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1 (화)

워킹맘이라서 미안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첫째가 세 돌이 될 때까지 워킹맘이었던 나는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초보엄마 잡학사전-55] "항상 못 가서 죄송하고 속상하고 감사드립니다." 첫째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 물놀이장에 가는데, 한 엄마가 일하느라 봉사활동에 참여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다. 어린이집 같은 반 엄마들이 모인 채팅방에는 며칠 전부터 봉사 참여 독촉 문자가 계속 올라왔다. 세 번째 물놀이인 만큼 그동안 봉사하지 않았던 엄마들이 참여하라는 것이다. 10여 명의 아이를 교사 둘이 보기엔 힘들다는 것이다. 교사는 아무 말이 없는데 목소리 큰 엄마가 주도하고 나섰다.

계속 독촉 문자가 오니 불편했다. 휴가 중이라서, 아이 손에 상처가 심해서 등 사정상 나도 불참했기 때문이다. 워킹맘인 그 엄마는 얼마나 불편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틀림없이 지난 주말, 남편에게 휴가 낼 수 없느냐고 물어봤을 테고 본인의 남은 연차도 계산해봤을 것이다. 여름휴가에 이어 하루 더 쉰다고 하기엔 회사에 눈치가 보였을 것이다. 출근길에도, 출근해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고르고 고른 말을 채팅방에 적고 나서도 마음 한 구석이 답답했으리라.

첫째가 세 돌이 될 때까지 워킹맘이었던 나도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어린이집 행사가 있어도 불참하기 일쑤였고, 미안한 마음은 스승의 날이나 명절 선물로 때웠다. 선물은 아이나 교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나를 위한 것이었다. 아이를 위해 나도 어린이집에 무언가를 해야 위안이 됐기 때문이다. 같은 반 엄마들과 교류가 없어 시시콜콜 어린이집 이야기를 듣지 않아 스트레스가 덜했는지도 모르겠다.

휴직 중인 요즘은 어린이집 행사에 가급적 참여한다. 그동안 못했던 엄마 노릇을 하려는 것이기도 하고, 복직 후에 하지 못할 것들을 미리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 번은 부모가 특별활동 수업을 참관했는데, 수업이 시작되자 한 아이가 서럽게 울었다. 밝고 활달한 남자아이였는데 자기 엄마만 오지 않자 설움이 복받쳐 오른 모양이다. 교사가 달래 겨우 안정을 되찾았지만 다른 수업이 시작되자 또 서럽게 울었다. 내가 참석하지 못했던 수많은 어린이집 행사에서 우리 아이도 저렇게 서럽게 울었을 것 같아 속상했다.

어린이집 앞에서 아이의 엄마를 우연히 만나 그날 있었던 일을 얘기해주었다. 괜한 얘기인 줄 알면서도, 누군가 내게 저런 얘기라도 해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앞섰다. 엄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평소 밝고 의젓한 아이이기에 그런 일로 울 줄은 몰랐다고 했다. 학부모 참관 수업을 가볍게 생각했다며 얘기해주어 고맙다고 했다. 다음 학부모 참여 수업 때 아이의 엄마는 시간을 내 참석했다.

"저를 포함해 여력 되는 분들이 도와드리면 되니 괘념하지 마세요." 평소와 달리 내가 나서서 채팅방에 글을 남겼다. 어린이집 행사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해서 다른 엄마들에게 미안해할 필요 없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 시간이 허락한 사람만 참석하면 될 일이다. 복직해서 내가 이런저런 행사에 참석하지 못할 때 누군가 내게 해주면 큰 위로가 될 것 같은 말이기도 했다. 뒷정리를 도와주려고 어린이집에 가보니 아이들은 씩씩하게 수영하고 잘 씻고 점심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권한울 프리미엄부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