하게, 화를 내며, 재빨리 뒤돌아서서.’

일이 터지고 있는 바로 그때, 우리는 방어행동을 전략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첫째, 긴장을 누그러뜨리기로 한다. 오히려 상대방에게 진정하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이것은 정의롭지 못한 일을 덮어두겠다는 행동이 아니다. 흥분한 공격자와 폭력적으로 변하는 분위기를 통제하는 것이다. 공격자에게 흥분한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때는 협상의 몸짓과 언어를 쓰게 될 것이다.

둘째, 곧바로 물러선 뒤 스스로를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킨다. 위험한 현장을 벗어나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법과 제도를 통해서, 말과 글을 통해서 이 부당함을 다시 한 번 바로 잡을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만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폭력 수위가 높거나 아주 높을 것으로 예상될 때, 상황을 살펴보니 상대적으로 나 자신이 너무나 취약할 때, 맞서기보다는 위험으로부터 떼어놓는 것이 낫다고 판단할 때. 이럴 때 내가 선택한 ’지문’은 무엇이고, 어떤 ’대사’를 내뱉게 될까?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연기를 해보는 것이 좋다.

셋째, 단호하게 주장하고 대항한다. 공격자에게는 상대방이 순순히 끌려오거나 대항하지 못할 것이라는 자기만의 시나리오가 있다. 갈등하고 투쟁하리라 예상하는 상대에게는 공격 행동을 쉽게 하지 못한다. 저항이 있다고 해도 어렵지 않게 억누를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공격한다. 우리는 공격자를 향해 단호하고 엄중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항의하고, 요구하고, 명령할 수 있다.

넷째, 상대방을 제압한다. 도망가거나 다른 사람을 부르거나 경찰을 기다리는, 그 다음 행동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이때 공격자가 몸으로는, 힘으로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도록 막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체적으로 훈련된 제압 기술이 필요하다.

상황에 따라 다른 방어행동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내가 얼마나 고립되었는지, 신체적으로 얼마나 취약한지, 공격자의 폭력성은 얼마나 높은지, 공격자와 나는 어떤 관계인지에 따라. 같은 상황이라 할지라도 ‘긴장 줄이기, 후퇴, 대항, 제압’의 네 가지 방어행동 모두를 연습해볼 수 있다. 어떤 몸짓과 언어를 쓰게 될지, 더 많은 상상이 더 좋은 판단을 가능하게 하고, 경험담을 친구들과 더 많이 나눌수록 더 많은 선택지들이 개발될 수 있다. 우리에게 단 하나의 선택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문미정(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강사,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우리학교) 지은이(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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