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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가 부모를 ‘기억’하는 방법…‘니은’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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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사회학자 노명우, 부모님 기억하려

가족들과 연신내에 서점 문열어

“지속가능한 적자 내는 것이 목표”

“사람이 책과 만날 동네서점 더 필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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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 연신내 지하철역에서 8분 정도 걸어가면 주택가 속에 외벽이 청록색으로 칠해진 작은 서점이 나온다. 새 것 냄새가 나는 서점 안으로 들어가면, 사회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세상 물정의 사회학> <인생극장>의 작가인 노명우(52)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가 손님을 맞이 한다. 그는 어쩌다 이런 한적한 곳에 서점을 연 걸까?

이 서점의 이야기는 노 교수의 노부모로부터 시작한다. 노 교수의 아버지 노병욱씨는 지난 2015년 91살, 어머니 김완숙씨는 그다음 해 80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두 부모님의 상을 치를 때 들어온 조의금이 일부 남았다. 함부로 쓸 돈이 아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한동안 힘들었어요. 그러다 깨달았죠. ‘내가 부모님을 잊으려 하니까 힘들구나. 이건 잊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기억해야 할 문제다.’” 지금 없는 사람을 기억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뜻을 이어받는 것이라 생각했다.

어머니는 배움에 대한 열정이 강했던 사람이었다. 1930년대 가난한 집의 7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난 어머니는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의지가 강했고, 자녀 교육에도 헌신적이었다. “어머니는 책값만큼은 아끼지 않으셨어요. 책 외판원들이 우리 집에 오기만 하면 건수를 올렸죠. 제 방은 작은 도서관 같았어요. 어머니는 책이 많은 집이란 걸 자랑하고 싶으셔서, 손님이 오면 슬쩍 제 방문을 열어놓으시곤 했죠.”

그렇다고 장학사업을 하기엔 돈이 충분치 않았다. 일단 ‘레인보우 펀드’란 계좌를 만들었다. 부모님이 젊었을 때 파주에서 미군을 상대로 운영하셨던 ‘레인보우 클럽’의 이름을 따와 붙였다. 노 교수의 형, 누나 그리고 네 명의 조카가 노부모님께 드리던 용돈을 계좌로 계속 넣었다. 4천만원 정도 모였을 때, 서점을 열기로 마음을 모았다. “조카들이 이제 30대가 되어서 각각 교사, 교직원, 자동차 딜러로 직장 생활을 해요. 다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조카들이 책의 세계와 계속 이어질 방법으로 서점을 생각했어요.” 서점을 지역 주민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사회학자의 현장으로 만들면 되겠다는 생각도 했다.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의 소설에 나오는 ‘순수 박물관’처럼, 부모님의 체취가 묻어 있는 물건을 서점 곳곳에 두었다. 서점의 가운데 위치한 서가엔 부모님의 사진 액자가 놓여 있다. 서점 안쪽에 있는 선반엔 부모님이 생전에 쓰시던 찻잔 세트와 수저, 모자, 성경을 진열했다.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아끼던 의자는 창가에 놓았다. “어머니는 책이 많은 곳을 좋아하셨으니, 만약에 영혼이란 게 있어서 여기에 오신다면 참 좋아하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서점의 위치는 서점이 거의 없는 지역이면서, 가족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중간쯤에 위치한 연신내로 정했다. 임대료 싼 곳을 찾다보니 주택가 안쪽으로 들어와야 했다. 서점이 들어온 골목은 노 교수가 중학생 때 학교를 오가던 길이기도 하다. 서점 이름은 노씨 성을 따서 ‘니은서점’으로 정했다. 노 교수는 “원래는 노씨네 서점이라고 하려다가 주변에서 ‘김가네 김밥’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해서, 니은(ㄴ)만 살렸어요”라며 웃으며 말했다.

서점의 대표는 조카 한 명이 맡았고, 노 교수는 ‘북텐더’가 됐다. 책과 바텐더를 합친 말로, 사람들에게 좋은 책을 권하고 손님들이 서점을 편하게 느끼도록 하는 사람이란 의미다. 서점에 비치된 책들은 노 교수가 직접 읽어봐서 권할 수 있는 책들이다. 노 교수가 소장하던 비싼 화보나 책도 서점에 기증해서 오가는 사람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서점은 지난 1일 임시로 오픈한 상태다. 다음 달 1일 정식으로 개점하면,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책모임들도 열 계획이다. 바쁜 직장인들이 읽기 어려운 두꺼운 책을 노 교수가 대신 읽고 정리해주는 ‘벽돌 깨기 마스터클래스’ 같은 모임을 구상 중이다. 노 교수가 가르쳤던 5명의 사회학과 제자들도 지친 직장생활에 활력소를 삼기 위해 ‘북텐더’로 자원해 책모임 진행자로 나서기로 했다.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방송도 할 생각이다.

서점의 목표는 “지속가능한 적자”. 월세 70만원에 전기료 등 운영경비 30만원, 인건비 200만원으로 비용이 300만원 나간다고 치면, 매출은 그의 5배인 1500만원은 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한 달에 20일 문을 여는 서점에서 하루 50권씩 책이 팔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실현 불가능한 수치다. “저는 골프도 안 치고 술도 잘 안 마시니까 한 달에 100만원 정도 제 돈이 들어가는 건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이 공간이 저의 개인 작업실이기도 하니까요.”

그는 동네 구석구석에 있는 서점이 아직 발현되지 못한 책의 가능성을 피우는 모판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 아직 감지되지 않은 지식이나 책을 원하는 수요가 잠재해 있어요. 사람들이 걸어서 갈 수 있는 서점이 없는 지역이 대부분이잖아요. 책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서점이 곳곳에 많아진다면 사람들이 책의 세계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지 않을까요?”

글·사진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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