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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토)

"한국 못간다" 스웨덴 아내 '폭탄선언' 이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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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으로] 스웨덴 교육전문가 황선준 박사 부부

‘호랑이 엄마’ 시대 끝나 … 아이와 저녁 함께하는 ‘북유럽 아빠’ 돼야

레나(Lena·50)의 성은 황. 스웨덴 스톡홀름 근교 머르비 중학교 상담교사다. 남편은 황선준(55) 서울시 교육연구정보원장. 그가 스웨덴 국립교육청 국장으로 일하다 지난해 한국에 와 서울시교육청 소속 기관장이 되면서 부부는 1년 가까이 떨어져 있었다. 레나는 지난 8월 학교를 휴직하고 남편을 만나러 한국에 왔다. 지금은 남편과 서울 관사에서 같이 산다.

“여전히 사랑하오.” 스웨덴 교육전문가 황선준 서울시 교육연구정보원장이 늦가을 서울 남산에서 아내 레나를 꼭 안아주고 있다. 부부의 연을 맺게 된 1990년 이후 지금까지도 집안일을 나눠 할 정도로 평등을 실천하는 북유럽 스타일이다. [신인섭 기자]


 “어찌된 건지 (한국 부모들이) 아이들을 공부에 내몰고 다그치는 게 이전에 한국에 왔을 때보다 더 심해진 것 같아요. 남편 주변 분들 얘길 듣고 직접 눈으로 보니까요.”

 레나는 현직 상담교사로서 한국에서 접한 아이들의 고민을 남 얘기처럼 듣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공부, 공부하다 보면 아이들이 나중엔 어떤 사람이 될까요. 이들이 부모가 되면 똑같이 자녀를 다그치겠죠”라며 한숨을 쉬었다.

 스웨덴 교육전문가로 서울에서 교육공무원으로 지내는 남편 황 원장도 아내 레나와 생각이 같았다. 황 원장은 스웨덴에서 27년을 살았다. 외모는 경상도 남자지만 아내가 임신했을 때 아내의 속옷을 빨았을 정도로 ‘속은 꽉 찬’ 스웨덴 남자다. 레나도 “남편 친구들은 ‘경상도 남자라 권위적일 것’이라 말하지만 남편은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요즘 스칸디 대디(북유럽 아빠)가 뜨고 있다. 스칸디 대디는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같이 체험하며 그들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자상한 아빠, 아내를 동등하게 대하고 집안일을 나눠 하는 평등한 남편이다. 엄격한 자녀 훈육법으로 아이를 들들 볶는 타이거 맘의 시대는 갔고 이제는 스칸디 대디가 전 세계의 롤 모델이 되고 있다는 게 지난 3월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의 보도였다.

 이 때문에 요즘 한국 학부모들도 스칸디 대디의 강연을 듣기 위해 많이 찾아온다. 그래서 그의 얘기에 끄덕끄덕한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긴 의외로 쉽지 않다. 그가 최근 낸 책 『금발 여자 경상도 남자』(한언 간)에서도 우리의 척박한 현실에선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하지만 지극히 당연한 제안을 했다.

 “200여 명이 모인 학부모 강연에서 ‘가족이 저녁 같이하는 분 손 들어 보세요’라고 물었더니 단 두 명이 손을 들었어요. 우리 가정에 있는 아빠를 볼까요. 거의 매일 저녁은 밖에서 먹죠. 비즈니스다, 일이다 뭐다 해서 소주 마시고, 아이들과 함께하지 않아요. 이렇게 해서 어떻게 아이와 소통하고 아이와 교감하나요. 이건 가정을 파괴하는 행위예요.”

 아이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알려면 소통이 우선인데 멀리 떨어진 아빠, 사교육으로 내모는 엄마로 인해 그런 소통은 아예 단절됐다. 학교폭력으로 고민하다 자살한 학생의 부모가 “우리 아이가 평소엔 아무렇지 않았고, 그런 고민을 하는지 몰랐다”고 말할 정도로 우린 소통 단절의 시대에 산다.

 황 원장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긴급한 어젠다는 바로 ‘함께하는 저녁’일 것”이라며 “이런 기본적인 것조차 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을 어떻게 이해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스웨덴 솔레렌 섬에서의 야외 결혼식. 아내 레나는 외할머니가 지어준 드레스를, 황 원장은 흰색 한복 저고리와 바지에 까만 두루마기를 입었다.


 스웨덴 등 북유럽에선 여름을 제외하고 대체로 해가 일찍 진다. 그러니 퇴근시간이 이르다. 오후 5시쯤이면 온 가족이 모여 같이 식사를 하고 TV를 시청하거나 책을 읽는 게 일상이다.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던 손학규 후보가 제안한 ‘저녁 있는 삶’은 그들에게 당연한 삶이다. 주말엔 같이 연극을 보거나 박물관에 가고 스키를 타는 등 스포츠 활동을 하는 게 당연한 삶이다. 주말마저 가족을 위해 쓰지 않고 골프채를 들고 나가는 삶, 아이들 노는 거 못 봐 차라리 학원에 가라며 등 떠미는 삶이 우리의 삶이다. 그는 여기에 한술 더 떠 “저녁을 같이하면서 잔소리는 그만하고 아이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니 그의 제안을 실천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나는 남보다 나아야 하고, 내 자식은 반드시 그래야 하는 강박관념 같은 경쟁의식. 이것이 한국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나라를 단시간에 세계 중심의 국가로 키우는 데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부부는 이런 환경의 한국에서 아이들(2남1녀)을 키우는 걸 애당초 포기했다.

 1985년 스웨덴에 국비 장학생으로 유학한 황 원장은 레나와 4년여의 동거(북유럽에서 동거는 흔하다) 후 90년 결혼했다. 스톡홀름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94년 아내와 함께 귀국할 준비를 할 때였다. 한국에서 대학강사 자리도 구한 상태였다. 레나는 한국에 와서 시댁 친지들, 남편 친구와 선후배들을 만난 뒤 다시 스웨덴으로 돌아가 폭탄선언을 했다. “한국엔 못 간다”는 것이었다. 시부모님께 한국에 가겠다고 해 놓고서 스웨덴에 오니 딴소리를 하는 아내가 황당하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레나는 그때 남편에게 이렇게 물었다.

 “시동생 사는 아파트에 방문했을 때 차를 어디에 주차했는지 기억나요?”

 “아파트 왼쪽이었던가?”

 “그러면 아이들 놀이터는 어디에 있었죠?”

 “…(갑자기 뭔 소리야).”

 “주차장은 아파트 앞의 양지였고, 놀이터는 북쪽 아파트 뒤의 응달이었어요. 1월의 추운 날씨에서 아이들은 응달을 견디지 못해 10분 만에 놀이터에서 집으로 돌아왔죠. 이 아파트를 설계한 사람은 분명 남자였을 것이고, 이렇게 설계를 해도 누구 하나 잘못을 지적하지 않았을 거예요. 이런 곳에서 어떻게 아이를 키우나요.”

 뭐라고 항변하려는 황 원장에게 레나는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우리 아이들이 한국에 갔을 때 사촌들이 다 학원에 가고 과외받느라 같이 놀지도 못했잖아요. 당신의 아는 분은 아이가 정해진 공부를 안 했다고 허리띠로 때리려 했다는 얘기도 했었죠. 그런 환경에서 우리 애들이 자라기를 바라나요?”

 황 원장은 말문이 막혔다고 했다. 그는 “솔직히 한국에 가면 스웨덴에서처럼 아내와 평등하게 살고 아이들에게 과외니 뭐니 하면서 스트레스 안 주고 살 자신이 없었다”며 “그 자리에서 아내에게 (한국으로) 안 가겠다고 선언했다”고 말했다. (현재 큰아이 요하네스는 스웨덴에서 고교를 마친 뒤 한국에 유학해 내년 2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둘째는 스톡홀름 왕립공대에 다니며, 막내딸은 전주 우석대에서 어학연수를 받고 있다.)

 부부는 “94년보다 지금 상황이 더 안 좋아졌다”고 걱정했다. 경쟁의 강도는 더 세졌고, 공부하라는 부모의 다그침은 더 심해졌다고 했다. 그 사이 한국은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는 핀란드와 함께 세계 1~2위를 다투게 됐지만 청소년들의 행복감과 자존감은 바닥 수준이 됐다. 어느새 우리는 청소년 자살률 1위란 오명을 쓰게 됐다.

 과연 남과의 협력 없는 치열한 경쟁의식은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을까. 황 원장은 “더 이상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선진국을 열심히 쫓아가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단계라면 이런 치열한 경쟁의식이 어느 정도 필요하겠지만 이젠 그런 단계를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웨덴에서는 유아 시절부터 협력을 통해 동료 효과(peer effect)를 끌어내도록 가르칩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아는 것과 동료들이 아는 것을 합치면 훨씬 좋은 결과를 내는데 우리는 어려서부터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것만 알게 하죠.”

 스웨덴 등 북구 교육과 우리의 가장 큰 차이는 협력이냐, 경쟁이냐의 차이라고 황 원장은 설명했다. 그는 “지식 위주 교육과 경쟁은 학업 능력만을 최고의 재능으로 인정할 뿐 다른 모든 것은 무시해 버린다”며 “이렇게 되면 소수만 빼고 대다수가 낙오할 수밖에 없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부모의 기대와 아이들의 목표는 좋은 대학 가서 의사나 변호사가 되는 데 집중돼 있다. 그런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낙오자가 된 양 생각하는 아이들은 다른 재능을 발견할 기회조차 없다.

 황 원장은 “이젠 성적으로 그만 걸러내자”고 말했다. 성적으로 대다수를 걸러내는 일을 그만하고 학생들의 취미·적성·재능에 맞는 예체능이나 실습, 기술교육 등으로 탈출구를 만들어 주자는 제안이었다. “고교만 졸업해도 손가락질받지 않고 사는 사회, 열심히 일하면서 언제나 가정을 최우선하는 사회, 청소부라도 멸시하지 않으며 열심히 사는 것을 존중하는 사회. 그런 북유럽 스타일의 사회는 만들 수 없을까요.”

 한국과 북유럽 사이 거리만큼 그가 지향하는 사회는 지금의 교육 풍토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타이거 맘=에이미 추아 예일대 교수가 2011년 쓴 책 『타이거 마더』(원제 Battle Hymn of the Tiger Mother)에 나온 호랑이처럼 무섭고 냉엄한 엄마를 일컫는 말. 아이에 대한 엄한 통제와 관리를 강조하는 교육법을 의미한다. 실제로 에이미 교수는 두 딸을 혹독하게 조련해 ‘엄친딸’로 키웠다.

◆스칸디 대디=스칸디나비아 반도 북유럽 스타일의 가정 중심 아빠 . 이곳 아빠들은 가정에서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아이들과 함께하는 체험을 강조한다. 저녁식사는 꼭 가족과 함께하고 주말엔 아이들과 야외에 나가거나 공연을 보고 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낸다.

강홍준.신인섭 기자 kanghj@joongang.co.kr
▶강홍준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goodfore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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