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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김지석의 화·들·짝] 이주민 문제(하), 어떻게 풀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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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슬람권과 서구 기독교권의 갈등이 아니라 서구의 자의적인 개입이 가장 큰 문제인 만큼, 해법 또한 서구의 전향적인 태도에서 나와야 한다. 중동·아프리카 지역 출신 이주민의 규모를 줄이려면, 유럽 나라들이 이 지역의 평화와 자율적인 발전을 뒷받침하는 쪽으로 일관성 있는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난민으로 인정받기는 몹시 어렵다. 1994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3만2733명이 신청해 겨우 792명(2.4%)이 난민 지위를 얻었다. 이주민은 아무 데나 옮겨 다니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다. 진지하게 새 삶을 모색하는 이들이며, 상당한 규모의 이동이라면 반드시 역사적·정치적 이유가 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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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 특히 난민 문제를 풀기 위한 가장 큰 전제는 역사적·정치적 책임을 갖는 나라의 적극적 태도다. 이주민을 적대시하고 국경 봉쇄에만 치중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해답이 나올 수 없다.

■ 해법과 관련해 반드시 되새겨봐야 할 사실이 있다. 이주가 이뤄지는 많은 경우, 이주민은 물론이고 이들을 받아들인 나라와 보낸 나라 모두에 이익이 된다는 점이다. 이주는 지구촌의 다양성을 높이며, 무엇보다 경제에서 뚜렷한 효과를 낳는다.

이주민 본인이 혜택을 보는 것은 분명하다. 잘 준비된 이주라면 좀 더 수준 높은 삶의 기회를 얻을 수 있고, 난민의 경우 생존권을 확보해 새 삶을 찾을 수 있다. 난민 구제는 인도주의 원칙에 부합하며, 이동의 자유는 인류가 추구해야 할 기본적인 권리이기도 하다.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정착국은 새로운 노동력을 흡수해 경제에 활력을 더할 수 있다. 이주민은 대개 정착국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을 하게 된다. 이들이 새 일자리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현지인보다 크다. 이주 자체가 큰 도전인데다 이주 뒤에도 도전 동기가 강하기 때문이다. 이주민은 자신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국제 교역과 투자를 늘리는 데도 기여한다. 많은 이주민이 정착하기를 바라는 선진국은 갈수록 젊은 노동력이 부족해지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주민의 출신국 또한 그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는다. 이주민이 본국의 가족·친척에게 보내는 돈이 그 가운데 하나다. 해외 노동자가 많은 필리핀, 모로코, 멕시코, 아이티 등은 해외 송금이 없다면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정도다. 이주민 송금액이 모두 선진국에서 개도국으로 향하는 것은 아니다. 개도국에서 다른 개도국으로 가는 돈이 전체의 4분의 1가량 된다.

■ 하지만 이주의 효과가 잘 나타나려면 이주민들이 정착국에 통합돼야 한다. 이와 관련해 크게 세가지 범주의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

우선 질서 있는 이주가 아니라 본국의 혼란을 피해 대량 이주가 일어나는 경우다. ‘난민 위기’가 이에 해당한다. 현재 뉴스의 초점이 되는 유럽 나라들의 경우 해마다 수십만명의 이주민을 받아들일 충분한 역량이 있다. 그렇더라도 당사자와 정착국 모두 제대로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제한된 통로로 한꺼번에 이주민이 몰릴 경우 여러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대규모 이주는 정착국의 국민 정체성과 정치제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 근대 이후 보편화한 국민국가는 ‘국민에게 충성을 요구하는 권력을 가진 법적·정치적 조직’이다. 따라서 국민됨에 어울리는 문화적 귀속과 정치적 정체성을 중시한다. 국민국가와 그 구성원들은 상황이 달라질 때마다 ‘누가 국민인가’를 끊임없이 묻게 되며, 그 사회에 새로 편입된 사람에게는 이 물음이 더 가혹하기가 쉽다. 유럽에서 이슬람계 주민들의 종교적 관례와 복장 등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 불거지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게다가 9·11 동시테러 이후 미국이 주도한 테러와의 전쟁과 맞물려 국제 이주와 안보의 연관성을 따지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 배경에는 서구의 개입이 일상적인 중동·북아프리카의 이슬람권이 최대 난민 배출 지역이기도 한 현실이 있다. 극소수이긴 하지만 오래전부터 유럽에 정착한 이슬람계 주민 가운데 일부가 테러에 동참한 일도 사태를 복잡하게 한다. 어느 사회를 보더라도 이주민의 범죄율은 통상 현지인보다 낮지만, 이주민의 개별 범죄 사례를 부각해 안보(안전) 문제로 비약시키는 경우가 되풀이된다.

유럽에서는 이 세 범주의 문제가 뒤엉키면서 반난민을 앞세운 극우세력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의 경우도 비슷하지만 난민보다 이주민 전체를 문제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 이 가운데 안보 문제는 중동·아프리카와 서구의 오랜 역사와 정치 갈등에 뿌리를 둔 것으로, 지구촌 전체 차원으로 일반화할 수 없다. 곧 안보라는 틀로만 이주민 문제를 본다면 꼬리가 머리를 흔드는 격이 된다. 이슬람권과 서구 기독교권의 갈등이 아니라 서구의 자의적인 개입이 가장 큰 문제인 만큼, 해법 또한 서구의 전향적인 태도에서 나와야 한다. 문제의 성격을 개선하고 중동·아프리카 지역 출신 이주민의 규모를 줄이려면, 유럽 나라들이 이 지역의 평화와 자율적인 발전을 뒷받침하는 쪽으로 일관성 있는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 이주민 범죄와 관련해서도 이들의 현지 정착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대안이다.

정체성 문제는 시민권 문제이기도 하다. 어떤 조건을 갖춘 사람에게 그 사회 시민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느냐는 것으로 압축된다. 이에 대해 합리적인 접근을 해야 이주민을 둘러싼 갈등을 줄이고 사회 통합을 촉진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유력한 접근 방식은 공화주의 모델과 다문화주의 모델이다. 전자는 이주민이 정착국의 법률을 지키고 다수가 내면화한 국민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로 하며, 후자는 이주민이 법률만 잘 지킨다면 독자적인 문화를 가진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을 허용한다. 이런 모델이 아니라 극우파의 주장처럼 이주민의 완전한 동화를 요구하거나 종족과 인종의 다름을 이유로 배제하는 쪽으로 간다면 영원히 이주민 문제를 풀 수 없다. 극우파식 접근은 인류의 중요한 가치인 인도주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대량 이주에 대한 대응은 각국 정부가 당장 가장 힘을 기울이는 사안이다. 유럽연합은 회원국 사이 책임 분담, 현지 지원을 통한 이주민 감소, 국경 통제 강화라는 세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 앞의 둘은 올바른 방향이지만, 실제 집행 과정에서는 회원국 사이 이견과 예산 부족 등으로 상당한 어려움에 부닥치고 있다. 절실한 것은 유럽 나라들의 적극적이고 꾸준한 의지다. 역사적·정치적 책임을 자각하지 못한 채 좁게 설정한 국익에 따라 각자 목소리를 높인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유럽연합 자체가 내부 갈등으로 급격히 약해질 수 있다. 이주민이 자국을 떠날 동기를 갖지 않도록 중동·아프리카에 대한 지원을 더 강화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지금과 같은 응급조처식 지원을 넘어서 현지 나라와의 합의에 바탕을 둔 새로운 마셜플랜과 같은 큰 계획이 있어야 한다. 어떤 경우든 국경 통제 강화는 부차적인 수단에 그치는 것이 좋다.

지금 미국의 대응은 유럽 나라에 비해서도 근시안적이다. 국경 통제 강화에만 치중할 뿐 이주 흐름 전체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 미국 또한 이주민 출신국과 협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주된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

■ 우리나라는 사정이 크게 다르다. 우선 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대량 이주가 없다. 이주민 문제가 역사적·정치적 성격을 갖지 않으며 안보와도 관련이 없다. 최근 수백명의 예멘 사람이 제주도에 와서 난민 신청을 한 일을 두고 많은 국민이 걱정하지만 대부분 근거가 없다.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난민 문제가 우리 땅에 상륙했다’는 말 자체가 역사적·객관적 상황과 일치하지 않는다. 난민 신청자가 아무 근거 없이 우리나라를 적대시할 까닭이 없고,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된 이슬람권과 기독교권의 갈등이 우리 땅에서 갑자기 분출될 리도 없다.

우리나라에서 난민으로 인정받기는 몹시 어렵다. 1994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3만2733명이 신청해 겨우 792명(2.4%)이 난민 지위를 얻었다. 유엔난민협약 가입국 전체 난민 인정률(36.4%)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1992년 이 협약에 가입하고 2013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난민법을 시행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정도다.

이주민은 아무 데나 옮겨 다니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다. 진지하게 새 삶을 모색하는 이들이며, 상당한 규모의 이동이라면 반드시 역사적·정치적 이유가 있다. 갑작스럽게 통일이 돼 북한 주민이 대거 넘어오거나 중국에서 큰 정치적 혼란이 발생하는 경우라면 우리나라에서도 대규모 이주민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런 때엔 우리 역량에 걸맞게 책임을 감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지석 대기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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