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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수)

[신형철의 내 인생의 책]②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 손턴 와일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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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의 이유를 묻다

경향신문

‘인생의 책’이라는 장르에 속하는 책들은 우리가 경험하는 상실·고통에 도대체 무슨 이유·의미가 있는지 묻는다. 이런 작품들의 기원에는 <욥기>가 있지만, 오늘은 현대의 고전인 손턴 와일더의 소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1927)를 소개하려 한다. 러셀 뱅크스가 이 소설을 두고 “완벽에 가까운 도덕적 우화”여서 “거의 성서와도 가까운 느낌”을 받는다고 했으니 <욥기>의 대안으로 적절하다. 서른에 펴낸 두 번째 소설로 저자는 퓰리처상을 받았고 한국에도 일찍이 소개됐다. <운명의 다리>, 이호성 역, 신양사, 1958.

1714년 7월20일 페루의 한 다리가 무너지고 다리를 건너던 5명이 죽었다. 신의 섭리인가, 허무한 우연인가. 한 수사(修士)가 죽은 이들의 삶을 조사했다. 그들은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 아니었을뿐더러, 아이러니하게도, 죽고 싶은 슬픔을 각자 이겨내고 다시 살아보자며 다리를 건너다 죽었다. 이게 섭리라면 신은 잔혹하고, 한낱 우연이라면 인생은 무의미하다. 이 소설의 답은 놀랄 만하지 않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이들이 원하는 답은 놀랄 만한 답이 아니라, 당신은 따라 죽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답이다.

뉴욕에서 열린 9·11 테러 추모집회 때 영국 총리 블레어가 이 소설을 낭독했다. 나는 성수대교 붕괴 때는 이 소설을 몰랐고 세월호 참사 때는 알았다. 2014년 이후로 나는 우리가 ‘신을 용서하지 않는 용기’를 잃지 않기 위해 어떤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지 고민한다. 그런 마음으로 얼마 전에는 내가 갖고 있는 2010년판 대신, 바스러질 듯한 1958년판을 도서관 보존서고에서 꺼내 봤다. 한국전쟁 때 가족과 친구를 잃은 이들도 제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이 책에 매달렸으리라. 인생은 변하지 않는다, 비극적인 부분일수록 더.

<신형철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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