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형 여신금융협회장(맨 왼쪽)이 지난 29일 일부 중소가맹점의 카드 수수료율 인상을 유예하는 내용의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
지난 1년간 연매출 2억원을 기록했던 한 음식점은 현재 연간 300만원의 카드 수수료를 지불하고 있다. 하지만 이 음식점의 연매출이 1원 오른다고 가정하면 카드사에 지불해야 하는 연간 수수료는 최대 540만원으로 불어난다. 이른바 '문턱효과'다. 음식점으로서는 황당한 일이지만 시장가격을 정부가 정하도록 한 현행법의 부작용이다.
3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오는 12월22일부터 카드 수수료가 인상되는 일부 중소가맹점을 중심으로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카드사들이 이들 중소가맹점에 대해 인상 시점을 유예해주겠다고 밝혔지만, 불만은 가시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인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도 이들의 목소리에 동참하는 분위기다.
갈등의 빌미는 국회가 제공했다. 국회는 지난 2월 영세가맹점의 우대수수료율을 적용하는 내용의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우대수수료율을 금융위원회가 정하도록 규정했다. 당시 김석동 금융위원장도 "정부가 가격을 정하는 최초의 사례이고 헌법과도 정면으로 대치된다"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4월 총선을 앞둔 정치권 입장에서는 표심의 향방을 좌우할 시장상권을 무시할 수 없었다. '표풀리즘'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전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유다. 결국 금융위는 영세가맹점의 우대수수료율을 법에 명문화했다. 카드업계는 지난 9월부터 우대수수료율 1.5%를 적용하고 있다. 영세가맹점의 기준은 연매출 2억원 이하로 정해졌다.
하지만 시장가격을 법에 명시한 이 규정은 당초부터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특히 영세가맹점의 기준이 논란의 대상이었다. '합리적이고 공정한' 방법에 의해 정해졌다고 하지만 문턱효과는 불가피했다. 연매출이 2억원인 가맹점은 이 근거가 공정하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연매출이 2억원을 갓 넘긴 가맹점은 불공정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부작용은 현실화되고 있다. 카드업계는 과거에도 관련법과 상관없이 자율적으로 연매출 2억원 이하인 가맹점에 대해 우대수수료율 1.8%를 적용했다. 여기에 포함된 가맹점 중 7~8만여곳은 최근 연매출이 2억원을 넘어섰다. 더이상 우대수수료율을 적용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수수료 상한선인 2.7%까지 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이들 가맹점 중 대다수는 음식점, 슈퍼마켓 등 중소가맹점이었다. 외식업중앙회에 따르면 42만 회원사 기준 15~20%는 수수료 인상을 통보받았다. 실제로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 족발집(연매출 2억3000만원)은 지금까지 1.8%의 수수료를 냈지만 이번에 최대 2.7%의 수수료 인상을 통보받았다. 연매출이 최근 2억원을 넘었다는 이유에서다.
반발이 심해지자 카드업계도 지난 29일 이들 중소가맹점에 대해 수수료 인상을 유예해주겠다고 밝혔다. 이두형 여신금융협회장은 "유예기간이 1년은 넘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갈등은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내년에도 비슷한 문턱효과의 피해를 보는 가맹점들이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금융당국과 카드업계가 줄곧 내세웠던 수수료 체계의 기준도 흐려졌다는 평가다. 스스로 원칙을 깬 것으로, 앞으로 가맹점들의 예외조건 허용 요구는 가속화될 전망이다. 아울러 이번에 수수료율이 인상되는 대형가맹점도 비슷한 요구를 해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명식 한국신용카드학회장은 "영세가맹점의 기준에 자의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개정된 수수료 체계에서는 이런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정부는 정책방향을 집행할 수 있는 여건 등과 함께 큰 테두리에서만 가격결정을 해주고, 나머지는 시장에서 작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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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수기자 gustn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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