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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Why] "北 식당 종업원들을 칼날 위에 세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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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조사는 살인행위" 주장하는 탈북자 지성호씨

조선일보

서울 영등포 사무실에서 만난 지성호 나우(NAUH) 대표. ‘고난의행군’ 때 사고로 왼쪽 다리와 팔을 잃은 그는 2006년 아버지가 만들어준 목발을 짚고 탈북했다. 지 대표는 “성한 팔과 다리로 북한 인권 운동을 한다”고 했다. /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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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3월 7일 함경북도 회령의 한 탄광촌. 북한 당국이 '고난의 행군'이라 부른 대기근으로 식량 배급이 끊긴 지 1년이 넘자 굶어 죽는 사람이 흔했다. 이웃이 죽어도 문상을 가지 않았다. 목숨을 부지하려면 석탄을 훔쳐 팔아야 했다.

열네 살 소년은 그날 밤 어머니, 여동생과 화물열차에 몰래 올라탔다. 석탄을 자루에 담아 뛰어내려야 했다. 소년은 빈혈 때문에 몸을 가누지 못해 정신을 잃고 말았다. 눈을 떴을 땐 왼 무릎과 발목 사이가 잘려 있었다. 출혈을 막으려고 손을 뻗었는데 왼손도 정상이 아니었다. 여동생이 그를 찾아냈지만 해진 솜옷과 목도리를 벗어 상처를 덮어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지성호(36)씨는 "석탄 자루 무게를 아직도 기억한다"고 했다. 팔과 다리를 하나씩 잃은 그는 꽃제비(거지)로 살다가 2006년 목발을 짚고 탈북해 중국, 라오스, 태국을 거쳐 한국에 왔다. 북한 인권 단체 나우(NAUH)를 만든 2010년 이후 중국에서 탈북자 292명을 구출했다.

올해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정 연설에 초대됐던 지씨는 "내게는 아직 성한 팔과 다리가 있다"며 "북한 땅에 자유가 정착되도록 돕는 게 내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2016년 집단 귀순한 북한 식당 여종업원들의 입국 경위를 조사하겠다는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에 대해서는 "살인 행위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인권위 조사가 왜 살인 행위입니까.

"정신적 고통을 생각해보세요. '자유 의사로 왔다'고 하면 북한에 있는 가족이 보복당할 게 뻔합니다. 북송을 바라지도 않을 테고요. 죽고 싶은 심정일 겁니다."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일까요.

"인권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조사하면 안 됩니다. 탈출 과정은 험난해요. 오죽하면 붙잡힐 경우 혀를 깨물거나 극약을 먹고 자살하겠어요. 여종업원 12명은 자유를 찾아온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칼날 위에 다시 세우지 마세요. 지난 정권을 파헤치려는 수단으로 이용하지 말고, 정치적으로 그만 괴롭혔으면 좋겠어요."

―북한 인권을 이야기하기 어려운 시절인데.

"인권 문제는 이념과 무관한데 북한 눈치나 보고 있으니 안타까워요. 활동이 위축된 건 사실입니다."

―가족 모두 무사히 탈북했나요.

"아버지만 빼고요. 탈북하다 두만강에서 체포돼 고문당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목발을 볼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드나요.

"아버지께 미안해요. 아버지가 주고 싶었던 건 목발이 아니라 의족과 의수였을 텐데 못 해주는 마음이 어땠을까. 제가 철이 들었나 봐요. 한 팔과 한 다리가 남아 있다는 것, 일을 할 수 있다는 데 감사해요. "

―꽃제비 무리의 우두머리였다고요?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악에 받친 상태랄까요. 발악을 해서라도 내 위치를 찾으려고 했어요. 동생들이 많을 땐 100명이 넘었지요."

―한국에 들어와 인권 단체를 만들고, 북한으로 라디오 방송을 하고, 중국에서 폭행당하는 탈북 여성들을 구하고 있는데.

"국가가 못 하는 일을 저희가 합니다. 그동안 남한으로 모셔온 탈북자 292명 중 90%는 여성이에요. 그들이 겪은 일을 듣기만 해도 슬퍼요. 인신매매로 끌려 다니다 열여섯 살에 아이를 낳기도 해요. 부모가 안다면 얼마나 가슴이 미어질까요."

―가장 어려운 일이라면.

"선택해야 하는 게 괴로워요. 극한 상황에 처한 탈북 여성이 서너 명 있는데 저희 형편으론 한 명밖에 못 구할 때, 누구를 데려와야 합니까."

―페이스북에 '악이 승리하는 것은 정의로운 이들이 침묵하기 때문'이라는 글을 올렸더군요.

"악이 누구겠어요. 북한이죠."

―가장 좋아하는 단어라면.

"'자유'입니다. 그 짧은 단어에 큰 가치가 담겨 있어요. 국민 모두가 주인이라고 선전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는 자유가 없어 인민이 노예가 됐잖아요. 우리의 행동이 언젠가 북한 주민에게 자유를 찾아줄 거라고 믿습니다."

―북한산 석탄 수입을 정부가 알고도 묵인했다는 의혹이 있는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창피스럽죠. 저는 국민을 조직적으로 속이는 세상이 싫어서 이곳으로 왔거든요.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고 경제력으로 세계 10위권입니다. 정부가 석탄 수입업자 문제로 떠넘기는 것을 보고 소름이 돋았어요. 내가 지금 북한에 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지요. 북한은 화폐개혁이 실패하자 2010년 박남기 노동당 재정부장을 공개 처형했습니다. 화살을 돌리려고 희생양으로 삼은 거예요. 지금 한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옆에서 목발을 들어 올릴 땐 어떤 마음이었나요.

"악이 선을 이길 순 없다고 확신했어요. 북한 당국도 범죄를 은폐하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는 없지요."

―북한에 억류됐다 숨진 오토 웜비어의 부모가 아들의 넥타이를 선물했다고요?

"북한 인권 운동에 헌신해달라는 뜻이었어요. 액자에 넣어 종종 들여다봅니다."

―국민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지지와 동참입니다. 북한 인권은 이념 문제가 아니라 생명에 대한 도리 문제라고 생각해요. 매달 1만원이라도 후원해주시는 분이 늘어나면 더 당당하게 일할 수 있어요. 격려도 되고요."

―'봄이 온다' '가을이 왔다'는 말 실감하나요?

"우리만의 착각 아닐까요. 저는 북한 당국을 신뢰하지 않아요. 김씨 왕조는 70년 동안 인민과 한 약속을 번번이 어겼어요. 그 땅에서 사기꾼이라는 지도자를 대한민국 사람이 어떻게 믿겠습니까. 북한 주민들이 봄이 왔다고 느낀다면 그때가 진정한 봄이겠지요."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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