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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이동혁의 풀꽃나무이야기] 미루나무와 양버들을 잘 비교할 수 있는 선유도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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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양화대교 아래, 서울시 영등포구에 속해 있는 선유도공원은 낭만적인 자연학습장입니다. 연인들이 선호하는 데이트 장소이자 자연을 공부하는 학습장으로 인기가 높습니다. 코스프레하는 청소년들, 웨딩사진 찍는 예비 부부들, 가족 단위로 놀러온 사람들, 사랑에 빠진 연인들, 약간 적절치 못한 사랑에 빠진 커플들까지 이용객은 참 다양합니다.

외관은 ‘더 록(The Rock)’이라 불리는 감옥 ‘알카트라즈’를 연상시키지만 6시부터 24시까지 출입은 자유로운 편입니다. 발 없는 식물만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 감옥 아닌 감옥에 수감된 식물들이 어느덧 숲을 이뤄 공원의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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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트라즈를 연상시키는 선유도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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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가 처음부터 공원이었던 건 아닙니다. 옛날에는 선유봉이라는 약 40미터 높이의 작은 언덕이었다고 합니다. 한강 일대의 빼어난 풍광을 바라보는 경승지로, 겸재 정선의 ‘경교명승첩’에도 나옵니다.

선유봉의 운명은 1920년대의 대홍수를 계기로 바뀌게 됩니다. 홍수 예방 목적으로 제방을 쌓고 여의도 비행장을 만들기 위해 골재를 채취하면서 봉우리는 사라졌습니다. 자이언티가 부른 양화대교가 1965년에 놓이고, 1968년 제1차 한강개발사업이 이뤄지면서 콘크리트 옹벽에 싸인 섬이 됐습니다.

1978년부터는 영등포 공단 지역에 식수를 공급하기 위한 정수장이 건설되면서 23년 동안 금단의 영역으로 존재했습니다. 그 후 한강 하류의 오염으로 식수원 사용이 어려워지자 서울시에서 164억 원을 들여 공원으로 조성해 2002년 4월 26일에 개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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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기둥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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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정수장 시설을 허물지 않고 살려서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환경재생 생태공원의 탄생이었습니다. 그 점을 높이 평가받아 2011년에 건축가들이 뽑은 한국의 대표건축물 베스트 1위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선정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녹색기둥의 정원’을 꼽습니다. 이곳은 정수지의 콘크리트 상판 지붕을 들어내고 기둥만 남은 공간에 덩굴성 나무를 감아올려 색다른 느낌의 공간으로 연출했습니다. 무슨 나무를 올렸나 하고 살펴보면 담쟁이덩굴과 줄사철나무가 눈에 들어옵니다. 더 올라갈 곳이 없는 터라 제 몸이라도 휘어 감으며 몸집을 불려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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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교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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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 선유도공원에 수감된 식물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입니다. 선유교에서 바라다 보이는 양버들만 해도 그렇습니다. 선유교는 469미터 길이의 보행자 전용 다리로, 밤에는 형형색색의 야간조명으로 아름답게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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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교에서 바라본 성산대교 쪽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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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교에서는 성산대교, 월드컵분수, 월드컵공원 등 한강 주변의 탁 트인 경치를 감상할 수 있고, 뭘 하는 곳인지 잘 모르겠는 국회 건물도 조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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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쪽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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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버들은 전망대 주변에 심겨져 있습니다. 빗자루 모양의 수형을 가진 양버들을 가리켜 이용객들은 대개 미루나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건 양버들입니다. 미루나무는 전망대에서 우측 계단으로 내려간 지점에 줄지어 서 있습니다.

미루나무는 가지가 사방으로 퍼져 자라고, 잎이 가로보다 세로가 긴 점이 특징입니다. 그에 비해 양버들은 빗자루 모양의 수형으로 자라고, 잎의 가로길이와 세로길이가 비슷합니다. 그런 차이점이 인터넷의 여러 콘텐츠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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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자루 모양으로 자라는 양버들(전망대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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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용은 맞는데 틀린 사진을 제시한 곳이 많습니다. 대개 빗자루 모양의 양버들 사진을 미루나무 사진으로 제시합니다. 미루나무와 양버들의 혼동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모르겠으나 우리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 동요 ‘흰구름’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듯합니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 걸려 있네~’ 하는 그 동요 말입니다. 아마 이 동요에 나오는 나무도 미루나무가 아니라 양버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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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우측 계단 아래쪽의 미루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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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나무는 원래 미류(美柳)나무였습니다. 미국에서 들여온 버드나무라는 의미로, 참 아름다운 어감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옛 국어학자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이중모음 ‘ㅠ’ 대신 단모음 ‘ㅜ’로 바꾼 미루나무를 표준어로 삼아버렸습니다.

아, 그건 정말 만행 수준의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미루나무를 발음하다 보면 옛 국어학자들의 무딘 감수성을 자꾸만 성토하고 싶어집니다.

만행 하면 떠오르는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에도 미루나무가 등장합니다. 15m 높이의 미루나무 절단을 두고 일어난 무자비한 사건 말입니다. 사건의 전말이야 어찌됐든 혹시 그 나무도 미루나무가 아니라 양버들인 걸 아닐까 하고 궁금해하는 게 식물 하는 사람의 호기심입니다.

사건 현장의 사진에서 답은 금방 얻어집니다. 문제의 그 나무는 빗자루가 아니라 옆으로 퍼진 형태의 나무이고 조각구름이 걸려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미루나무가 확실합니다. 이 시절까지는 미루나무와 양버들의 구분을 잘 했던 모양입니다.

이때는 양버들이나 미루나무가 많이 심어지던 시기였습니다. 선유도에 정수장이 신설되던 해가 1978년이니 미루나무와 양버들이 심겨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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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왼쪽)와 메타세쿼이아(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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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에는 낙우송과 메타세쿼이아도 비교하기 좋게 가까이에 심어놓았습니다. 자작나무와 메타세쿼이아를 나란히 세워놓은 길도 있습니다. 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조성된 메타세쿼이아 길을 연상시킨다는 지적도 있지만 사색의 공간으로 안성맞춤입니다.

유리온실의 바깥 면에는 멀꿀이 덩굴져 자랍니다. 멀꿀은 남부지방에서 자라는 식물이지만 남부지방 못지않게 더운 서울에서도 잘 살아갑니다. 이곳에서 멀꿀의 열매를 따먹으려다 관리자께 걸려서 혼났다는 어느 분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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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꿀의 열매(아직 덜 익은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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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종인 으름덩굴의 열매가 잘 떨어지는 것과 달리 멀꿀은 열매가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산으로 점점 세게 쳐대다가 유리면을 탁탁 치는 바람에 걸렸다고 합니다. 훔친 멀꿀이 더 달기야 하겠지만 망신살이 뻗칠 수도 있으니 삼가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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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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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찾은 선유도공원은 너무나도 덥고 한적했습니다. 나무가 제법 크고 한강의 바람이 불어 시원할 것 같지만 타는 듯한 더위 속에 더 많은 그늘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15㎝의 얕은 물속에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환경물놀이터에는 이제 아무도 발 담그지 않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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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빗물 방류 밸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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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 노니는 봉우리였다가 정수장이 들어선 시멘트섬으로, 그러다 큰 나무 울창한 숲의 공원으로 변신한 선유도. 여기서 세월이 더 흐르면 어떻게 변할까요. 오래되고 낡았다 해도 버리거나 훼손하지 않고 자연과 그대로 어우러지게 한 선유도는 앞으로도 계속 공원의 기능을 이어가게 될까요.

설치미술 작품처럼 놓인 ‘빗물 방류 밸브’가 그러하듯 과거의 녹슨 기억을 떠올리며 이랬는데 저랬는데 하고 있을 우리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이동혁 풀꽃나무칼럼니스트(freebowl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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