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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매경이 만난 사람] 기업가정신 일깨우는 이두희 한국경영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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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지난 13일 이두희 한국경영학회장(고려대 교수)이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LG포스코경영관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한국의 기업가정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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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LG, GS, LS, 효성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창업주들은 시대에 앞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습니다. 이들이 일궈낸 한국 기업가정신의 뿌리와 초심을 되돌아보고 기업인들이 존경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위기에 빠진 한국 경제를 되살리는 길입니다."

지난 10일 매일경제신문과 한국경영학회·진주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글로벌 기업인을 배출한 진주를 '기업가정신 수도'로 선포했다. 경남 진주시 지수면은 삼성 이병철, LG 구인회, GS 허만정, LS 구태회, 효성 조홍제 등 한국을 대표하는 5개 그룹 창업주들이 꿈을 키운 한국 기업가정신의 발원지다.

이곳에 위치한 100년 역사의 진주 지수초등학교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구인회 LG그룹 창업주(1회),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자(1회)를 배출했다. 이뿐만 아니라 강병중 넥센그룹 회장, 강영중 대교그룹 회장, 손길승 전 SK 회장 등 글로벌 기업인 300여 명이 진주에서 나왔다.

전 세계적으로도 한 도시에서 이렇게 많은 글로벌 기업 창업주를 배출한 것은 유일무이한 일이다. 재계에서는 이를 두고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창업가들의 유산(Legacy)'을 보유하고도 이를 계승·발전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컸다.

진주 기업가정신 수도 선포식을 주도한 이두희 한국경영학회장(고려대 교수)이 한국 고유의 기업가정신을 연구하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프로젝트에 발벗고 나선 이유다. 글로벌 기업인을 배출한 진주를 구심점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창업주의 개척·도전 정신을 잇고 기업가가 존경받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선포식의 취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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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은 최근 매일경제신문과 만나 "우리나라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은 불굴의 기업가정신과 리더십을 가진 기업인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위기에 빠진 한국 경제가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서는 창업가의 열정과 기업가정신이 살아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LG·GS 같은 대기업의 뿌리와 초심을 되새기고 이를 통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청년들의 창업 정신을 북돋아야 한다는 얘기다.

다음은 일문일답.

―진주를 한국의 기업가정신 수도로 선포하자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오게 됐나.

▷진주는 천년의 역사가 깃든 학문과 정신의 도시이자 근현대에는 LG, GS, 삼성, 효성 등 국내 대표적인 창업주를 배출한 기업의 산실이다. 안동이 정신문화의 수도라면, 한국에서 가장 많은 글로벌 기업인을 배출한 진주 지역은 기업가정신 수도로 손색이 없다. 경영학회 회장이 되면 이 같은 아이디어를 현실화해야겠다고 생각해 왔다. 취임 이후에는 학회 내에 기업가정신위원회를 만들고 본격적인 준비를 했다.

―진주 기업가정신의 뿌리는 무엇인가.

▷진주 지역에서 발현한 기업가정신은 '작은 이윤에 연연하지 않고 사람을 중심으로 의로운 이익을 추구하고 사회적 책임을 수행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남명 선생의 경의 사상에 뿌리를 둔 것이다. 진주 지역 창업자들의 선대는 유학자들로 남명 선생 후학들이다. '사람을 중시(敬)'하고 '의로운 뜻을 품었으면 반드시 실천한다(義)'는 실용주의적 사상이 삼성의 인재제일·실용주의, LG의 인화정신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대한민국의 급속한 경제성장 배경에는 정부의 예지적 정책도 있었지만 기업의 지혜와 땀이 절대적이었다. 기업을 창업하고 계승한 기업인의 훌륭한 기업가정신과 리더십을 높이 평가해야 하는 이유다.

―경남·진주 지역사회 및 유관기관과의 협업도 중요할 것 같다.

▷경영학회와 진주시는 이달 '지역 기업 육성을 위한 기관 간 협의체 구성'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관련 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여기에는 경상대, 중소기업진흥공단, 경남지방중소벤처기업청, 진주상공회의소 등의 단체도 참여했다. 단순히 기업가들을 기리는 기념관 건립 차원을 넘어 진주 지역 창업주들의 기업가정신을 확산하는 장으로 만들려는 구상이다. 경남도와 진주시를 비롯해 지역 기관과 대학 등 지역사회가 한마음으로 협업해 기업가정신을 교육하고 창업하는 젊은이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업 등이 추진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업가정신을 정의하면.

▷'기업의 목적이 뭐냐'고 물으면 "이윤의 극대화"라고 단답형으로 답하는 고정관념이 있다. 기업이 목적 불문하고 이윤 창출을 위해서만 존재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종업원을 수단화한다는 오해가 생길 수 있는 지점이다. 기업과 기업가정신에 대한 올바른 정의가 중요하다. 기업이란 자신이 이루고 싶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꿈과 열정을 가진 자들이 모인 곳이다.

아픈 사람을 고치기 위해 모인 곳이 병원이고, 교육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 학교인 것과 같다. 기업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한 가치를 실현하고 지속적으로 영위하기 위해서는 이윤이 필요한 것이다. 기업가정신은 꿈을 가진 사람들을 모으는 원천적인 에너지라고 볼 수 있다.

―삼성 등 한국 대표 기업들은 기업가정신으로 시대를 앞서갔다는 평가도 나온다.

▷삼성, LG, 두산 등을 살펴보면 특히 이들 창업주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사회공유가치창출(CSV)과 같은 개념이 보편화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를 실행해왔다. 우리나라의 기업 역사는 서양에 비해 길지 않을지 모르지만, 성공한 큰 기업인 삼성, LG, 두산 등을 종합해놓고 보면 실적은 물론 기업가정신 측면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본다. 서구에서 나온 CSR나 CSV 개념을 우리 기업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실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창업주들이 시대를 굉장히 앞서갔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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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부 대기업들이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다. 기업가정신의 문제인가.

▷창업주가 자신의 꿈만 달성하기 위해 나머지 종업원을 수단으로 전락시키게 되는 순간 기업가정신은 무너진다. 그러한 기업은 장기적으로 발전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지탄받게 된다. 경영자와 구성원이 같은 비전을 공유하고 같은 철학이 기업문화로 자리 잡아야 그것을 기업가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잘되는 기업과 잘 안 되는 기업의 차이를 보면, 결국 기업가정신의 유무(有無)가 결정적 차이를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00년 기업을 일구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초심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기업가정신은 기업의 지속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세계적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구성원과 개인의 꿈만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함께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의 사상을 기반으로 한 진주 지역의 기업가정신은 그러한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100년 기업을 위한 공통된 가치관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창업 당시의 좋은 뜻이 3·4대로 넘어오면서 왜곡되거나 가치관이 변질되는 사례도 발생할 수 있다. 그럼 결국 문제가 발생하고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기업들이 창업의 초심을 늘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기업가정신을 연구하고 계승하는 일이 왜 중요한가.

▷기업가정신은 새로운 업을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들어낸다.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자 국가와 국민의 번영과 행복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다. 세계 환경은 지속적으로 기업에 창의적 도전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지능화된 산업과 미지의 융합사회를 이끌어 갈 수 있는 리더십과 기업가정신을 요구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 변화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기업인이 시대적 흐름을 통찰하고 대처할 수 있는 창의적 기업가정신으로 재무장해야 한다.

청년 창업에도 기업가정신 고취는 반드시 필요하다. 많은 청년이 창업을 통해 단순히 이익을 벌겠다는 목표만을 생각하는 사례도 있다. 창업을 통해 어떤 가치를 실현할지에 대한 고민, 기업가정신이 결여돼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단기적으로 성공해도 결국 장기적으로 실패한 사례가 많다.

―한국의 기업가정신을 계승·발전시킬 경영학회 차원의 계획은.

▷진주 지역 창업주들의 기업가정신을 연구하고 계승하는 것은 진주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의 일이고, 또 세계적인 일이다. 과거를 지향하자는 게 아니라 미래를 보자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앞으로 글로벌 선진국 대열에 서기 위해서는 훌륭한 기업가정신을 가진 기업인이 존경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또 젊은 벤처기업인이 미래의 위대한 기업가가 될 수 있도록 보고 배울 수 있는 토양을 만들자는 것이다. 경영학회 차원에서 한국 고유의 기업가정신을 연구할 계획이다. 오랜 기간 묵묵히 산업의 역군으로 일해 온 기업인들의 업적도 평가받아야 한다. 기업의 역사 기록과 기업가정신을 교육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도 노력할 생각이다.

■ He is…

△1957년 출생 △1982년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1985년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 MBA △1990년 미시간주립대 경영학 박사 △2006년 아·태국제교육협회 창설자 및 1~3대 회장 △2011~2012년 한국마케팅학회장 △2013~2015년 고려대 경영대학장 △2014~2015년 한국경영대학(원) 협의회 이사장 △1990년~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2018년~ 한국경영학회 회장

[황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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