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8 (토)

시민은 신뢰, 국가기관은 불신... 우리 헌법의 이중성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마석우 변호사의 법률 이야기-68] 헌법전을 펼치면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으로 시작되는 전문과 10개의 장, 부칙이 있다.

제1장이 총강이고 제2장이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조항을 담고 있다. 제3장부터 제8장까지는 차례로 국회, 정부(행정부), 법원에 관한 규정이다. 이어서 헌법재판소, 선거관리, 지방자치에 관한 사항을 담고 있다. 특이하게 별개의 독립적인 장으로 경제에 관한 장을 9번째 장에 담고 있다. 마지막 장에는 헌법 개정에 관한 사항을 담고 있다.

전문에서 밝히고 있듯 헌법을 대한의 국민이 주인이 돼 제정하고 개정한 것이기에, 또 제1조에서 천명하듯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고 그 주권이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의 원천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에 헌법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제2장 국민의 권리의 의무에 관한 장이다. 인권과 기본권에 관한 사항을 여기에 담고 있다. 그다음이 국회, 정부, 법원 소위 3개 국가권력의 구성과 운영 원리를 담은 장, 국가권력에 관한 장이 그다음이 될 것이다. 시민이 국가권력에 대해 가지는 기본적인 권리, 기본권에 관한 사항과 국가권력에 관한 사항으로 헌법이 구성되어 있다고 보면 되겠다.

그런데 헌법상 기본권에 관한 파트와 국가권력에 관한 파트는 서로 상반되는 원리로 구성돼 있다. 가령 기본권 영역에 관한 한 그 적용의 대상이 되는 시민에 대해 헌법이 "최대한의 신뢰"를 전제로 규정하고 있다면, 국가권력의 영역에 관한 한 그 적용의 대상이 되는 국회, 대통령과 행정부를 포함한 정부, 법원에 대해 "불신, 그것도 최대한의 불신"을 전제하여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헌법은 기본권을 일일이 나열하기 전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고 선언한다. 그 존엄한 존재로서의 정당성이 다른 곳에 있지 않고 아니 정당성을 문제 삼을 필요도 없이 인간으로 태어나기만 하면 존엄함과 가치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반면 국회는 국회의원으로 구성되는데 그 국회의원은 국민의 선거에 의하여 선출되어야 하고 행정부의 수반, 대통령도 선거에 의하여 선출되어야 한다. 법원의 구성원인 법관들은 비록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것은 아니지만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 스스로가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신임을 얻어야만 존립의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시민은 인격의 주체로서 법이 특별히 금지하지 않는 한 자신이 결정한 모든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는 반면에 국가권력은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으로 쪼개어져 서로 조직과 운영원리를 달리하는 국회, 행정부, 법원의 각기 다른 조직에 기능이 맡겨져 있다. "권력이 하나의 기관에 쏠리면 쏠릴수록 더욱 부패한다"는 불신의 원리가 우리 헌법에 채택된 까닭이다. 헌법은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 기관들이 자기에게 맡겨진 권한을 행사하여 상호 견제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입법권과 예산권을 가진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하고, 수사권 등을 가진 행정부처가 국회를 견제하고 있는 게 대표적인 예다. 법원 역시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서 벗어나 특별한 기관이 될 수는 없다.

국가권력 불신의 원리에 입각하여 권력을 분립시키고 상호 견제하게 함으로써 균형을 갖추도록만 한 게 아니다. 모든 국가권력의 행사 과정은 원칙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국회의 회의는 공개해야 하고 재판 역시 공개해야 한다는 것은 헌법에 나와 있다. 모든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의 정보는 정보공개법에 따라 공개함이 원칙이다. 투명해야만 부패가 없고 헌법과 법률에 따라 권력이 행사될 수 있다. 섣부른 신뢰로 그냥 어둠 속에 놔두었다가는 언젠가는 반드시 부패하는 게 권력의 속성이다. 부패한 권력은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위협하는 괴물로 성장한다.

시민에게 프라이버시권을 인정하여 사적 영역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하는 것과는 반대다. 한마디로 "행정은 투명해야 하고 인격은 불투명해야 한다."

헌법은 시민들에게 국가권력을 믿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최대한 불신하라는 것이 헌법의 명령이다. 오죽하면 다른 국가기관에게 견제하도로 부추기면서도 이마저도 믿지 못해 그 하는 일을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모두 공개하도록 할까? 주권자가 맡긴 나랏일을 제대로 하는지, 세금으로 낸 돈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 안심하지 못하고 끝까지 감시하겠다는 말이다. 이쯤해서 다음의 말을 들어보자.

"대법원의 재판은 정말 순수하고 신성한 것입니다. 그걸 함부로 폄하하는 걸 저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혹시 국민 여러분께서 이번 일에서 대법원 재판에 의구심을 품으셨다면, 그런 의구심은 거두어 주실 것을 앙망합니다."

나는 믿는다. 그분 말씀처럼 "법원이란 조직은 그래도 우리 사회에서 가장 건전한 조직"이라고, 또 "이 조직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지 않아야 우리 사회가 발전하고 잘 유지되리라"고 항상 생각한다. 재판과 재판이 이루어지는 법원에 대해 국민의 신뢰가 쌓여야만 우리 사회의 발전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 존립의 근거가 마련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헌법은 그렇게 믿고 있거나 그렇게 알고 있지 않다.

[마석우 변호사]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